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1 화 인어공주를 위하여..

2024. 12. 10. 00:31음악이 흐르는../음악에세이

 

 

1   인어이야기 / 김보형

 70년대 발표된 아름다운 포크 송으로 허림이 오리지널... 김보형이란 여가수로 90년대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준비했음.

 

2   Bird On The Wire / Leonard Cohen

 캐나다 출신으로 1969년 작품. 그의 명반 'Songs From A Room'에 수록.

 

3   Smoke Gets In Your Eyes / J.D. Souther

 플래터스의 No.1 송을 컨트리 록 가수 제이디 사우더가 리메이크해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음.

 

4   향기로운 추억 / 박학기

 박학기의 데뷔 앨범에 수록돼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곡으로 미성의 보컬이 돋보이는 노래.

 

5   웃는 모습이 예쁜 그녀 / 최용준

 1989년 데뷔해 90년대 초반까지 록가수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최용준의 90년대 초반 발표곡. 

 

6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 / 예민

 포크가수로 섬세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목소리가 일품인 곡. 1992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의 대표적인 히트곡.

 

7   Les Yeux Ouverts / Enzo Enzo

 프랑스 출신의 프렌치 팝 가수로 1990년대 초반 리메이크 작품. 영화 '프렌치 키스'의 주제가로 많은 사랑을 받았음.

 

8   Moon River / Audrey Hepburn

 1961년 자신이 직접 주연으로 열연했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주제가. 오드리 헵번의 소박한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러브 발라드.

 

9   Girl / Beatles

 1965년 발표곡.

 

10  그녀가 웃잖아 / 김형중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김형중의 첫 솔로 작품.

 

11  사노라면 / 이소라+김장훈

 

12  8월의 크리스마스 / 한석규

 한석규, 심은하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주제가.

 

13  Must Say Goodbye / 김현철

 전지현 주연 영화 '시월애' 주제가.

 

14  꿈에 / 조덕배

 1986년 작품으로 조덕배의 초기 히트곡.

 

15  Goodbye / Jessica

 스웨덴 출신의 팝 가수로 1998년 작품.

 

16  내 어린 날의 학교 / 양희은

 양희은이 지난 해 발표한 곡으로 영화 선생 김봉두의 주제가로 쓰였음.

 

17  Little Mermaid Theme

 

18  그대와 영원히 / 이문세

 유재하가 작사, 작곡한 곡으로 이문세가 불러 많은 사랑을 받았음. 최근 이 곡이 CF 배경음악으로 쓰이고 있음. 

 

19  인어이야기 / 김보형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151화 - 인어공주를 위하여 

 

(M) 주제음 - 인어 이야기 

 

(E) 비행기 기내 소음 (안내방송에 사람들 소리 등등)

남  일중독증

    이게 내가 가진 병명이다

    오직 일만이 정신적으로 지탱할 힘이 되는 상태...

    이게 일중독증의 사전적 의미라고 한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했고

    마음 먹은 일을 다 끝내지 못하면

    일감을 집으로 가져오기 일쑤였다

    주말에도 회사에 나갔고

    잠시라도 일에서 떠나 있으면 

    불안해지고 만다

    증권사의 업무라는 게 워낙 바쁘고 경쟁이 치열하기도 했지만

    너무 힘들게 7년을 일하다 보니

    온몸이 망가져버렸다

    편두통에 심각한 위염이 생겼고, 

    운동부족으로 관절염에 시달려야 했다.

    의사는 내게 잠시 휴가를 내고 여행 다녀올 것을 강력히 권했다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가방을 싸 비행기에 올랐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M) 

 

(E) 바닷가 소음 + 차 와서 멈추는 

남  쉬기에는 확 트인 바닷가가 좋을 것 같아

    일단 바다로 왔는데

    여전히 편안해지진 않는다

    물 속에 거뭇거뭇한 것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인다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모양이다

    그 옆으로 앉아 쉬기에 좋아 보이는 바위가 있어

    일단 그쪽에 가서 앉았다

(E) 휘이익~ 해녀들 휘파람 소리

남  해녀들은 휘파람 소리로 자기들끼리 뭔가 이야기를 주고 받나보다

    끊임없이 물 위로 나와 휘파람을 불어댄다

    담배 한 대를 꺼내 피우려고 하는데

(E) 라이터 켜는

여  지금 여그서 뭐하시는거래유?

남  예?

여  불턱서 담바구를 피우시믄 워쩌냐구유

남  불턱이 뭐요? 담바구요?

여  아니, 여그가 해녀들 쉬는 불턱인디.. 담바구 피우믄 안된다 이말이쥬

 

남  한참 설명을 듣고서야 알았다

    이 바위는 해녀들이 옷도 갈아입고 와서 쉬기도 하는 곳인데

    담배를 피우면 안된다.. 이런 말이었다

(M)

 

남  나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해녀는 젊었다

    얼굴은 까맣고 건강해 보였다

    잠수복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마치 바닷속에서 막 건져 올려진 활어처럼

    싱싱해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가 들고 있는 바구니 속에는

    전복이며 소라 같은 것들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남  그거... 파는 거에요?

여  야?

남  그... 바구니에 담긴 거요

여  아... 원래는 팔기도 허는디유, 오늘은 안팔아유

남  왜요?

여  울집에서 민박하는 손님들이 좀 갖다 달라 그래서유

남  민박도 하세요?

여  야. 저쪽 소사린디... 왜유? 민박하시게유?

남  네. 안그래도 숙소를 찾고 있었는데 잘됐네요

 

남  바닷가 전망 좋은 호텔에 예약까지 해두었는데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녀의 싱그러운 미소가 좋아 보였는지

    그녀의 바구니 속 전복과 소라가 탐이 났는지

    그건 모를 일이다

(M) 향기로운 추억 

 

남  그녀가 안내해준 민박집은

    소박한 시골집이었다

    잘 닦여진 나무 마루가 반짝반짝 윤이 나는 집

    작은 마당가 텃밭에 상추며 호박이며 깻잎 같은 것들이 자라고 있는 집

    밥을 지을 때면 솟아 오른 굴뚝 위로 하얀 김이 맛있는 냄새를 뿜어내는 집

    어린 시절 찾아가곤 했던 할머니 집과 많이 닮아 있었다

 

여  여기에유

남  예...

여  이짝 방이 비었거든유. 짐 풀고 나와서 씻어유. 물 따습게 데워줄까유?

 

남  아직 온수가 나오지 않는 집이 있구나

    오랜 도시 생활에 젖은 나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닫는다

 

여  저녁은 이따가 7시에 먹을거구만유

    마당에 평상 위로 나와유

 

남  그녀는 마당의 텃밭으로 가더니 상추를 뜯어냈다

    

여  상추쌈도 해먹을거에유. 고기는 없구유. 그냥 된장이랑 고추에다가...

    매운 고추 먹을 줄 알아유? 

 

남  돌아보며 그녀가 웃었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계나 의심의 빛이 전혀 보이지 않는 웃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 지는 기분이었다

(M) 

 

(E) 밥 먹는 소리들 + 도란도란 얘기 소리 + 멀리 개짖는 소리

남  밤바람이 조금 쌀쌀했지만

    마당가에 불을 피워 놓으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꽁보리밥에 싱싱한 상추, 매운 고추와 구수한 된장

    그리고 그녀의 바구니 속에 있던 싱싱한 전복과 소라가

    상을 가득 채웠다

    그것들을 씹으며 생각했다

    밥을 먹는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구나

    내게 식사시간은 언제나 되도록 빨리 끝내야 할 숙제 같은 거였다

    가끔은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알약 하나만 먹어도 한끼 식사가 끝나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여  워때유? 맛이 괜찮아유?

남  네. 맛있네요

여  밥 더 먹어유. 

남  아뇨, 많이 먹었는데...

여  많이 먹기는... 남자가 이깐걸로 양에나 차간...

 

남  그녀가 내 밥그릇을 뺏어 들고 부엌으로 향하다가 깜짝 놀란다

 

여  아이구~ 여그다 알을 낳아놨네.

 

남  텃밭 구석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그녀

    환하게 웃으며 돌아보는데, 그 손에 달걀 하나가 쥐어졌다

 

여  달구새끼가 여그다 몰래 알을 낳아놨네유. 아즉 따순디... 드실 분 안계셔유?

(M)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남  잠자리에 들어서도 

    계속 그녀의 얼굴이 떠올라 웃었다

    아무도 생계란을 먹지 않겠다고 하자

    이 좋은 걸 왜 안먹냐는 듯이 갸웃거리던 그녀가

    이빨로 달걀의 끝을 톡 치고

    쪽 빨아 먹었다 

 

여  카아~맛나다~

 

남  입가를 쓱쓱 닦으며 입맛을 다시던 그녀의 표정이

    생각할수록 웃겼다

    그러다 순간 깜짝 놀랐다

    잠자리에 혼자 누워 이렇게 슬쩍 미소를 지어 본 것도 

    참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일은 무슨 일을 해야할지

    오늘 끝내지 못한 일은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잔뜩 인상을 쓴 채 잠이 들기 일쑤였다

    그렇게 잠이 들면 꿈속에서 언제나 누군가에게 쫓기곤 했다

    아침에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소스라치게 일어나면

    도망치듯 집에서 빠져 나와 전쟁터로 향했었다

    그게 바로 어제인데, 왠지 아득하게 느껴진다

(M)

 

(E) 꼬끼오 닭소리 + 멀리서 댕댕 은은한 교회종소리 

남  알람 소리 대신 닭 울음 소리가 날 깨운다

    밤새 꿈 한번 꾸지 않고 편안한 단잠을 잔 나는

    여유롭게 기지개를 켠다

    간밤에 군불이 들어왔는지

    이불 밑에 온기가 있다

    아직 일어나고 싶지 않다

    갑자기 발동한 게으름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옆으로 돌아누워 본다

(E) 부엌문 삐꺽 열리며 나오는 소리 + 쌀 씻는 소리 

남  그녀가 벌써 일어났나보다

    어떡할까 생각하다가 아침 인사를 제일 먼저 하고 싶다는 욕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E) 문 열고 나가는 소리 (옛날식 여닫이 문)

남  잘 잤어요?

여  오메? 왜 벌써 일어났대유? 

남  새벽 공기 좋잖아요~ (심호흡 해보는)

여  아자씨는 서울서 오셨대유?

남  네. 그런 것 같아요?

여  야~ 얼굴이 허여멀건헌 거이 딱 서울양반이네유

남  내 얼굴이... 허여멀건해요?

여  야... 여자 얼굴 맹키로... (하다가 흠흠 냄새 맡는) 이게 뭔냄새랴?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E) 후다닥 뛰어가는

(E) 솥뚜껑 여는 

여  아이고~ 밥 태워먹었네~~

(E) 따라 들어가는

남  많이 탔어요?

여  위에는 좀 괜찮은디... 밑에가....

남  누릉지... 해먹으면 되지 않나? 옛날에 우리 할머니는 그러시던데...

여  (솔깃) 누릉지 좋아해유?

(M)

 

(E) 누릉지 먹는 소리 

남  옆방에 민박하는 사람들은 

    소화 잘되는 누릉지가 나왔다며 좋아했다

    

여  아, 일부러 누릉지 만드느라 힘들었슈~

    그게 왠간한 기술 갖곤 안되는 일이라니께유~

 

남  능청을 떨며 나를 보고 찡긋 웃는 그녀

    나도 그녀를 보며 따라 웃어주었다

(E) 설거지 하는 소리

남  식사를 끝내고 마당가에 앉아 설거지 하는 그녀 옆으로 다가갔다

 

남  손시럽지 않아요? 지하수 이게 디게 차던데...

여  괜찮아유. 시럽기로 하믄 바닷물이 더 시럽쥬

남  바닷속은 따뜻하지 않아요?

여  바닷물 속에 있으믄유, 온도가 차다고 몸이 차고

    온도가 따습다고 몸이 따습고 이런게 아니에유

남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여  암만 물속이 차두유, 소라랑 전복이랑 잘 보이믄 나도 모르게 신명이 나서

    하나도 추운 줄 몰라유. 근디유, 가끔 발에 쥐가 날 때가 있슈

    둘러봐도 암도 없고 나 혼잔디.. 몸에 쥐가 나고 이대로 죽겄구나... 싶으믄

    바닷속이 그렇게 찰 수가 없어유. 

 

남  갑자기 쪼그리고 앉아 있는 그녀의 뒷모습이 외로워 보였다

    그 차고 깊은 바닷속에서 혼자 암초 사이를 헤매고 다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M)

 

남  물질 하러 나간다는 그녀를 따라 나섰다

 

여  물질 하는 바닷가는 볼 것도 없어유. 

    옆방 손님들 따라서 저짝에 폭포나 절 같은 데 귀경 가지 그래유?

남  아니에요. 그냥 나는 은서씨 물질 하는 거 구경할래요

여  워메? 언니들이 놀릴틴디...

남  왜 놀려요?

여  원래 우리 해녀들이 연애를 하면유, 남자친구가 불턱에 앉아서 귀경하거든유

    물질 끝나고 나오면은 수건도 주고 따순물도 주구유

남  아.... 

(E) 바다 소리 + 휘파람 소리

남  어제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서 물 속을 왔다 갔다 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똑같은 옷을 입은 해녀들 사이에서도

    그녀를 구별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 그렇게 앉아 구경하던 나는

    문득 그녀에게 따뜻한 커피라도 건네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바닷가 언저리에 가게를 찾아 한참 헤매다 돌아오는데

    해녀들이 하나 둘 바위 위로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난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캔커피가 식지 않도록 꼭 손에 쥐고

    걸음을 빨리 했다

    맨 마지막으로 물 속에서 푸후~ 하고 올라오는 그녀가 보였다

(E) 뛰어가는 소리

여  워디 갔다 온대유?

 

남  까만 얼굴 위로 그녀의 새하얀 이가 반짝 빛난다

 

남  여기요....

 

남  소중하게 품어온 캔커피를 내민다.

 

여  워메....

(E) 해녀들 웃는 소리 

남  몰려 있던 해녀들이 까르르 웃어댄다

    그녀는 좋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한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웃는다

(M) 그녀가 웃는다 - 김형중

 

남  바구니에 있는 것을 바닷가 상인들에게 넘기고

    빈 바구니를 들쳐맨 그녀

    그녀와 함께 집까지 오는 길을 걷는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다

    

여  아자씨는 여그까지 왜 왔대유? 여름 휴가철도 다 지났는디...

남  치료 받으러 왔어요

여  치료유?

남  나는 하루라도 일을 안하면 못 견디는 병에 걸렸거든요

여  그런 병도 다 있대유?

남  네. 날마다 더 많이.. 더 빨리.. 일을 해야 하는 병이에요

    잠깐이라도 쉬면 남들한테 지는 거 같고....

여  ... 서울에는 그런 병도 있는갑네유

남  네... 그런 병도 있네요 

여  저기... 해 좀 봐유

 

남  그녀가 가리키는대로 해를 보았다

 

여  빨리 달음질치믄 해도 빨리 따라오구유

    천천히 걸어가면은 해도 천천히 따라오잖아유

    살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에유

(M) 사노라면 - (여자) 

 

남  그녀의 집에 머무르는 동안

    매일 그녀가 물질하는 바닷가에 따라갔다

    항상 점퍼 주머니 속에 따뜻한 캔커피를 품고 있다가

    그녀가 물에서 나오면 건네주곤 했다

    그녀는 다른 해녀들의 질투어린 야유를 들으면서도

    즐겁게 커피를 마셨다

    그녀와 함께 길어진 그림자를 보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E) 풀벌레 소리 + 소쩍새 소리 + 가끔 개짖는 소리 

남  저녁을 먹고도 방에 들어가지 않고

    평상에 앉아서 별을 보고 있었다

(E) 멀리 솥뚜껑 열리는 

(E) 나오는 걸음

여  감자 좀 쪘는디... 먹을래유?

남  고마워요

여  ....청자라구... 친구가 있는디유. 갸가 자꾸 놀려유

남  뭐라구요?

여  그짝이 남자친구냐구유

남  ....네?

여  그래서 아이구 아서~~ 아니라 그랬슈. 곧 떠날 손님이라구...

남  ....네

여  .... 언제 가세유?

남  .... 가야죠 곧...

 

남  사실 휴가는 내일까지다

    이곳에 있는 동안 시간을 잊어버리고 살았다

    뉴스도 보지 않고, 주가도 궁금해하지 않고

    핸드폰도 꺼놓은 채...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M) 8월의 크리스마스 - 한석규

 

남  내가 잘못 보았을까

    잘못 보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곧 돌아가야 한다는 내 말에

    그녀의 까만 눈에서 눈물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남  여기 있는 동안에 은서씨가 너무 잘해줘서요

    돌아가도 이제 좀 괜찮을 것 같아요

    여기 바닷가 생각하면... 일하다가도 잠깐씩 쉴 수 있을 것 같아요

여  야... 다행이네유

남  춥다. 안추워요? 

여  들어가 주무세유. 지는 좀만 더 앉아있다가 들어갈래유

남  .... 그래요. 잘자요.

(E)들어가는 소리

남  그녀가 따뜻하게 지펴놓은 군불과

    빳빳하게 풀을 먹여놓은 새이불 덕에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E) 새벽닭 우는 소리

남  새벽빛에 문득 잠에서 깨

    화장실에 가려고 잠깐 나왔는데 

(E) 문 살짝 여는 

남  그녀가 보였다

    그때까지 평상에 쭈그린 채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바닷속에 혼자 떠 있는 그녀를 상상했을 때처럼

    외롭고 추워 보이는 모습이었다

(M) 시월애 주제가 - 김현철

 

남  안... 잤어요?

여  야? 

 

남  깜짝 놀란 그녀가 벌떡 일어난다

    눈가에 눈물자국이 선명하다

 

여  잠이 안와서유. 커피 먹으면 잠을 못자서...

남  네? 커피 마시면... 잠 못자요?

여  야? ..... 야

남  그럼 왜 말 안했어요... 난 그것도 모르고 날마다 캔커피 사다 줬는데...

여  괜찮아유. 며칠 잠 좀 못자면 어때유.

    

남  그녀가 씩 눈자위를 훔치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커피 때문에 밤잠을 설치면서도

    언제나 고마워하며 캔커피를 받던 그녀가 떠올랐다

    순수한 그녀는 낯선 내게

    마음을 열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들어간 부엌에서 맛있는 밥냄새가 흘러나왔다

    그 냄새가 오래오래 그리울 것 같았다 

(M)

 

남  아침을 먹고 나자, 그녀가 물질을 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나는 짐가방을 챙겨놓고 서 있었다

 

남  은서씨...

여  워디.. 가신대유?

남  네. 실은 오늘 오후에 올라가야 돼요. 

여  아.....

남  물질 나가요?

여  야....

남  조심해서 잘 다녀와요. 

여  아이구 이 달구새끼가 또 여그다 알을 낳아놨네... 

 

남  인사를 받지도 않고 

    그녀가 텃밭 뒤에 오롯이 놓여져 있는 달걀을 쳐든다

    먹어볼거냐는 질문도 하지 않고

    이빨로 톡 깨더니 쪽 삼켜 버린다

    고개를 쳐든 그녀의 눈에서 눈물 한방울이 톡 떨어지는 것을

    난 보고야 말았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M)

 

(E) 도시 소음

남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E) 사무실 소리 (컴퓨터, 전화, 사람들 소리 등등)

남  또다시 정신 없이 돌아가는 삶 속이다

    은서네 집에 있을 땐 

    하루해가 느릿느릿 지나갔는데

    이곳에서의 시간은 

    눈깜짝 할 사이에 해를 잡아 먹어 버린다

    한강 위로 해가 떠올랐나 싶으면

    어느새 지고 있었다

    그런데 난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가끔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있다

    컴퓨터 자판 위에 손을 멈춘 채

    굴뚝 위로 피어오르던 밥짓는 연기를 생각하고

    어깨위로 전화기를 두세개씩 걸쳐놓고 통화를 하다가

    바다 위로 울려퍼지던 맑은 휘파람 소리를 생각한다

    주말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나는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M)

 

(E)차 와서 멈추는 + 바다 

남  맨 처음 그녀를 만났던 곳, 불턱에 왔다

    그러나 바다엔 아무도 없었다

    벌써 일이 끝났나 보다

    조금 허탈한 마음에 돌아서려는데

    검은 잠수복 하나가 물 위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게 보였다

    멀리 있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였다

 

남  (외치는) 은서씨! 은서씨!!!!

 

남  아무래도 이상했다

    난 정신없이 웃옷을 벗어 던지고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E)첨벙 + 물 속 소리

남  급한 마음에 물 속으로 뛰어 들었지만

    눈을 뜰수가 없었다

    아무리 손발을 흔들어 보아도

    몸이 점점 밑으로만 가라앉는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인어공주를 보았던 것 같다 

(M)

 

(E)뺨 철썩 철썩 때리는 

여  정신 좀 차려봐유~~!! 아이구 이게 뭔 일이래?

(E)기침 하며 깨어나는

여  정신 좀 들어유? 괜찮아유?

 

남  정신이 들었을 때, 난 불턱 위에 있었고

    잠수복을 입은 그녀가 내 뺨을 때리고 있었다

 

남  은...서씨

여  그래유. 워떻게 된거래유?

남  은서씨는 괜찮아요? 아까... 물 속에서 쥐난 거 아니었어요?

여  그라믄... 나 구할라고 뛰어든거에유?

남  난 물속에서 쥐난 줄 알구요

여  수영도 못하는 양반이... 물속에 사는 해녀를 구한다고 뛰어든대유? 

    지금 정신이 있대유 없대유? 못살겄네 참말로.... 

 

남  날 야단치는 그녀의 말 끝에 물기가 묻어 있다

    내 얼굴을 쓰다듬는 그녀의 손바닥엔 굵은 굳은살이 박혀 있다

    난 가만히 그녀의 손을 잡아 내 가슴에 얹어 본다 

(M)

 

(E) 공사하는 소리

남  아저씨~ 점심 먹고 하세요~~!!

여  이짝으로들 오세유. 상추쌈인디유, 고기는 없고

    매운 고추랑 된장이랑 해서 드세유

남  생계란도 있어요.. 여보! 당신 계란 좀 그만 먹어!!

여  왜유? 맛있잖아유~ 

 

남  바닷가에 멋진 민박집이 지어지고 있다

    이 집의 이름은 '인어공주의 집' 

    우리는 이 집에서 함께 느릿느릿 살아가기로 했다

    텃밭을 일구고 물질을 하고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과 세상 사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천천히 산 위로 떠올랐다가 바다 밑으로 사라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살아가기로 했다.  

(M) 주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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