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8. 00:28ㆍ블로그 에세이/추억만들기
어느 겨울아침..
묵호 내항의 수면이 아침햇살에 눈이 부실만큼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바닷가 달동네..
달동네 치고도 경사가 가파른 이곳 논골담길은 1941년 개항한 묵호항의 역사와
바다에서 오징어..명태를 말리며 한평생을 살아온 바닷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박한 담화로 그려낸 비탈진 언덕의 미로 골목이다..
밤 이면 오징어배의 불빛으로 유월의 꽃밭처럼 현란 하다고 했던 묵호바다..
그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산등성의 논골은 뱃사람 들과 인근의 시멘트 무연탄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마을이다..
그 작고 가파른 골목길 구석구석 에는 묵호항을 배경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가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집집이 등불이 켜지고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논골주막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명태와 오징어회 한사발에 막걸리 한잔이면 낯동안에 불러왔던 온갓 심란한 상심은
간곳없이 사라져 버렸다..
언덕을 올라오자 쌩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할퀴듯 스치고 지나갔다..
하늘은 닦아놓은듯 더할수 없이 맑았지만 그맑은 하늘에서는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길을 확인할수가 없었다..
그저 옷섶을 파고드는 한기와 긴머리칼을 함부로 날리는 바람을
눈으로 느낄수 있을뿐이다..
바다..
그 이름 하나만 으로도 가슴에 한줄기 갯바람이 스치고 간다..
가난 했지만 가난이 뭔지를 몰랐던 것은 그들에게 바다는 늘 풍요로운 가슴을
내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람독에 서서 강강한 바람을 맞는다..
너 없이 내가 바람개비 일수 없지만
너를 거스리지 않고는 돌지 못하는
나 의 모순..
-손해일- (바람개비)
그들에겐 출렁이는 바다가 육지 보다 편하고 좋았다..
비릿한 갯내음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했다..
갈매기가 꺽꺽 대며 울음우는 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길을 나서던 새벽 바다..
파도는 물결이 부서질 때마다 슬픈 몸부림으로 춤을 추는듯 부서지는 파도의 세월만큼
흘러버린 시간 앞에서 어부의 얼굴에도 하나 둘 깊은주름이 패였다..
잔잔한 물살을 해치고 들어오는 뱃길위로 또다시 갈매기들이 날갯짓 하고
빈배로 돌아오는 어부에겐 옅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작은배에 젊음을 모두 내어주고 한평생을 노저어온 늙은 어부의 신음이 처연했다..
그들은 그렇게 평생을 바다에서 삶을 위하여 싸우면서 살아왔다..
파도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어지러운 삶일지라도 뭍에 정 둘 곳 없는
그들에겐 바다가 고향이었다..
좁은 언덕길은 꽤나 가파르고 높다랬다..
등대까지 약30분 정도 거리지만 구경꺼리에 얼만큼 시간을 소요 하느냐에 따라
시간은 달라질것 이다..
숨이 조금 차오르는 정도이긴 했지만 젊은이 들은 어렵지 않게 오를수 있을거라 생각된다..
하지만 가는곳 마다 포토존 이고 발목을 잡으며 눈길을 끌어서 등대로 향하는
발걸음이 자꾸만 더뎌진다..
담벼락 칸칸이 묵호사람 들의 희노애락이 그림책 처럼 펼쳐져 있는 벽화는 생각보다
더 다양하고 스토리 텔리적 이다..
통영의 동피랑..전주 한옥마을..서울의 이화마을등 다른 벽화마을을 비교해 보아도
훨씬 더 리얼하고 사실적이며 감동적 으로 다가온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
바다로 나갔는지 미역을 말리러 나갔는지 바람만 휑할뿐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집집엔 고요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
골목 골목 낭만과 향수를 자극하는 그림들로 가득한 논골담길..
벽화는 마을 이름만큼 이나 정겹게 다가왔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집들이 따개비처럼 다닥다닥 어깨를 맞대며 언덕배기에
위태롭게 서있었고 오르는 골목골목에는 눈이 녹아 마치 시냇물이 흐르듯 졸졸졸
소리를 내며 아래로 흘러 내렸다..
겨울바람에 꾸덕꾸덕 말라가는 명태의 비릿한 내음은 바다가 아주 가까이 와
있음을 느끼게 했다..
한 부자 사업가가 바닷가를 지나던중 배 옆에 드러누운 채 노래를 흥얼거리며 놀고 있는 어부를 보았다..
그 모습을 본 부자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말했다..
"왜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놀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 몫은 넉넉히 잡아 놓았으니까요.."
"그러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잡으면 되잖습니까..?"
"그래서 뭣 하게요.."
"그러면 돈을 더 벌 수 있잖습니까..?
그 돈으로 지금 당신의 배 보다 더 좋은 배도 살 수 있고 그러면 고기가 많은 깊은
바다까지 나가 그물질을 해서 돈을더 많이 벌 수 있지요.
그 돈으로 더 좋은 그물을 사고 더 많은 배를 거느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당신도 나처럼 커다란 부자가 될 수도 있지않습니까..?"
그러자 어부가 되물었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는 무엇을 하죠..?"
"편안히 당신의 삶을 즐길 수 있는 것이지요.."
어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그러고 있지 않소.."
다소 해학적 이지만 바닷일은 바다의 신의 손안에 있음을 알기에 욕심냄이 없이
그저 주어지는대로 거기에 만족해야 하는 어부의 신념을 말한것 일것이다..
훗날에 알게 된거지만 논골담길은 1길..2길..3길..까지 있다고 한다..
내가 오른길은 주차장 건너편 에서 바로 올라갈수있는 1길 이었다..
하지만 그끝은 모두 꼭대기 등대에서 만나게 되는 길이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 "등대"..
들어가 보지 않고는 견딜수 없게 만드는 View가 죽이게 환상적 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일잔..(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핫쵸코..)
조타..ㅋ
카페가 경치좋고 잘만들어 졌으니 커피값도 이쁘면 참 좋을텐데..
(머그잔 에라도 커피를 마셨으면 좋았을텐데 테이크아웃컵 에다 담아줘서 좀 아쉬웠음..)
그렇게 일상을 지내다가도 문득문득 고개를 쳐드는 삶의 회의..
견딜수 없는 결핍감..
아프다 말못하고 간직한 속내는 파랗게 울다가 하얗게 흩어져 버리기 일쑤였다..
부질없이 흘러버린 세월들..
눅눅한 바람과 함께 이렇게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면 어느새 속빈 강정같은
내모습은 한꺼플씩 벗겨져 알몸이 되는듯 초라해진다..
어디로 가야할지 어디까지 갈수 있을지 몰랐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갈곳이 없었다..
가장 기쁘고 가장 울고 싶을때 나보다 더 기뻐하고 슬퍼해줄 누군가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느닷없이 나타나도 반가움에 웃어줄 사람..
아무것도 대답하기 싫어할 얼굴이라면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을 사람..
기다림은 보고픈 마음을 더욱 간절케 했다..
기다릴수록 그리운 마음..
바람이 일었다..
미움처럼 그리움 처럼 바람이 일었다..
.
.
빈 테이블위에 놓인 두개의 커피잔이 바람이 불적마다 잔물결 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겨울바다에 가는 것은
바로 나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고독을 만나러 가는 것이고
자유를 느끼기 위해 가는 것이다
동굴 속에 머물러 지내다가
푸른 하늘을 보러 가는 것이다
겨울 바다에 가는 것은
갈매기 따라 날고 싶기 때문이다
시린 바닷바람 가슴 가득히 마셔
나를 씻어내고 싶어 가는 것이다.
(겨울바다에 가는 것은) -양병우-
이럴땐 술한잔 하는 사람들이 더많을텐데..
하지만 난 좋아하지 않아도 차라리 커피나 한잔하는 쪽이다..
술과는 별로 친해지는 체질도 아닌데다가 취하면 오히려
불유쾌해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ㅋ
사실..
술한잔으로 기분을 풀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긴 하다..
그래도 술은 여전히 내게는 늘 가까이 하기에 어려운 상대 일뿐이다..
차향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테니 향기로 취기를
이길수야 없는 일이겠지..^^
예전에 서울 구로동 어딘가에 나포리 라는 음악다방이 있었다..
구로동 이라는 지역탓에 종일 노동에 지친 젊은이들이 해질 무렵이면 하나 둘 모여와
음악으로 고된 하루의 피로를 풀며 나름 청춘을 태운곳 이다..
이곳의 나포리 다방은 왠지 레트로 감성을 불러 일으킨다..
바람의 언덕 이라고 했다..
싸늘한 바람이 감도는 골목안은 멀리 개짖는 소리가 메아리 퍼럼 울렸다..
왠지 시선을 붙잡는듯 카페라기 보다는 다방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곳임을
명확하게 알게 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간듯 시간이 멈춰있는 듯한 나포리 다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 원두커피향 보단 쌍화차향이 더 진하게 풍겨 올것만 같았다..
나포리 다방의 입구에 서서 벽에 걸려있던 김진자 시인의 "나포리 다방"이란 시를
속으로 읽고나선 마치 1970년대의 한편의 흑백영화를 본듯한 느낌이 잔상으로
남아 있어 따뜻함과 아픔이 동시에 느껴졌다..
"아부지는 날이면 날마다 그다방에서 사셨지..
몹시 화난 엄마가
아부지 당장 찾아오라며 등 떠밀면
입안의 눈깔사탕 오물거리며
찾아갔던 나포리 다방..
망망대해로 나가서
피땀흘려 벌어온 돈..
모조리 쪽쪽 빨아들인다며
울엄마가 제일 싫어했던 나포리 다방.."
-이동순-
아버지와 엄마가 바라본 나포리 다방의 모습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삶의 풍경 이었다..ㅋ
바다가 보이는 카페..
바다가 보이는 곳이라면 굳이 카페가 아니라도 아릅답지 않은 곳 이 또 있을까만은 그곳이
어디이든 그곳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일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닿지 않은 곳이라면 아름답다거나 좋다거나 하는
느낌 조차 없을테니..
누군가와 동행을 하면서 바다도 보고 산을 보며 여행을 하는것도 좋지만 어쩔땐
그저 혼자서 걸으멍 쉬멍 세상구경을 하는것이 좋을때도 있다..
떠나간 사람들..
남아 있는 사람들..
찾아올 사람들..
논골담길은 여느 곳처럼 예쁘게만 색칠되어진 단순한 벽화마을이 아니었다..
어제와 오늘을 살고 있는 묵호 사람들의 파란만장했던 삶이자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놓여져 있는 길이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논골담길은 마을의 꼭대기에 빛나는 묵호등대 처럼 언젠간 다시 빛날
묵호를 그리며 함께 만들어가는 희망의 샘 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