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6. 23:45ㆍ블로그 에세이/낙 서

24절기중 22번째 절기에 해당하는 동지는 어릴적엔 그 의미를 잘모르고
그저 팥죽이나 먹는날 인줄로만 생각했다..
훗날 동지는 밤이 가장 길고 낯이 가장 짧은 날이란걸 알았으며 한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붉은 팥죽을 끓여 먹으며 액운을 쫒는다는 걸 알았다..
고대인 들은 동지를 태양이 죽음에서 부활한 날로 여겨 태양신에게 제를 올렸다고도 한다..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동지는 신앙적인 측면이 강했다..
평소 신라 선덕여왕의 미모를 흠모해왔던 지귀라는 인물이 한번만 이라도 여왕의 얼굴을 보기위해 근심하던차에 마침 행차에 나선 여왕의 앞을 막아섰다..
관리들이 쫓아내려하자 여왕은 만류하며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면 내가 갈것이니 물러서라 했다..
지귀는 여왕이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렸으나 여왕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애가 탄 지귀는 그자리에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이후 신라 곳곳에서 알수없는 화재사건이 연이어 일어났다..
신라의 고승이 말하기를 지귀가 곧 화귀가 되어 복수 하는것이니 팥죽을 쑤어 문앞에 바르면 화귀가 접근하지 못할것이라 했다..
그리하여 화귀를 물리쳤다는 썰이 있다..ㅋ
사람들은 팥의 붉은색이 악귀를 쫒는다고 믿었으며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동지를 깃점으로 다음날 부터 밤보다 낯의 길이가 점차 길어지니
엄격하게 본다면 해가 바뀌는 이날이 설 이라고 보아도 무방 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실제로 민간에서는 동지를 작은 설 이라고 여겼다..
동지날이 다가오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붉은팥을 정성스레 씻어 물에 불리고
삶아 팥죽을 지으셨다..
모락모락..
뽀얀김이 가득한 부엌은 혹한의 한겨울 임에도 따뜻한 온기가 넘쳤다..
하얀색 에이프런을 두른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예뻐 보였지만 엄마는 내게 눈길을 줄 여유도 없이
팥죽을 짓기에 손길이 바쁘셨다..
삶아진 팥을 몇알 쥐어 입안에 넣어주시곤 "맛있니..? " 하시던 물음에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던 내게
어머니는 이세상 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 단 한사람 이었다..
한겨울..
냉장고가 없던 시절..
장독대에 팥죽을 담은 냄비를 내어놓고 깊어가는 겨울밤에 출출해지면
아버지는 차가운 팥죽에 하얀설탕을 한웅큼 넣고 휘휘저어 달달한 팥죽을
우리에게 건네 주셨다..
설탕이 가미된 팥죽은 이 가 시릴만큼 차가웠지만 단맛이 가득한
기막힌 맛이 입안에 가득했다..
그렇게 한방에 모여앉은 우리식구는 팥죽 한그릇에 행복한 밤을 보냈었다..
우리 어릴때만 해도 설탕이 귀한 시절이어서 어쩜 설탕의 맛이 기억에
더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ㅋ
근래에 들어 설탕이 유해식품 으로 기피대상이 되어 있어서 되도록 이면 멀리하려 노력 하지만
팥죽과 설탕의 만남은 환상적인 조합 이었음을 부인하지 않을수 없다..^^
지금은 동짓날 이라고 해서 팥죽을 직접 해먹는사람들도 드물지만 굳이 동지가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팥죽을 사 먹을수 있게 되었다..
추운 동짓날..
시린손을 호호 불어가며 팥죽을 지으시던 어머니의 수고와 아버지의 인자한 미소를 가슴에 담으며
지금도 가끔 팥죽에 설탕 한스푼 듬뿍 넣어 먹을때면 한방에 모여앉아 팥죽 한그릇에
행복해 하던 동짓날 긴긴 그 겨울밤이 생각난다..
'블로그 에세이 > 낙 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향록의 푸른얼굴들.. (0) | 2024.01.26 |
---|---|
제야의 밑 에서.. (0) | 2024.01.19 |
눈이 옵니다.. (2) | 2023.12.17 |
나만의 천군.. (0) | 2023.11.30 |
육군 제5161부대 (1) (0) | 2023.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