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24. 00:38ㆍ블로그 에세이/추억만들기
법주사 들어가전 진입로 한쪽에 서있는 정이품송 소나무다..
세월의 무게를 감당키 어려운듯 버팀 지지대에 의지해 있다..
천연기념물 103호.. 높이 15m.. 수령 600년 정도 추정되며 1464년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때 타고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는데 가지가 밑으로 쳐저있어
"연 이 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들어올려 임금의 행차가
무사히 지나갈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그후 세조가 이 소나무 에게도 충절이 있다고 여겨 정이품의 벼슬을 내렸다는..뭐 그런
이야기는 아마 누구라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음직한 이야기 일것이다..ㅋ
몇해전 겨울이 깊어가던날..
속리산 법주사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역사와 전통 문화가 살아 숨쉬는 고장 충청북도 보은 속리산 국립공원..
하늘이 빚은 천혜의 자연과 맑고 푸른 아름다운 이곳 보은은 처음 와보는 고장이다..
조선의 7대왕 세조는 그의 고질병인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전국의 사찰을 여러번 행차했다..
국운의 번창을 위하여 이곳 법주사 에서도 예외없이 법회를 연 이후에 피부병을 치료하기 위해
목욕을 하고 있는데 약사여래의 명을 받은 월광태자라는 소년이 나타나 세조의 피부병이 곧
나을 것이라 예언하고 사라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후 세조가 목욕을 마치고 보니 신기하게도 몸의 종기가 깨끗이 없어 졌다고 하여
목욕소라 부르게 된곳이 바로 이곳에 있다..
법주사 경내만 둘러보고 나와서 목욕소까지 가보지 못한점이 조금 아쉬웠던점이긴 하다..
역시나 어김없이 입장료를 내야 한다..ㅋ
다른 지자체 에서는 사찰등의 입장료 폐지를 권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찰 방문객 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등산로를 오르는 사람들까지 입장료를 내야하는 폐단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근처에 사는 사람들도 운동삼아 산길을 오르려해도 그때마다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성당도 교회도 입장료를 내야 한다는 소리는 들어본적이 없다..ㅋ
주차장에서 법주사 까지 이르는 숲길은 5리쯤 된다고 해서 오리숲이라 불리는 이길은 겨울이지만
전나무와 소나무가 하늘을 가랄만큼 푸른나무 숲들로 우거져있다..
매표소에서 개인 입장료 5,000원(4.000원 인가..?)을 지불하고 법주사로 올라가는
오리숲길은 한쪽은 차량이 다닐수 있게끔 아스팔트로 잘 포장이 되어있지만 다른 한쪽은
이렇게 자연 관찰로로 비포장의 아름다운 길로 되어있어 신발을 벋어들고 겨울산사의 호젓함을
만끽하며 맨발로 걸어보고픈 마음을 들게한다..
소림사의 제자가 되기위해 소림18 동인지를 통과 해야하듯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선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ㅋ
사천왕상이 지키는 천왕문을 지나고 두번째 관문인 금강문 이다..
이곳을 지나야만 법주사 경내로 들어설수 있다..
미륵신앙의 상징인 법주사의 금동미륵입상이 그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듯 우뚝 서있다..
처음 제작된 1964년에는 그냥 시멘트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하지만 크기만 했지 시멘트로 만들어 졌다는점 에서 가치에 외면을 당하자 청동으로 다시 주조했고
그후 2000년 부처님 오신날에 맟춰 금 80kg을 들여 높이 33m의 금동미륵입상이 세워져
점안식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 거대한 불상은 법주사 경내의 어느곳 에서나 볼수가 있다..
법주사에 들어서면 금동미륵대불에 한번 놀라고 또다시 그옆에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팔상전에 두번 놀라게 된다..
팔상전의 거대하고도 화려한 목조건물은 나의 시선을 잡아두기에 충분했으며
더없이 아름답운 목조탑의 그윽한 분위기에 한껏 취하는듯 했다..
(법주사 팔상전 (국보제55호)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지금의 건물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짓고
1968년에 해체 수리한 것이다.
벽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팔상도란
1)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장면, 도솔내의상(兜率來儀相),
2) 룸비니 동산에서 마야부인에게 태어나는 장면,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3) 궁궐의 네 문밖으로 나가 세상을 관찰하는 장면,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4)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5) 설산에서 고행하는 장면,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6) 보리수 아래에서 마귀를 항복 시키는 장면,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7) 성불 후 녹야원에서 설법하는 장면,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8)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는 장면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의 내용의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1층과 2층은 앞·옆면 5칸, 3·4층은 앞·옆면 3칸, 5층은 앞·옆면 2칸씩으로 되어 있고, 4면에는
돌계단이 있는데 낮은 기단 위에 서 있어 크기에 비해 안정감을 준다.
지붕은 꼭대기 꼭지점을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을 가진 사모지붕으로 만들었으며, 지붕 위쪽으로 탑 형식의
머리장식이 달려 있다.
건물의 양식 구조가 층에 따라 약간 다른데,1층부터 4층까지는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공포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고,5층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설치한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은 사리를 모시고 있는 공간과 불상과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공간 그리고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 나라의 탑 중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며 하나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출처 : 문화재청-
금동미륵입상의 지하의 중앙에는 화려한 자태의 미륵반가사유상 부처가 모셔저 있다..
벽면엔 보기만 해도 엄청난 숫자의 불상이 앉혀져 있다..
한바퀴를 빙둘러 보여야 하는데 이 수많은 부처의 상이 단한가지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즉 신기하게도 모두가 제각기 다른 모습이라는 거다..
법주사 에는 팔상전과 금동미륵대불 이외에도 쌍사자석등과 석련지등 3개의 국보와 8개의
보물이 있으니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돌아보는것이 좋다..
앝은기단 위에 중층으로 대웅보전이 서있다..
내부에는 삼신불이 모셔져 있는데 이 소조좌불상 역시 국내에서 가장 큰크기 라고 한다..
법주사에는 무엇이든 가장 크고 유일한것만 있다..
법주사를 나와 말티재 고개를 향해 페달을 밟았다..
시내가 아닌 외곽길 이어서 인지 아님 계절 탓인지 인적이 없이 도로가 한산하다..
겨울은 그저 황량하기만 해서 늘 쓸쓸함을 불러 오는가 보다..
도로에 차량이 드물어 사람이 없을줄 알았는데 말티재 주차장은 의외로 차량들로 붐볐다..
전망대로 가는길을 찾지못해 산길을 올라가다 다시 내려오기도 하고 조금 헤맸다..ㅋ
삼년산성의 밑으로 나있는 긴복도를 따라나오면 전망대가 나온다..
벵글벵글 돌아가야 하는데 경사면이 미끄러 조심해야 한다..
앞에서 내려오는 사람들도 미끄러움을 느꼈는지 더듬거리며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같이 간 사람들 이라면 손을 좀 잡아주어도 좋을듯하다..ㅋ
고려의 태조 왕건이 속리산에 오는데 고개를 넘기 위해 엷은 박석돌을 깐것이
시초가 되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말티재 고개길..
이곳의 명칭은 세조가 피부병을 치료하고자 속리산으로 행차할 때 길이 너무 험해 마차에서 내려
말로 갈아탔다고 하여 그 이름이 유래 되었다고 한다..
숲과 도로가 어우러진 독특한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른 고갯길에 비해 다소 짧은 느낌은 들지만 열두굽이를 돌아 고갯마루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이 장관이다..
옛날 고개 아랫쪽에 살던 사람들은 복조리 같은 가내 생산품등을 장터에 내다 팔러 갈때에 말티재의
열두굽이 고갯길을 걸어 걸어 보은 장터로 갔을 것이다..
어찌 그 힘들고도 먼 길을 걸어 다녔을까..
전망대 올라 잠시 생각에 빠져있다 보니 보은의 산새는 어느 사이 황금 색으로 물들며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그날 사진속에서 나는 웃고 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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