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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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의 노래 -서정주-
견우의 노래 -서정주-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직녀여, 여기 번적이는 모래밭에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허이연 허이연 구름 속에서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칠월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검을 암소를 나는 먹이고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2024.10.02 -
얼 굴 -박인환-
얼 굴 -박인환-우리 모두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기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꽃이 내가 아니듯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물빛 몸매를 감은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하나사랑하기 이전부터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온 밤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강물이 흐르는데…가슴에 돌단을 쌓고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쉽게 헤어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하늘을 돌아 떨어진별의 이야기도 아니고우리 모두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2024.09.15 -
가난한 이름에게 -김남조-
가난한 이름에게 -김남조-이 넓은 세상에서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나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검은 벽의 검은 꽂그림자 같은어두운 香料(향료)고독 때문에 노상 술을 마시는고독한 남자들과 이가 시린 한 겨울밤고독 때문에 한껏 사랑을 생각하는고독한 여인네와이렇게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얼굴을 가리고고독이 아쉬운 내가 돌아갑니다.불신과 가난그 중에 특별하기로 역시 고독 때문에어딘 지를 서성이는 고독한 남자들과허무와 이별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때론 골똘히 죽음을 생각하는고독한 여인네와이렇게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머리를 수그리고당신도 고독이 아쉬운 채 돌아갑니까인간이란 가난한 이름에 고독도 과해서못 가진 이름 울면서 ..
2024.07.24 -
늙어 가는 아내에게 -황 지 우-
늙어 가는 아내에게 -황 지 우-내가 말했잖아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사랑하는 사람들은,너, 나 사랑해?묻질 않어그냥, 그래,그냥 살어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생각나?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 가을,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동네의 어둑 어둑한 기슭,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들어가는 그대는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그런거야, 서로를 오래 오래 ..
2024.07.11 -
미라보 다리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흐르네 내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을 밤이 오고 종소리는 울리고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결이 흐르는 동안 밤이 오고 종소리는 울리고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사랑은 흘러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들 사랑도 흘러내린다 인생은 얼마나 지루하고 / 희망은 얼마나 격렬한가 밤이 오고 종소리는 울리고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하루하루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
2024.07.05 -
비가 옵니다 - 주 요 한 -
비가 옵니다 - 주 요 한 -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한 깃을 벌리고 비는 뜰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 같이... 이지러진 달이 실낱같고 볕에서도 봄이 흐를듯이 따뜻한 바람이 불더니 오늘은 이어둔밤을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다정한 손님같이 비가 옵니다 창을 열고 맞으려 하여도 보이지 않게 속삭이며 비가 옵니다 비가 옵니다 뜰위에 창?에 지붕에 남모를 기쁜소식을 나의 가슴에 전하는 비가 옵니다
2024.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