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7. 00:47ㆍ음악이 흐르는../음악에세이
1 옛사랑 / 이문세
이문세의 7집 앨범 타이틀로 지난 시절 아름다웠던 사랑을 회상한 노래. 1991년 작품.
2 About The Time / Rod Mckuen
미국 출신의 시인이자 싱어 송라이터로로 1988년 작품. 지난 시간에 대한 회한을 그린 노래.
3 Scarborough Fair / Simon & Garfunkel
옛사랑과의 아름다웠던 사랑을 회상한 곡으로 사이먼 앤 가펑클의 1968년 작품.
4 Nancy / Leonard Cohen
캐나다 출신의 시인이자 교수 출신의 싱어 송라이터로 1969년 작품.
5 바람과 나 / 한 대수
6 Long Long Time / Rod Mckuen
린다 론스타트의 1970년 곡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짙은 분위기의 로드 맥퀸의 노래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음.
7 제비꽃 / 조동진
포크계의 대부 조동진의 1985년 작품으로 그의 명반이자 3집 앨범인 '슬픔이 너의 가슴에'에 수록.
8 행복이란 / 조경수
9 하얀손수건 / 트윈폴리오
송창식, 윤형주로 구성된 그룹으로 1970년 작품. 나나 무스꾸리의 노래를 번안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
10 This Little Bird / Marianne Faithfull
영국 출신의 여성 팝 가수로 1965년 싱글 차트 32위까지 기록했던 노래. 간단한 악기 편성과 미성의 보컬이 멋진 조화를 이룬 작품으로 최근 이 노래가 sbs 드라마 '애정만세'의 타이틀로 쓰이면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음.
11 Angel Eyes / Sting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의 주제가로 스팅이 1995년 리메이크했음.
12 남자에게 / 최백호
최백호의 1997년 작품으로 그의 명반 '어이'에 수록.
13 꽃반지끼고 / 은희
포크 가수 '은희'의 1971년 작품.
14 편지 / 어니언스
임창제가 리더로 활동했던 어니언스의 1970년대 작품.
15 어이 / 최백호
1997년 작품.
16 Ter Outra Vez 20 Anos / Bevinda
포르투갈 출신의 파도가수 베빈다의 1994년 작품. 짙은 분위기의 선율과 애조띤 보컬이 일품.
17 Maggie / Jean Redpath
스코틀랜드 출신의 포크 가수로 1990년 작품.
18 옛사랑 / 이문세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154화 옛사랑
(M) 주제음 (이문세 - 옛사랑)
남 모든 일은 어느날 갑자기 시작되었다
정말 평범했던 어느날 아침
침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때였다
(E) 창밖으로 새소리 정도 잠깐
여 (매우 정상적인 톤) 김선생님, 어디 읍내 다녀오셨어요? 그동안 통 안보이시던데~
남 아내가 화장대 의자에 올라앉아
나를 빤히 보며 말했다
난 그녀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 이 사람이 왜 이래? 아침이나 줘. 오늘 일찍 출근해야 돼
여 읍내서 뭐 사오셨어요? 혹시 저 주려고 선물 사오신 거 아니에요?
남 뭐? 왜 안하던 농담을 하고 그래? 사람 참...
여 학교 사택에 감나무 있잖아요. 애들이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을
자꾸 따가려고 해서, 제가 못하게 했어요. 잘했죠?
남 왠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아내의 눈빛은 전혀 장난을 하고 있지 않았다
너무 진지했다
(M) About The Time / Rod Mckuen
남 아직 예순도 안된 나이였다
그런 아내가 치매에 걸렸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여 곧 겨울이 오는데, 난로 손질 좀 해야겠어요.
땔감도 많이 필요할텐데... 우리 산에 나무하러 갈까요?
남 나무는 무슨 나무야.
여 불을 안때면 너무 춥잖아요. 선생님 수업 하실 때 힘드실거에요
남 정신 좀 차려!!! 자, 보일러 틀었지? 이제 안 추워~ 됐지?
남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은
아내가 자신을 스무살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 선생님, 내일이 저 스무번째... 생일이에요
남 ........ 여보....
여 혹시요, 시간 있으시면 저랑 읍내 영화 구경 안 가실래요?
제가 이런 말 했다는 거, 다른 선생님들한테 말씀하시면 안돼요
남 아내가 스무살이던 시절, 그녀는 내가 근무하던 학교의 사환이었다
지금 아내는 그 시절 속에 살고 있었다
(M) Scarborough Fair / Simon & Garfunkel
남 어느날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는 빨강 파랑 싸인펜을 손에 들고 나를 돌아보았다
벽지는 온통 싸인펜으로 낙서가 돼 있었고
아내의 얼굴과 손도 싸인펜 자국 투성이었다
남 당신... 지금 뭐하는거야?!!!
여 선생님 보세요. 이거 색깔 분필이에요. 제가 선생님 드리려고
특별히 숨겨뒀어요. 가지세요!
남 이런 거 필요 없으니까, 제발... 제발!! 그냥 가만히 있어. 제발!!!
여 선생님. 여기 와 보세요.
남 왜 이래...
(E)데리고 가는 + 싱크대 여는
여 제가요, 선생님 드리려고 이거 숨겨놨어요. 김선생님 고구마 좋아하시죠?
남 아내가 자랑스럽게 열어서 보여준 싱크대 안에는
썩은 고구마와 쓰레기가 잔뜩 들어있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썩은 고구마를 내미는 아내의 손을 뿌리치고
난 밖으로 나와 버렸다
(M) Nancy / Leonard Cohen
남 그렇게 현명하고 자존심 강하던 사람이
갑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게
더없이 딱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런 아내가 싫어졌다
아내 대신 살림을 봐주러 왔던 사람들도
치매에 걸린 아내를 감당하지 못하고 나가 버렸고
외국에서 유학중이던 아들 내외도
방학 중 잠깐 들어와 들여다보곤 그만이었다
혹시라도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할까봐
걱정스러워 하던 며느리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어차피 정신을 잃어버린 아내를 돌봐야 하는 건
내몫이었고, 그건 너무 큰 부담이었다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아내가 있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M) 바람과 나 / 한대수
(E)방문열고 들어가는
남 밤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안방 침대 위에 잠들어 있었다
손에는 썩은 고구마를 꼭 쥐고
눈가엔 눈물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엄마를 기다리다 울다 지쳐 잠든 아이 같은 아내를 보니
마음이 짠해졌다
난 아내 옆에 걸터앉아 헝크러진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몇 달 동안 염색을 하지 않아
흰머리가 제법 나 있었다
오래전, 아내와 내가 학교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까만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는
소녀티를 채 벗지 못한 여자였다
(E) 아이들 복도 위를 뛰어 다니는 소리 + 교실 문 드르륵 열고 나오는
남 녀석들아... 뛰지 말어!!
(E) 누군가 걸어오는
여 김선생님
남 어, 윤양. 왜?
여 이거...
남 고구마잖아. 웬거야?
여 아까 점심도시락 영만이 주셨잖아요. 선생님 배고프실 거 아니에요~
남 아니야 나 괜찮아. 아침 많이 먹었어.
여 그래도 드세요. 선생님 드리려고 일부러 쪄온거에요.
(E) 복도 타타닥 뛰어가는
남 먹을 게 귀하던 그 시절
난 가르치던 아이들에게 도시락을 양보하기 일쑤였고
학교 사환이었던 그녀는 그런 나에게 삶은 고구마나 옥수수를 주곤 했다
(M) Long Long Time / Rod Mckuen
(E)낙엽 쓰는 소리
남 어느날. 아이들을 하교 시키고, 남은 할 일을 하던 나는
해가 질 무렵 퇴근을 하게 됐다.
그런데 집에 간줄 알았던 그녀가
학교 운동장에 수북히 쌓인 낙엽을 쓸어내고 있었다
남 어? 아직 안갔어?
여 네. 낙엽이 너무 많이 쌓였길래요, 좀 쓸고 가려구요.
남 이런 건 강씨 아저씨가 다 하실텐데...
여 누가 하면 어때요~ 먼저 본 사람이 하면 되는거지...
남 그래, 그럼 수고해. 나 먼저 들어갈게.
(E) 낙엽 밟으며 가는
여 저기....
(E) 멈추는
남 어, 왜?
여 내일이... 저 스무번째 생일이거든요.
남 아.... 그래?? 축하해...
여 혹시... 선생님 시간 되시면 저랑 읍내 영화 구경 안 가실래요?
남 (약간 당황) 어?
여 제가 이런 말 했다는 거, 다른 선생님들한테 말씀하시면 안돼요
남 운동장에 쌓이는 노을의 붉은 빛에 그녀의 볼도 붉어졌다
난 그 자리에서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멋쩍게 머리를 긁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여 왜요? .... 싫으세요?
남 아니, 싫다기 보다는... 우리 둘이만 그런 데 가기가 좀... 그렇지 않나?
여 ......... 네....
남 나중에... 다른 선생님들이랑 다같이 가든가.... 그러자구...
여 .......... 네....
남 미안해. 생일이라는데....
여 ........ (울음 꾹참으며) 아니에요. 제가 너무 주제넘은 부탁을 드렸나봐요
(E) 낙엽 위로 뛰어가는
남 그녀는 낙엽을 쓸던 빗자루를 그 자리에 놓은 채
운동장 끝으로 먼저 뛰어가 버렸다
그때 알았다. 아... 저 아이가 나를 좋아하고 있구나...
(M) 제비꽃 / 조동진
남 당시 난 좋아하는 여자가 따로 있었다
같은 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한선생이었다
단아하면서도 도도하고 아름다웠던 그녀는
나 뿐 아니라 다른 남자 교사들에게도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한선생은 다른 남자 교사들의 호의는 단호하게 거절하면서도
내 호의나 관심은 받아들여 주었다
우리는 가끔 쉬는 날 영화를 보러 읍내에 나가기도 하고
학교 끝나고 저녁 무렵에 둑길을 산책하기도 했다
책을 좋아하는 한선생을 위해서
난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부탁해
한선생이 읽고 싶어하는 책들을 부쳐달라고 했고
그 책들을 주고 받으며 우리 관계는 더욱 좋아졌다
난 책을 선물할 때마다 그 속에 편지를 끼워서 주곤 했다
한선생과 사귀고, 또 결혼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상상만으로도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M) 행복이란 / 조경수
남 그런 나에게 학교 사환이었던 윤양의 존재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몰래몰래 나를 훔쳐보는 수줍은 눈빛이라든가
가끔 손수건에 싸서 내미는 누릉지라든가
사람 없을 때 교무실 내 책상 위에 꽂아놓는 노란 들국화라든가
이런 모든 것들이 미안한 마음을 갖게 만들었다
어느날, 다른 때보다 일찍 출근을 했을 때
(E) 새 소리 + 드르륵 교무실 창문 여는
남 한아름의 들꽃을 내 책상 위의 화병에 꽂고 있던 윤양은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내가 뭔가 얘기를 해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E) 다가가는
남 난 최대한 무뚝뚝한 표정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화병에서 꽃을 빼서 윤양에게 돌려주었다
남 이런 거... 갖다 놓지 말았으면 좋겠어
여 ......... 네? 전 그냥.... 오다가 예뻐서....
남 그러니까... 아무리 예쁜 꽃을 봐도.. 내 책상 위에 갖다 놓지 말았으면 좋겠어
여 ........ 왜요?
남 그냥.... 좀 부담스러워서....
윤양이 나한테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는데...
여 저.... 김선생님 좋아해요
남 수줍음 많은 윤양의 입에서 의외로 당돌한 고백이 흘러나왔다
당황한 쪽은 오히려 나였다
여 좋아해서 이러는 거에요. 좀 부담스러워도... 그냥 받아 주시면 안돼요?
뭘 어떻게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받아주시기만 하면 되는데요
남 ............ 윤양이 나 좋아하는 것처럼... 나도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있어
(M) 하얀손수건 / 트윈폴리오
남 그녀의 마음을 그렇게 딱 잘라 거절해 놓고
나도 편치는 않았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윤양이 출근을 하지 않았다
조회 시간, 교장선생님의 얘기를 통해
윤양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족이 없으니 모두 한번씩 들러서 위로해주라는 얘기도 덧붙여졌다
하지만 다음날이 장학사 연구 수업이 있는 날이어서
모두가 바빴다. 학교 사환 아이의 모친상에 갈만큼
여유가 있는 교사는 없어 보였다.
나도 밤늦게까지 수업 준비를 하다가
집에 돌아가게 됐다.
(E) 밤새 우는 소리 + 낙엽 밟으며 가는
남 학교 운동장에 수북히 쌓인 낙엽을 밟다가
대빗자루로 열심히 운동장을 쓸던 윤양의 모습이 떠올랐다
잠시 망설이던 나는 아침에 교장선생님이 설명해주던
윤양의 집으로 향했다
(E) 나무 대문 삐끅 열고 들어가는
남 대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난 콧끝이 찡해졌다
아무도 없는 마루에 하얀 상복을 입은 그녀가
어깨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었다
(M) This Little Bird / Marianne Faithfull
(E) 다가가는
남 멍하게 어머니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눈물조차 말라버린 듯 했다
내가 다가가는 것도 모른 채
넋을 놓고 있었다
남 윤양...
여 .......... 서..선생님....
남 왜... 혼자 있어...
여 도와주시던 아주머니들 계셨는데요. 시간이 늦어서 다들 집에 가셨어요.
남 상심이 크지.... 뭐라고 위로를 해야할지....
여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정말.... 선생님이 와 주실 줄은....(목메고 우는)
남 핏기 하나 없는 얼굴과 부쩍 말라버린 몸이
너무 안쓰러웠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흐느끼는 그녀를
조용히 안아주었다.
그리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토닥토닥 속삭여 주었다
(M) Angel Eyes / Sting
남 얼마전, 정신을 놓아버리기 전까지도
아내는 그때 얘기를 하곤 했었다.
여 그때 정말 무서웠거든. 아무도 없는 밤에...
죽은 엄마랑 단둘이 그집에 있으려니까... 서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때 당신이 와줬잖아요.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웠는지....
난 그때 생각했어요.
저 사람이 죽으라면 죽어야지... 저 사람이 하라는대로 다 해야지....
남 아내, 그러니까 윤양의 나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고 있을 때 쯤
나의 한선생에 대한 사랑도 그렇게 깊어지고 있었다
어느날, 한선생과 만날 약속을 하고
읍내 한 제과점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한선생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데...
(E) 걸어오는 소리
여 (풀죽은) 김선생님...
남 어? 윤양... 여긴 어쩐 일이야?
여 .... 한선생님이랑 만나기로 약속하셨어요?
남 어... 그걸 윤양이 어떻게 알았어?
여 한선생님 만났거든요. 급한 일이 생겨서 못오게 됐는데 연락할 방법이 없다구요.
저보고 대신 전해달래요.
남 (실망) 아.... 못.... 나온대?
여 네. 급히 서울에 올라갔다 와야 한대요
남 아....
남 난 나대로 한선생에게 실망했고
윤양은 윤양대로 내게 실망한 듯 했다
서로 김이 빠지고 풀이 죽어
우린 제과점 앞에서 그냥 그렇게 서 있었다
(M) 남자에게 / 최백호
(E) 걸어가는 소리
여 궁금한 게 있어요
남 뭔데
여 선생님이 좋아하신다던 분... 한선생님이세요?
남 ...........
여 맞구나
남 ..........
여 한선생님도 선생님 좋아한대요?
남 ............ 글쎄....
여 만약에 한선생님이 선생님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실건데요?
남 ............... 어쩌겠어. 할 수 없지.
(E) 걸어가는 소리 조금
여 어? 저거 시계꽃인데... 저걸로 꽃반지 만들면 이쁘잖아요
남 ...... 응 그렇지....
여 선생님. 저 꽃반지 하나만 만들어주시면 안돼요?
남 ........ 꽃반지?
여 네.... 그냥요. 그냥.... 아무 뜻 없으셔도 돼요
남 ...... 그래.... 만들어줄게...
남 들판에 있는 꽃을 꺾어서 작은 반지를 만들어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 주었다
그 작고 초라한 반지를, 그녀는 보고 또 보고... 또 보면서
좋아했다.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M) 꽃반지끼고 / 은희
남 그리고 얼마 후.
한선생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서울로 전근을 가게 됐다는 얘기였다
한선생과 정식으로 사귀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정도였기 때문에
내가 가라, 가지마라 할 입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말 말리고 싶었다
한선생을 보내놓고 살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 얘기를 하는 한선생에게 겨우 내가 한말은
축하한다... 정말 잘됐다.... 였다
그렇게 말해놓고 집으로 돌아와 난 주말 내내 앓았다
그리고 한선생이 마지막으로 출근하던 날
난 책 속에 편지를 끼워
한선생의 책상 위에 놓아 두었다
편지에는 한선생을 많이 사랑하고 있고
서울로 가더라도 계속 만나며 사귀고 싶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만약, 내 마음을 받아들여 준다면
떠나기 전에 우리가 자주 만나던 둑길로 나와 달라고도 적었다
그 편지가 내겐 마지막 희망이었다
(M) 편지 / 어니언스
(E)둑 옆 소리 (물소리 + 풀벌레 소리 등)
남 노을이 지고 해가 산뒤로 아주 넘어갈 때까지
난 둑길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한선생은 나타나지 않았다
싸늘한 밤공기가 옷속을 파고들때까지도
난 일어설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을 보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그렇게 난 정말 사랑했던 여자와 이별을 했다.
그리고 그 학교에 머무는 몇 년 동안
한결같이 나만을 바라보며 헌신적인 사랑을 바쳤던 윤양과
결혼을 했다. 그녀가 지금의 아내다.
결혼 후 40여년 동안, 아내는 최고의 여자였다.
난 아내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열병처럼 아픈 것만 사랑이 아니라
원래 내것이었던 것처럼 편안한 것도 사랑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내를 향한 내 마음이 그랬다.
세월이 가면서 점점 깊어졌다.
(M) 어이 / 최백호
남 그런 아내가 지금 내앞에 누워 있다.
썩은 고구마를 손에 쥐고.... 반백의 중년 여인이 된 채....
자신을 스무살의 윤양으로 착각하면서....
내가 머리를 몇번 더 쓰다듬자...
아내가 부스스 눈을 떴다.
여 김선생님. 언제 오셨어요?
남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아내.
이번엔 내가 아내가 살고 있는 그 세계로 들어가 주기로 했다.
남 그래 윤양. 나 방금 왔어.
여 그러셨구나. 아이들은 다 집에 갔어요. 제가 운동장 다 쓸어놨어요.
남 잘했어. 우리 윤양, 잘했어.
여 그런데 선생님 누구 만나러 오셨어요? 혹시... 한선생님 만나러 오시는 길이에요?
남 ......... 어??
남 아내가 아직까지 한선생을 기억하고 있다니.
그 긴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단 한번도 한선생에 대한 얘기를 꺼내본 적 없는
아내였다
남 ..........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
여 한선생님... 못만나실 거에요.
남 ........ 왜?
여 저 때문에요.
남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여 김선생님 죄송해요. (울먹) 제가 잘못했어요.
남 왜 그래.... 어? 뭘 잘못했다는거야?
여 김선생님이 한선생님께 보낸 편지... 책속에 끼워둔 편지요.
제가 훔쳤어요. 둑길로 나오라고 쓰셨죠? 제가 그 편지 한선생님 못보게
훔쳐버렸어요.
(M) Ter Outra Vez 20 Anos / Bevinda
남 아내가 울고 있었다.
정말 40여년전, 윤양이 되어... 내게 잘못을 빌면서
울고 있었다
여 한선생님 안오실거에요. 밤새 기다리셔도.... 안오세요.
다 저 때문이에요. 두분 정말 많이 좋아하셨는데... 제가 김선생님 뺏었어요.
남 여보... 여보 울지 마. 괜찮아. 그게 언제적 일인데....
여 선생님 죄송해요. 저만 좋으려고... 선생님을 불행하게 했어요.
남 아니야 여보... (목메는) 내가 당신 때문에 지난 세월 얼마나 행복했는데...
나 당신과 함께 살 수 있었던 거... 얼마나 다행스러워하고 있는데...
여 선생님 죄송해요..
남 여보... 미안해...
남 아내가 정신을 놓아버렸을 때. 왜 스무살의 윤양이 되었어야 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그녀는 평생 내게 미안한 마음을 짐처럼 지고
살았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 시절 속으로 돌아가
내게 잘못을 털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난 다 잊어버리고 살았던, 나의 옛사랑 때문에....
(M) Maggie / Jean Redpath
남 눈물을 그친 아내가
조심스럽게 서랍장 문을 연다
그리고 서랍장 깊은 곳에 고이 간직해 둔 낡은 상자를 꺼낸다
남 이게... 뭐야?
(E) 상자 여는
남 아내가 열어보인 상자 속에는
내가 한선생에게 마지막으로 보냈던 그 편지가 놓여져 있었다
아내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이 편지를 버리지 못한 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편지와 함께 놓여진 것은....
말라비틀어져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돼 버린
꽃반지였다. 분명, 꽃반지였다.
어느 오솔길에서... 아무 뜻 없이... 아무 애정 없이
그저 내가 만들어 주었던 꽃반지....
천진하게 나를 보며 눈물을 가득 담고 있는 아내의 눈가를
난 말없이 훔쳐 주었다.
오래되어 더욱 아름다워진 나의 옛사랑은...
지금 내곁의... 나의 아내다.
(M) 주제음 옛사랑 / 이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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