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3화 아내의 방

2024. 12. 19. 00:18음악이 흐르는../음악에세이

 

 

1   잘가요, 내 사랑 / Zero

"잘가요 내사랑..잘 살아야 해요.. 다주고 떠나요..내가 가질게요.. 슬픈 이별..아픈 상처..모두 내 몫이죠.. 그리워지면 내가 주웠던.. 아픈 기억 떠올려봐요.. 아마 난 쉽게 잊혀지겠죠.. 상처뿐인 기억이니까.." 내용의 곡으로 KBS 드라마 '애정의 조건'에 삽입돼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음.

 

2   내가 만일 / 문소리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에 삽입된 곡으로 이 영화의 주연으로 열연했던 배우 문소리가 소박하게 불러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

 

3   Natasha Dance / Chris De Burgh

 아이리쉬계 영국인으로 1999년 작품. 애잔한 선율과 애틋한 보컬이 멋진 조화를 이룬 노래.

 

4   동행 / 최성수

 "아직도 내게 슬픔이 우두커니 남아있어요 그날을 생각하자니 어느새 흐려진 안개 빈밤을 오가는 날은 어디로 가야만하나 어둠에 갈곳 모르고 외로워..."란 내용의 80년대 발표된 노래. 

 

5   Wrong Rainbow / Peter Yarrow

 '피터 폴 앤 메리'를 해산한 후 발표한 곡으로 가을의 서정을 담은 노래. 지난 시절 연인과 행복한 때를 회상하는 애틋한 분위기의 곡.

 

6   Pale Blue Eyes / Velvet Underground

 사이키델릭 록 그룹으로 1969년 작품. 몽환적인 분위기의 곡으로 우리 영화 '접속'에 삽입된 후 뒤늦게 인기를 얻었음.

 

7   아름다운 너에게 / 문지환

 지난 겨울 전국 안방시청자를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화제의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 삽입된 애절한 발라드.

 

8   가을빛 추억 / 신승환

 신승훈의 초기 작품으로 그의 2집 앨범 타이틀 곡 중 하나.

 

9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 기영

 드라마 '애정의 조건'에 삽입돼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발라드.

 

10  Yamshick / Djelem

 우크라이나 출신의 혼성 집시 밴드로 2001년 발표곡.

 

11  Manha De Carnaval / Astrud Gilberton

 영화 '흑인 올페'의 주제가로 우리 영화 '정사'의 주제가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음.

 

12  텅빈 마음 / 이승환

 이승환의 데뷔 곡으로 1989년 작품.

 

13  정 / 김건모

 김건모의 7집 앨범 수록곡으로 아름다운 노랫말과 김건모의 친밀감 넘치는 보컬이 멋진 조화를 이룬 노래.

 

14  사랑이 저만치 가네 / 김종찬

 80년대 우리 가요계를 대표했던 곡 중 하나로 떠난 연인에 대한 강한 그리움을 표현한 노래.

 

15  Love's Strange Ways / Chris Rea

 영국 출신의 남성 팝 가수로 짙은 허무를 노래한 곡. 음악 에세이에 가끔 소개되는 노래.

 

16  나의 시내여 / Origa

 러시아 출신의 팝페라 여가수로 90년대 발표된 곡. 환상적이면서도 한이 서리 장면에서 가끔 소개되는 노래.

 

17  잘가요, 내사랑 / Zero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153화 - 아내의 방 

 

(M) 잘가요 내사랑 / 제로

 

(E) 회사 소음

 

남  하루 종일 일손이 잡히질 않는다

    일분이 멀다 하고 주머니 속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

    부재중 전화가 와 있지 않나 확인해 본다

    병원에 간 아내에게 걸려올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결혼생활 5년째를 맞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고

    서로에게 더 바랄 게 없을 만큼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아이가 없다

    주변의 염려들을 처음엔 무시했지만

    서서히 불안해지기 시작해 

    결국엔 병원에서 검사를 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이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E) 전화벨 소리

남  여보세요

여  여보 나야

남  어..... 

 

남  차마 결과가 어떻게 됐냐는 질문은 할 수가 없었다

 

여  나올래? 점심이나 같이 먹자... 

(M)  내가 만일 / 문소리

 

 

(E) 식당 소음 

남  우리는 한참 동안 아무말 없이 밥을 먹었다

    반찬이 무슨 맛인지, 배가 고픈지 부른지도 느끼지 못한 채

    그냥 앞에 앉은 서로의 눈치만 보며

    밥을 먹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난 후

    마침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남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

여  어... 그게....

 

남  말끝을 흐리는 걸 보니 뭔가 잘못된 듯 하다

 

남  왜... 괜찮아... 얘기해봐

여  좀...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더라구...

남  힘들어? 뭐가.. 아니... 왜?

여  ...... 미안해 여보

남  왜 그러는데... 답답하게 굴지 말고 속시원히 얘기 좀 해봐

여  내가... 좀 그렇대... 난관이 막혀 있어서 임신이 힘들대...

 

남  평소에도 몸이 약했던 아내였다

    가장 나쁜 상황을 상상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아내의 입에서 그 얘길 듣고 나니 

    숟가락을 들고 있던 손에서 힘이 빠졌다

(M)  Natasha Dance / Chris Deburgh

 

남  그날 밤... 난 퇴근을 하면서 작은 케익 하나를 샀다

    괜한 자책감에 빠져 있을 아내를 위한 선물이었다

(E) 띵똥~ + 문 열리고

여  당신 왔어? 

 

남  문이 열렸을 때 난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거실 테이블 위에는 작은 케익이 이미 불을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  당신도 케익 산거야?

남  이거... 두 개 언제 다 먹냐?

여  그러게...

 

남  서로를 위로해주고 싶었던 마음은

    서로에게 따뜻하게 가서 닿았다

    난 아내의 손을 잡았다

 

남  괜찮아. 난 정말 괜찮아. 우리 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또 혹시 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으면.. 입양도 할 수 있고...

여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남  그럼... 당신 어차피 몸 약해서... 애를 가졌다 하더라도

    낳기 힘들었을거야.. 오히려 잘된 걸 수도 있어

여  고마워....

 

남  아내가 케익 위로 밝혀둔 초가 다 타서 없어질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M) 동행 - 최성수 

 

남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우리의 생활은 달라질 게 없었다

    아내는 여전히 나를 위해 아침을 차렸고

    난 조깅을 하고 들어와 아침을 먹고 출근을 했다

    저녁엔 둘이 함께 강변을 산책하고

    주말엔 가까운 곳으로 여행도 다녔다

    아내는 예전처럼 맑게 웃었고

    나는 추위를 타는 아내를 위해 

    여벌의 스웨터 챙기는 일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 못된 이기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E) 아이들 떠들며 지나가는 소리 

남  동네를 지나다가 꼬마 녀석들이 장난을 치는 모습만 봐도

    괜히 울컥하는 마음이 치밀었고

    목욕탕에 가서 아빠 등을 밀어주는 사내녀석을 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하게 앉아 있기 일쑤였다

    나도 나와 닮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목욕탕도 가고 직장 동료들에게 자랑도 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자꾸 쓸쓸해지고, 억울해졌다

(M)  Wrong Rainbow / Peter Yarrow

 

(E) 열쇠로 문 열고 들어오는 

남  회사 동료들과 술을 먹고

    밤늦게 집에 들어갔다

    아내는 식탁에 앉아 한약을 먹다가 들어오는 나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E)한약 그릇 내려놓는

 

여  이제 와?

남  뭐 먹어?

여  어... 한약... 낮에 어머님이 두고 가셨어

남  먹어봐야 뭐하냐.. 안되는 거라며...

 

남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취중이긴 했지만 실수했다 싶어 얼른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살짝 어두운 그림자가 아내의 얼굴을 스치고 지났다

 

남  그러니까 내 말은... 괜히 당신만 힘드니까....

여  그래 무슨 말인지 알아. 얼른 들어가서 자.

남  ... 미안하다

(E)들어가서 문 닫는 

(M)  Pale Blue Eyes / Velvet Underground

 

남  아내에게 몇 년 동안이나 한약을 해다 바치시던 어머니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눈치 채셨다

    그리고 아내를 집요하게 추궁한 결과

    아내 쪽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셨다

    어머니는 길길이 뛰시며 

    이래서 몸약한 아내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던 거라며

    옛날 얘기부터 줄줄이 꺼내 놓으셨다

    아내는 가시 돋힌 말들을 묵묵히 받아 내고 있었지만

    나는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기어코 어머니가 눈물을 보이고 돌아서게 만든 나는

    하루 종일 담배만 피워댔다

(E) 불 붙이고 연기 내뿜는

 

여  그만 피워. 벌써 한갑 다 피웠네...

남  내버려 둬라. 지금 담배라도 안 피면 돌아버릴 것 같다

여  우리... 입양할까?

남  ...........

여  그때 당신도 그랬잖아. 입양 괜찮다구...

남  아까 노인네 말 못들었어? 입양은 절대 안된다 그러잖아

여  절대 안될 게 뭐 있어.. 우리 아이다 생각하고 키우면 우리 아이 되는 거지...

남  그건 좀... 생각해 보자....

여  왜....

남  병원에서.... 아예 불가능하다 그러든?

여  어?

남  요즘은 시험관 아기니 뭐니... 치료 방법도 많이 있잖아.

    하는 데까지 해보자. 어??

(M)  아름다운 너에게 / 문지환

 

남  애원에 가까운 나의 부탁을 아내는 거절했다

 

여  나 자신 없어. 의사도 확률이 희박하다 그랬구...

    과정도 너무 힘들대. 알잖아. 내 체력으론 못버틸거야.

남  그렇지만... 이대로 포기하자구?

여  우리 둘만 있어도 괜찮다며... 

남  그건 그렇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봐

    우리가 언제까지 젊은 것도 아니고... 

    나중에 나이 먹어서 우리 둘만 남겨진다면...

여  여보

남  둘 중에 한명이라도 먼저 세상 떠난다면.....

    남은 한 사람은 얼마나 외롭겠어... 그때 같은 핏줄을 나눈 자식이라도 없다면...

    안그래?

여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에 대한 추억만으로도 살 수 있을거야

    우리가 살면서 나중에 추억할 것들.. 많이 만들어 두면 되잖아

 

남  난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담배를 들고 불을 붙였다

(E) 담배 불 붙이고 내뿜는 

남  연기 속으로 아내의 슬픈 얼굴이 보였다

(M) 가을빛 추억 - 신승훈 

 

남  그후로 어머니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내게 전화를 하셨다

    아내가 불임 치료를 못받겠다고 하면 이혼을 하라는 게

    전화의 내용이었다

    아직 젊은데다 아이도 없으니

    재혼은 어렵지 않을거라고..

    늙으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손주라도 안겨드리는 게 자식된 도리가 아니겠냐고...

    늘 같은 말들의 반복이었다

    처음엔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지만

    어느 순간부턴 그 말들을 묵묵히 듣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난 이렇게 힘든데.. 여러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예전과 하나 다를 거 없이 밝기만 한 아내가

    가끔은 원망스럽기도 했다

 

여  여보. 우리 갈대 보러 가자

남  뭐?

여  갈대... 작년에 갔던 데 있잖아. 거기 너무 좋지 않았어?

남  피곤해. 이번 주말엔 좀 쉬자

여  우리 주말에 여행간지도 오래됐잖아.

남  ............ 지금 당신하고 여행 갈 기분 아니야 

 

남  짧게 한마디 하고 

    아내에게서 등을 돌려 누웠다

    내 등 뒤에서 아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눈을 감고도 알 수 있었으나

    그녀를 위로하고 싶지 않았다

    이상하게 아내에게 매정하고 잔인하게 굴고 싶었다

(M)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 / 기영

 

남  내가 아내를 괴롭히는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E) 전화벨 소리

남  여보세요

여  어 나야. 전화도 없이 안들어와서... 저녁 먹고 들어와?

남  응..

여  그럼 말을 해주지... 저녁 차려놓고 기다렸는데.....

남  ............. 끊어

여  누구랑 저녁 먹어?

남  후배 애 돌잔치야

여  .......... 아...

남  끊는다.

(E) 전화 끊는

 

남  굳이 아이 돌잔치에서 밥을 먹고 들어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도 됐다

    하지만 심술궂은 내 마음은 자꾸만 아내를 아프게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보다 훨씬 어린 후배들도 

    천사 같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의 재롱을 보며 행복해하는데...

    난 왜 그런 행복을 누리면 안되느냐고... 

    아내에게 항의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다.

(M)  Yamshick / Djelem

 

남  그러던 어느날... 정말 우연히 대학 동창을 만나게 됐다.

    한때 결혼 얘기까지 오갔지만

    그녀가 유학을 떠나게 되면서 헤어졌던 우리는

    반가운 해후를 했다  

    그녀는 벌써 두 아이의 엄마에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멋진 교수가 돼 있었다

    밤새 술을 마시며 그동안 지내온 얘기를 하느라

    우린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새벽 늦게.. 난 집에 들어갔다. 

(E) 문 두드리는, 발로 차고  

남  야! 문 열어!!

(E) 문 열리고

여  어우~ 왜 이렇게 술을 마셨어. 전화는 왜 꺼놓구....

남  술 마실 때 전화 좀 하지 말란 말이야!!

여  알았어. 옷 좀 벗구.... 어휴.... 누구랑 마셨어? 

남  야... 너 유란이 알지... 어? 유란이. 오유란...

여  유란씨? .... 갑자기 유란씨 얘긴 왜 해?

남  오늘 유란이 만났다

여  (굳어지는) 뭐? 당신이 유란씨를 왜 만나? 둘이 왜 만나냐구! 

남  이상한 생각 같은 거 하지 마!

    유란이 벌써 결혼 했어

여  .... 그래?

남  그래. 유란이는 딸 하나에 아들 하나... 낳았다더라.

여  ......... 뭐?

남  기지배... 역시 똑소리 나.... 그렇게 애까지 둘 턱 낳아놓고...

    대학교수자리까지 따고... 역시 똑똑해....

여  지금 그 얘길 왜 해?

남  뭘 왜 해! 왜? 유란이가 애 낳았다니까 자격지심 같은 거 생기냐?? 어? 그런거야??

여  됐어. 그만해!!

(E) 문 쾅 닫고 들어가는

 

남  술 기운을 빌려 한 말이지만

    그 속의 뾰족한 내 진심을 아내는 알아챘을 것이다

    난 길게 한숨을 쉬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M)   Manha De Carnaval / Astrud Gilberto

 

남  아침에 눈을 떠 보니

    아내가 없었다

    늘 이 시간이면 나던 경쾌한 도마질 소리도    

    된장찌개 끓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E) 문 열고 나가는

남  집안 어느 곳에도 아내는 없었다

(E) 옷장 문 여는

남  옷장 속 옷까지 모두 챙겨간 걸로 봐선

    친정으로 간 모양이었다

    결혼하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내로서도 많이 서운했을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퇴근하고 아내를 데리러 가야겠다 마음 먹었다

(E)차소리

남  그러나 퇴근길엔 마음이 달라져 있었다

    일단은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가져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난 차를 돌려 그냥 집으로 왔다

    아내가 없는 텅빙 집에서

    물 말은 밥에 신김치를 얹어 먹으며

    꾹꾹 외로움을 눌렀다

(M) 텅 빈 마음 - 이승환 

 

남  내일은 아내를 데리러 가야지, 내일은 가야지...

    이렇게 계속 미루다가 일주일이 흐르고 말았다

    일주일 째 되던 날 밤...

(E) 열쇠로 문 열고 들어오는

(E) TV 보는

남   TV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데

    아내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짐가방을 든 채 파리한 얼굴로 들어서는 아내를 보고

    난 잠시 뭐라고 해야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리모콘으로 TV를 껐다

(E) TV 끄는 

남  무섭도록 깊은 정적이 흘렀다

    

남  ...... 그동안 어디 있었어?

여  당신이 제일 찾기 쉬운데...

남  장모님 댁 가 있었어?

여  ...... 우리 그만 헤어질까?

남  ...... 어?

여  어제 어머님이 친정까지 오셨더라...

    내 손을 잡고 그만 물러나달라고 그러시더라... 그러면서 우시더라... 

    예전 같으면 무슨 소리시냐고, 지금이 조선시대냐고...

    우리 그이가 나 물러나게 가만 있을 것 같냐고 

    대들었을 것 같은데... 그러질 못했어

    당신, 가만 있을 것 같애서. 어쩌면 당신도 어머님이랑 

    같은 마음일지 모른단 생각이 들어서.     

남  (힘없이) 아니야... 그런 거...

여  아니어도 이젠 상관 없어. 내가 당신을 믿지 못하겠어.

(M) 정 - 김건모

 

남  아내가 이혼하겠다고 나서자

    어머니는 두손 들고 환영했고

    우리의 이혼은 착착 진행됐다

    이혼은 결혼보다 훨씬 간단하고 쉬웠다

    법원에서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오는 길엔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고 있었다

(E)낙엽 쓸리는 소리 

남  가로수 아래 낙엽들이 아스팔트 위를 쓸고 지나갔다

    아내의 어깨가 추워 보였다

 

남  스웨터라도 하나 걸치고 오지

여  이제 당신이 그런 거 걱정 안해도 돼

남  그래... 그렇지.... 

여  잘 가.. 

남  나.. 많이 밉지. 당신한테 했던 약속들 하나도 못 지키고...

여  아니야. 나 오히려 홀가분해. 나도 사람이거든.

남  뭐? 무슨 소리야?

여  그런 게 있어. 어쨌든 잘 살아. 

(E) 또각또각 걸어가는 

남  아내는 그렇게 멀어졌다.

    잠시 그렇게 아내를 바라보다가

    나도 아내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M) 사랑이 저만치 가네 / 김종찬

 

남  어머니의 성화로 이혼 직후부터 난 선을 보기 시작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서로에 대해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너무 오랜만에 하는 일들이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년이 지났다

    여러번의 만남을 통해 한 여자를 만났다

    젊은 시절 아내를 사랑했듯

    그녀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이 정도의 여자라면 두 번째의 결혼생활을 함께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녀는 건강했고, 밝았다. 

    어머니도 그녀를 마음에 들어했다.

    모든 게 잘 되어 가고 있는데도

    난 가끔 양치질을 하다가, 담배를 피우다가, 찬물에 밥을 말아먹다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아내 생각에

    숨이 멎어 올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있는 힘을 다해 큰 숨을 내쉬어

    내 속의 아내 생각을 애써 몰아냈다

(M)  Love's Strange Ways / Chris Rea

 

남  또다시 가을이 왔다. 

    가을이 되면 늘 아내와 가곤 했던 강변의 갈대밭이 있다.

    예전,아내가 함께 가자고 했을 때 매몰차게 거절했던 그곳.

    바람이 싸늘해진 어느 오후

    난 나도 모르게 그곳에 서 있었다

    눈이 시리게 파란 하늘과

    햇살에 반짝이는 잔잔한 강물

(E)갈대 우는 소리

남  바람에 몸을 부대끼는 갈대숲

    그곳은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었다

(E) 걷는 

남  난 천천히 숨을 고르며 한걸음 한걸음 걷기 시작했다

    갈대숲 사이 좁은 길 맞은편으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마저 낯익은... 그녀... 아내였다.

    나도 아내도 너무 놀라 걸음도, 숨쉬는 것도 멈춘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처음엔 아내의 얼굴을 보고 놀랐고 

    다음엔 동그랗게 부풀어 오른 아내의 배를 보고 놀랐다

    아내는 만삭의 몸이었다

(M)  나의 시내여 / Origa

 

(E)바람 소리

남  여.... 여보....당신.... 당신 어떻게....

여  ...............

남  어떻게... 된건지.... 난 도무지... 이해가.....

여  ....... 미안해요

남  미안하다니... 뭐가... 뭐가 미안해! 

여  처음엔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상처 주고 싶지 않아서 속였어요.

남  뭐? 그...럼....

여  맞아요. 우리에게 애가 생기지 않았던 거, 당신 때문이었어요

남  그런데! 그럼 나중에라도 얘기했어야 되잖아!

여  나중엔... 차마 얘길 할 수가 없었어요.

    나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당신 보면서... 그게 자기 자신 때문이라는 거 알면

    스스로를 그렇게 미워하고 괴롭힐 거 같아서... 그럴까봐 무서워서...

남  ...... 당신 나한테 복수한거야?

여  마지막엔.... 그런 마음도 없지 않았어요.

    나도 너무 아팠으니까... 

남  어떻게.... 당신 어떻게 나한테.....

여  ......... 미안해요. 하지만.... 변해가는 당신 모습이 나를 독하게 만들었어요.

    내 사랑을 변하게 만든 것도... 당신이에요.

(E) 걸어가는 

 

남  눈물을 참으며 말을 끝까지 마친 아내는

    서서히 발길을 옮긴다

    갈대숲 사이로 아내의 모습이 사라져간다

    변해 버린 나를, 변해버린 사랑을 

    아내는 그렇게 내팽개친 채

    깊은 가을 속으로 사라져간다

(M) 잘가요, 내사랑 / 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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