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에세이/좋은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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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의 노래 -서정주-
견우의 노래 -서정주-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직녀여, 여기 번적이는 모래밭에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허이연 허이연 구름 속에서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칠월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검을 암소를 나는 먹이고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2024.10.02 -
얼 굴 -박인환-
얼 굴 -박인환-우리 모두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기를 꽂고 산들 무얼하나꽃이 내가 아니듯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물빛 몸매를 감은한 마리 외로운 학으로 산들 무얼하나사랑하기 이전부터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온 밤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강물이 흐르는데…가슴에 돌단을 쌓고손 흔들던 기억보다 간절한 것은보고 싶다는 단 한마디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쉽게 헤어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하늘을 돌아 떨어진별의 이야기도 아니고우리 모두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2024.09.15 -
푸 른 밤 - 나희덕-
푸른 밤 - 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 걸었던그무수한 길도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까마득한 밤 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네개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사랑에서 치욕으로,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하루에도 몇 번씩 네개로 드리웠던 두레박그러나 매양 퍼 올린 것은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그 수만의길을 나는 걷고 있는것이다나의 생애는모든 지름길을 돌아서네개로 난 단 하나의 에움길이었다해와 달처럼늘 걷도는 운명도 있는 것 같다선택할 수 있는 것 같았지만사실은 보이지않는운명의 줄에 ..
2024.09.12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 호 승-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정 호 승-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외로움 견디는 일공연히 오지 않는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눈이 내리면 눈길 걸어가고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라갈대숲 속에가슴 검은 도요새도너를 보고 있다그대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가끔씩 하느님도눈물을 흘리신다공연히 오지 않는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산 그림자도외로움에 겨워한번씩은 마을로 향하며새들이 나무 가지에앉아서 우는 것도그대가 물가에 앉아있는 것도그대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살아간다는 것은외로움 견디는일공연히 오지 않는전화를 기다리지 마라그대 울지 마라공연히 오지 않는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2024.09.04 -
가난한 이름에게 -김남조-
가난한 이름에게 -김남조-이 넓은 세상에서한 사람도 고독한 남자를 만나지 못해나 쓰일모 없이 살다 갑니다.검은 벽의 검은 꽂그림자 같은어두운 香料(향료)고독 때문에 노상 술을 마시는고독한 남자들과 이가 시린 한 겨울밤고독 때문에 한껏 사랑을 생각하는고독한 여인네와이렇게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얼굴을 가리고고독이 아쉬운 내가 돌아갑니다.불신과 가난그 중에 특별하기로 역시 고독 때문에어딘 지를 서성이는 고독한 남자들과허무와 이별그중 특별하기론 역시 고독 때문에때론 골똘히 죽음을 생각하는고독한 여인네와이렇게 모여 사는 멋진 세상에서머리를 수그리고당신도 고독이 아쉬운 채 돌아갑니까인간이란 가난한 이름에 고독도 과해서못 가진 이름 울면서 ..
2024.07.24 -
늙어 가는 아내에게 -황 지 우-
늙어 가는 아내에게 -황 지 우-내가 말했잖아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사랑하는 사람들은,너, 나 사랑해?묻질 않어그냥, 그래,그냥 살어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생각나?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 가을,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동네의 어둑 어둑한 기슭,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들어가는 그대는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그런거야, 서로를 오래 오래 ..
2024.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