제 148 화 애정만세

2024. 11. 6. 00:22음악이 흐르는../음악에세이

 


(M) 주제음



 남  붉은 장미꽃 한아름을 

    침대 머리맡 양옆에 두고 자면 

    애정운이 상승한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가 

    풍수인테리어 책에서 본 이야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난 꽃집에 들렀다

    그리고 빨간색 장미꽃을 샀다

    내 나이 서른셋...

    왜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냐고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난 대답한다

    사랑을 기다리고 있다고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

    어느날 갑자기 예기치 않은 곳에서 찾아오는 것이리라 

    난 그런 운명 같은 사랑을 기다린다

(M) 운명 - WHY 

 

(E) 전화벨 

남  여보세요

여  어, 나...

남  목소리가 또 왜 그러냐?

여  그냥 좀 속상해서...

남  너 또 채였냐?

여  아니야! (자신 없게) 내가 찼다 뭐..

남  ......... 술 한잔 해?

여  지금 어딘데?

남  나 집앞에 다 왔는데...

여  나도 니네 집 앞이야

 

남  은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다

    솔직히 몸매가 좀 통통한 편이고 

    얼굴도 예쁘진 않다

    눈이 나쁜데 교정일을 하는 그녀는 

    언제나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다

    내가 그녀를 알아온 이십여년 동안

    그녀는 아마 200명도 넘는 남자들에게 채였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그녀와 친하게 지내도 

    사람들은 우리 둘의 사이를 친구 이상으로 의심하지 않는다

    그건 아마... 그녀가 못생겼기 때문일 거다 

(M) 내사랑 못난이 - 윤종신

 

(E) 맥주캔 따는 

여  야, 지는 뭐 잘났냐? 

    변변한 직업 하나 없는 백수에 얼굴도 찐빵 눌러놓은 것처럼 생겨가지구.... 

남  이번엔 또 왜 헤어졌는데?

여  .............내가 통장이 많은 줄 알았댄다

남  뭐??

여  통장이 많기는 많지. 잔고가 별로 없어서 그렇지...

남  아니, 너 어디를 봐서 부자라고 생각했대?

여  내가 못생겨서... 연애도 안하고 돈만 열심히 모았을 거라고 생각했대.

    걔가 마지막으로 나한테 뭐랬는지 아냐?

    그 얼굴에 뭘 믿고 돈도 안모아놨냐구....

남  야~ 거 나쁜놈이네~

여  그지? 나쁜놈이지? 

남  그런데 이해가 아주 안되는 건 아니다

여  뭐???

남  아유 발끈하긴~ 농담이야~

여  농담 아닌 거 다 알아. 니들 남자들이 다 그렇지!

    이쁜 애들이 돈 없었어봐, 내가 몸 뽀사지게 일해서 너 행복하게 해준다!! 이러면서

    나같은 애들이 돈 없다 그러면.... 너 진짜 용감하다 그러잖아. 

    험한 세상 어떻게 살 거냐고~

남  에이 왜 그렇게 자학 하고 그래~

여  그런데... 너 그거 뭐냐?

남  뭐? 아... 이거? 장미꽃....

여  너 여자 생겼어?

남  아니... 오늘 잡지에서 보니까, 장미꽃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자면

    애정운이 상승한다는 얘기가 있더라구...

여  그럼 그거 나 줘

남  야... 이거 서른 송이나 되는데... 비싸게 주고 산거야

여  그래서... 싫다구? 넌 친구가 남자한테 채여서 이렇게 괴로워하는데...

    그깟 꽃이 아깝니?

남  알았다 알았어. 자! 가져라 가져!

여  진짜?? 

(M) Nicole Kidman & Jim Broadbent -Sparkling Diamonds    

 

여  너, 이게 남자한테 받아본 첫 번째 꽃인 거 모르지?

남  뭐? 그럼 한번도 꽃 받아본 적 없다구?

여  .... 누가 나한테 꽃을 주겠냐? 

남  야 왜 그래.... 짚신도 짝이 있다구....

    너만 좋아해주고, 너만 예쁘게 봐주는 남자가 꼭 있을거야

여  어디에?

남  그거는... 모르지 나도...

여  야! 서른 세해를 기다렸는데 안나타나잖아. 

남  오래 기다리긴 했다 응?

여  이제 지겹다. 그놈의 운명 같은 사랑 기다리기도....

남  난 아직 안 지겨워. 나타날거다.

여  너 저번에 만나던 그 스튜어디스... 왜 잘 안 됐어?

남  너무 공주병이더라구. 지 비행 나갔다 올 때마다 데리러 오라고 하는데...

    맨날 그렇게 시간 맞추기가 어디 쉽냐?

여  첨엔 좋다고 난리더니....

남  그거야 진짜 내 운명인 줄 알았지. 우리가 비오는 날 극장 앞에서 딱

    만났었잖냐. 난 첫만남은 그정도 분위기가 돼줘야 한다고 보거든.

여  넌 언제 철들래? 아직도 비 타령이냐?

남  그럼~ 내 운명의 여자는 비오는날 만나야 돼 무조건....

    폼나잖아 

(M) 비오는날의 수채화 

 

남  야, 이제 그만 마시고 들어가라. 나도 내일 출근해야지.

여  너 휴가가 언제야? 여름에 못쉬었잖아

남  어, 다음주 주중에 쉴려구...

여  어디 갈거야?

남  그냥 뭐 가까운 데.... 수목원이나 갔다 올까 생각중인데....

여  누구... 같이 갈 사람 있어?

남  아니 아직. 왜?

여  아니... 누구 같이 갈 사람 없으면 나랑 같이 가자구...

남  ..... 너랑? 자고 올 지도 모르는데?

여  방 따로 잡으면 되잖아. 펜션 같은 데 내가 예약할까?

남  너 왜 그러냐?

여  외로워서 그런다 외로워서! 

    어디 가까운데라도 여행가고 싶은데, 혼자 가긴 청승맞고...

    기지배들은 다 시집가서 같이 놀러갈 만한 애도 없단 말야

남  뭐 나야 상관은 없는데....

여  그럼 가자. 야, 우리가 뭐 남자 여자냐?

    그냥 친구잖아.

남  그렇긴 한데.... 그래. 그럼 그러자. 

(M) 하림 - 아일랜드에서 

 

남  그런데 사건은 우리가 놀러가기로 한 바로 전날 터지고 말았다

(E) 비오는 소리

남  퇴근 시간 무렵, 갑자기 비가 내렸고

    난 내 책상 서랍 안에 있던 우산을 펼쳐 들었다

    그런데 한 여자가 내 눈에 들어왔다

    긴 생머리에 단아한 옷차림의 그녀는

    막막한 표정으로 현관 앞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BG) 짐노페디 제 1번 - 

남  난 자석에 이끌리듯 그녀에게 다가갔고

    우산을 함께 쓰자고 얘기를 건넸다

    그녀는 조금 놀란 듯, 하지만 싫지는 않은 듯

    고개를 살짝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우리는 우산을 쓰고 지하철 역까지 함께 걸었다

    걸어가면서, 그녀가 우리 회사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과

    나이는 스물 일곱 살이라는 것

    아직 애인이 없다는 것 등... 

    기본적인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이것이 내가 꿈꾸던 운명적인 첫만남이다

    드디어 난 내가 찾던 사랑을 찾은 것 같았다

(M) 이영훈 - 기분 좋은 날 (Piano & Band)    

 

(E)비오는 소리 

여  야,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해놓고 여기까지 왜 왔어?

남  어... 그게... 우리 내일 출발하기 좀 힘들지 않을까?

여  왜? 비 때문에? 비... 오늘 밤까지만 내린대. 

    안그래두 일기예보 봤거든

남  아 그래? 그렇긴 한데..... 

여  왜? 무슨 일 있어?

남  실은.... 내가 오늘 운명의 여자를 만났거든

여  .....뭐?

남  역시 운명은 가까이에 있다더니.... 그 여자가 우리 회사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

여  아니... 그래서... 운명의 여자를 만났건 말았건... 왜 내일 못간다는건데?

남  그 여자랑 저녁 먹기로 했거든

여  ..... 그 여자랑 저녁 먹기로 해서... 나랑 여행가기로 한 거 취소하겠다구?

남  야, 이해 좀 해 주라. 나 이런 느낌은 진짜 처음이야

여  저녁은 주말에도 먹을 수 있고, 다음주에도 먹을 수 있잖아

남  그 여자가 싫다 그러면 어떡해~ 

    내일 시간 약속도 겨우 받았는데~~

여  .........알았다

남  야, 삐졌냐?

여  됐어. 너 이러는 게 한두번이냐? 기대도 안했다!

(E) 문 쾅 닫고 들어가 버리는

남  야~ 삐졌구나? 풀어. 내가 주말에 맛있는 거 사줄게, 영화도 보여줄게. 알았지?

    오빠 장가 좀 가자~ 어??

(M) 고백 - 박혜경 

 

여  그는 모를거다. 내가 이십년 동안 한 남자를 사랑해 왔다는 사실을.

    그가 내게 준 장미를 창문가에 곱게 말리며

    하루에도 열 번씩 쳐다본다는 사실을.

    그와 함께 할 줄 알았던 이번 여행을 생각하며

    일주일 내내 잠을 설쳤다는 사실을.

    그래서 지금 대문을 잠그고 돌아서서

    이렇게 울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운명의 여자가 나타났다는 얘기만 들어도

    이렇게 가슴이 내려앉는다는 사실을.

    그가 어떤 여자들을 만날 때마다

    잘되지 않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는 사실을

    내가 어떤 남자를 만날 때마다

    그가 질투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사실을

    언젠가 한번쯤 이런 마음 고백해 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금처럼 친구로도 만날 수 없어질까봐

    그게 겁이 나서 한마디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모든 사실을...

    그는 모를 거다. 

(M) 인형의 꿈 (여자가 부른 버전)  

 

남  내 운명의 여자, 홍보실 그녀와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문자 메시지가 왔다

 

(E) 문자 도착음 

남  은서였다

 

여  너무 좋은 티 내지 마라. 여자가 너 쉽게 본다.

 

남  자식.... 그래도 내 생각 해 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함께 여행가기로 한 약속이 취소돼서 마음이 상했을텐데도

    이렇게 배려해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은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  여보세요

남  야, 문자 잘 받았다

여  어... 뭐. 데이트는 잘했어?

남  당근이쥐~ 이 오빠가 누구냐?

여  .... 또 만나기로 한거야?

남  어. 주말에 보기로 했다

여  언젠... 주말에 영화 보자며.

남  어? 아... 다음주에 보면 되지 뭐.

여  내가 보고 싶은 영화 이번주까지만 한단 말이야

남  그래? 그럼 그건 친구들이랑 봐. 아님 혼자 보든가.

    너 혼자 영화 보는 거 좋아하잖아

여  야! 누가 좋아서 혼자 보냐? 같이 볼 사람이 없으니까 혼자 보지!!

남  왜 갑자기 소리는 지르고 그래... 너 노처녀 히스테리냐?

여  뭐??

남  그렇잖아. 아니, 나야 이제 연애 막 시작한 사람인데

    어떻게 너랑 영화 보고 다니고 그러냐.... 안그래?

여  ...... 그렇지... 미안하다.

남  아니 뭐, 미안할 거 까진 없고....

여  그럼 연애 잘하고. 결혼할 때 전화해라.

(E) 뚝 - 

남  또 시작이다. 은서는 내가 연애만 시작했다 하면

    이렇게 신경질을 부린다.

    아마 같이 놀 사람이 없어질까봐 무서워서 그러는 거 같다

(M) 사랑과 우정 사이 

 

여  그가 내 마음을 눈치챌까봐 두려우면서도

    차라리 눈치를 채줬으면 싶기도 하다

    혼자서 이렇게 한 사람만 바라본 시간이

    20년을 훌쩍 지났고

    이제 내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들인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힘든 일이다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잊기가 쉬울 것 같은데

    계속 내 앞에서 나를 보고 웃어주고

    내게 말을 건네주는 그 사람을 보면서

    사랑하지 않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E) 전화벨

여  여보세요

남  나다

여  .... 왜?

남  어젠 화 많이 났냐?

여  아니야. 너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일이 좀 안 풀려서...

남  그렇지? 나 때문에 그런 거 아니지?

여  .....어

남  다행이다. 나는 니가 그러고 전화 끊어버리니까

    신경 쓰여서 잠이 다 안오더라

여  .... 나 때문에... 잠이 안와?

남  그럼. 사랑하는 내 친구가 삐졌는데 잠이 오겠냐?

 

여  이런 말들이 나를 더욱 괴롭힌다는 걸, 그는 알까?

(M)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 이지연 

 

남  우리 주말에 보자. 너 보고 싶다던 그거 보자구

여  .... 정말? 너 약속 있다며...

남  어. 그거 민경씨가 이번주에 딴 약속이 생겨서 좀 바쁘대

여  ... 아 그래?

남  응. 그동안 뭐 딴 약속 잡은 거 아니지?

여  어... 아니야

남  그럼 주말에 보는거다?!

 

여  그와의 약속이 잡히고 나면 

    난 정말 정신이 없어진다

    그런데 이번엔 특히 더하다

    왜냐면 그가 운명이라고 믿는 여자가 나타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예쁘게 보여서 

    그의 눈에 여자로 보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하고, 메이크업까지 받고

    옷도 가을 분위기가 풍기는 걸로 샀다

    높은 굽이 달린 새 구두도 하나 장만하고

    내 얼굴을 덮고 있던 두꺼운 안경을 벗고

    투명한 렌즈를 꼈다  

    그와의 약속 장소로 향하는 내 가슴은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E) 극장 앞 소음

여  시계를 보고 있는 그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한참동안 멍하게 나를 보던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남  ..............너 그게 다 뭐냐? 쥐잡아먹고 나왔냐? 

(M) 새 됐어 (여자들 코러스 부분. 나 완전히 새됐어)

 

여  그렇게 이상해?

남  어. 엄청 이상하다. 야, 그리고 원피스를 입을려면 

    살을 빼고 좀 입든가.... 옆에 다 튿어지겠다

여  아니야. 이게 원래 이렇게 타이트하게 입는 스타일이야

남  숨이나 좀 제대로 쉬면서 말해. 야, 너 똥배 장난 아니다

여  어?? 

남  애 둘 난 아줌마도 아니고, 처녀가.... 몸매관리 좀 해

여  야...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남  왜? 기분 나빴어? 난 사실대로 얘기한건데....

    솔직히 우리 민경씨 보다가 너 보니까 확 깬다

    똑같은 원피스를 입어도 우리 민경씨가 입으면 옷테가 제대론데...넌.....

여  야. 나 그만 가볼게

남  뭐?

여  나 사실은 오늘 선보거든. 너 만나려고 내가 이런 옷 입고 나왔겠냐?

남  선 본다구? 니 나이에도 선이 들어오냐?

여  어. 들어오더라. 혹시 아냐? 이번엔 정말 운명의 남자일지?

남  그래.잘 만나고.솔직히 말해. 너 통장 잔고 없다고. 또 착각하면 어떡하냐?

여  응. 걱정마. 다 솔직히 말할거니까. 미안해서 어쩌냐? 약속을 깨먹어서?

남  어. 괜찮아. 얼른 가라야.

(E) 또박또박 멀어지는

(M) 사랑과 우정 사이 - 남자 버전

 

남  멀어지는 은서의 뒷모습을 보는데

    왠지 약간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아까 은서가 처음 나타났을 때

    난 다른 여자를 본 줄 알았었다

    안경을 벗고 그렇게 꾸며놓으니

    은서도 예쁜 구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말은 퉁명스럽게 나오고 말았다

    선을 보러 간 은서, 잘하고 있을까?

    남자가 혹시 은서 못생겼다고 구박하면 어떡하나...

    걘 상처 받을대로 받아서 가슴이 너덜너덜해졌을텐데...

    잘 뜯어보면 은서도 귀여운 구석이 많은데

    남자가 그걸 못알아보면 어떡하나...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영화도 보지 않고 혼자 걷던 나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E)문자 도착음

 

여  울면서 거리를 걷고 있었다.

    새로 산 구두는 발뒷꿈치를 아프게 파들어가고 있었고

    화장은 눈물 때문에 다 번져버렸다

    나쁜놈. 못된놈. 오늘로 너랑은 끝이다....

    울면서 중얼거리고 있는데. 그에게 문자가 왔다

 

남  선은 잘 보고 있냐? 혹시 그놈이 못생겼다고 뭐라고 하면....

    나한테 와라. 술 사줄게.

 

여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그는 늘 이런식이다

    내가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면서

    또 멀리 가지도 못하게 한다

(M) 너에게로 또다시 - 서영은

 

남  은서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며칠째 전화를 해도 받질 않았다

(E)전화벨 소리

남  전화벨 소리만 울려도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은서가 아니였다. 

    내가 좋아하는 민경씨에게 온 전화인데도

    이상하게 조금 실망스러웠다

    은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은서의 집앞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퇴근하는 은서를 만날 수 있었다

 

남  야. 윤은서.

여  어. 너 여기...웬일이냐

남  왜 전화를 안받냐? 사람 걱정되게

여  니가 뭐 내 걱정 하는 애냐?

남  너 아직도 화장 그렇게 하고 다니냐? 쥐잡아먹은 것 같다니까

여  니눈에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어. 그 사람이 나 이쁘대

남  뭐? 누가? 그 선본놈이?

여  왜 놈이래? 

남  야... 너 벌써 편드냐? 그래, 국수는 언제 먹여줄건데?

여  좀만 기다려. 

남  ....뭐? 진짜야?

여  응. 조금만 기다려봐. 소식 있을테니까.

남  아니. 그 남자가 너 통장 잔고 없는 거 알아?

여  어 알아. 나 못생긴 것도 알고 가난한 것도 알아. 그래두 나 좋대.

    나 좋다는 사람이 세상에 딱 한명은 있더라구. 니 말이 맞았어.

(M) 찬바람이 불면 - 김지연 

 

여  다 거짓말이었다. 

    그런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큰소리가 치고 싶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그를 내 마음속에서 몰아내고 싶었다

 

여  앞으로 나도 바쁠 거 같으니까, 서로 연락같은 건 나중에 하자

    결혼할 때 청첩장 보낼게

 

남  갑자기 훼한 바람 같은 게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나가는 것 같았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 하나가 뚫려 버린 것 같았다

    은서가 돌아서고 있었다

 

남  야! 잠깐만....

여  왜?

남  ...........

 

남  불러놓고 나니 할 말이 없었다

    

여  그가 뭔가, 얘기를 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남  아니다. 잘자라고.

여  어 그래....

 

여  이번에도 난 대문을 닫고 돌아서서 한참을 울어야 했다

(M) 사랑에 아파본 적 있나요 - 린

 

남  민경을 만나서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드라이브를 하는데도

    하나도 신나지 않았다

    예전처럼 전화를 걸어와서 데이트를 방해할 은서가 없어져서였다

    남자한테 채였다며 상담해 달라는 은서가 없어져서였다

    자꾸만 그녀에게 신경이 쓰이는 날 어쩔 수가 없었다

    민경의 가느다란 손목을 봐도 

    은서의 퉁퉁하고 귀여운 손목이 떠올랐고

    민경의 커다란 눈망울을 봐도

    은서의 가늘고 길다란 눈매가 떠올랐다

    웃으면 살에 파묻혀 거의 보이지 않던 그 눈...

    그눈이 나를 보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불쑥 들었다

    어느날 문득, 난 민경에게 그만 만나자고 말했다

    이유가 뭐냐고 묻는 민경에게

    난 너무 바쁘다고 답했다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랑 20년을 함께 하면서

    별로 해준 게 없는 것 같다고....

    이제부터 그 친구에게 많은 시간을 내어주고 싶다고... 말이다

(M) 사랑합니다 - 팀 

 

여  또 왜 왔어?

 

남  그녀의 눈이 부어 있다. 또 채였나보다.

 

남  너 솔직히 말해. 남자한테 또 채였지?

 

여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나를 찾아와주길. 

    그러면서 혼자 울고 있었다.

 

여  웃기네, 내가 뭐 맨날 남자한테 차이기만 하냐? 왜 온건데?

남  뭐 하나 물어보려고... 

    너 나랑 처음 만나던 때 기억나냐?

여  어? 우리가 처음 만나던 때도 있었어?

남  어. 3학년 처음 반배정 받던 날. 비가 왔거든?

여  그랬어? 난 기억 안나는데....

남  난 우산을 가져와서 우산 쓰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니가 혼자 서있더라구. 딴애들은 다 엄마가 데리러 왔는데

    너만 엄마가 안와서....

여  ... 우리 엄만 장사하느라 바빴잖아

남  그래서 내가 너한테 같이 우산 쓰자 그랬었어.  

여  그랬니?

남  응. 그게 우리의 첫만남이야. 

 

여  기억한다. 내가 그를 처음 사랑하게 됐던 그 순간....

 

남  은서야. 왜 갑자기 그 날이 떠올랐을까.

    그날도 비가 왔다는 게. 왜 새삼 기억이 날까

 

남  어쩌면 내가 기다려왔던 사랑이

    너였을지 모른다는 얘기를

    난 이리저리 돌려서 하고 있다

    그녀가 이 얘길 알아먹을까?

 

여  혹시 그가... 날 사랑하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걸까?

    내가 잘못 알아듣고 있는 건, 아니겠지?

    빗방울이 한두방울씩 떨어지고 있다 

(M)주제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