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17. 23:53ㆍ음악이 흐르는../음악에세이
(M) 주제음 Winter Light / Sarah Brightman
남 모든 사건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법이다
(E) 전화벨 소리
남 (자다 깬 목소리) 여보세요... (놀라는)네? 어머니가요? 알겠어요. 금방
갈께요.
여 (자다 깬 목소리) 왜 그래요?
남 형님인데... 어머니가 쓰러지셨대
여 (놀라지만, 약간은 담담한) 그래요?
남 뭐해? 옷입어.
여 당신 혼자 다녀와요
남 뭐?
여 내가 가서 뭘 어쩌겠어요. 당신이 가서 어떠신지 보고 전화나 해요
남 당신 정말... (참고) 왜 그러는지는 알겠는데.. 다른 일도 아니고
쓰러지셨다고 하잖아.
여 내가 쓰러졌다고 하면, 어머님이 한달음에 달려오셨을까?
그래. 그러셨을 수도 있겠네. 이혼서류 들고... 춤이라도 추면서 오셨을지
모르겠네
남 사람 정말...!! 됐어. 나 혼자 갔다올테니까 다녀와서 얘기해!!
(E) 화난 듯 문 쾅 닫고 나가는
남 벌써 10년. 내가 아내와 결혼한 이후
어머니와 아내는 한번도 웃으며 만나본 적이 없다
(M) Heaven / Chris Rea
남 어머니는 중풍이었다
멀쩡하던 양반이 하루 아침에 눈뜬 송장처럼 누워 있기만 하는 모습은
차마 보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지금까지 어머니를 모셔왔던 형님 내외가
독일로 나가게 된 것이었다
여 그래서? 지금 그 얘길 왜 나한테 해?
남 형님이 주재원으로 가게 됐다는데... 그럼 어떡해...
여 어떡하냐니? 당신 누나 있잖아.
왜? 자기 어머니밖에 모르더니 모시진 못하겠대?
남 누나는 딸인데... 그리고 누나네는 자기 시어머니가 있잖아!
여 그런 저런 사정 나한테 설명하지 마.
난 아무것도 못하니까!
남 그럼! 멀쩡한 자식이 셋이나 있는데... 아픈 어머니 양로원에라도 보낼까?
여 그걸 왜 나한테 따지냐구~~!!
당신 나한테 이런 얘기 하기 미안하지도 않아?
남 생각해 보면 그렇다. 생각해 보면... 아내에게 이런 말 하는 건
참 미안한 일이다
(M) 미안해 / 제로
남 오래 전, 아내와 나는 고아원에서 만났다
나는 대학생으로 자원봉사활동을 나갔었고
아내는 그 고아원출신의 보모였다
처음엔 그냥 재미로 한번 나간 봉사였는데
아내가 너무 마음에 들어
일주일에 한번씩 빼먹지 않고 고아원에 가게 되었다
(E) 큰 빨래 짜는 소리
여 어쩜 한번도 안 빼고 오세요? 정말 대단하세요~
남 제가 원래 봉사하고 희생하고.. 이런 걸 굉장히 좋아해요
음... 남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면 뭔가... 진짜 사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하하~
남 거짓말이었다. 집에서 청소 한번 안하던 내게
고아원의 그 많은 이불 빨래며 청소며 다 하는 게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난 거기 가면 그녀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그저 좋아서
코피까지 쏟아가며 그 일을 몇 년씩 계속했다
그러다 결국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고
우린 결혼을 약속했다
(M) 사랑해도 될까요 - 유리상자
(E) 걸어오는 소리
여 너무 떨린다...
남 뭐가 떨려. 오늘 내가 본 중 제일 이쁜데
여 정말요?
남 어. 들어가자. 우리 어머니랑 누나가 좀 깐깐하긴 한데
내 말이라면 다 들어주시니까. 내가 좋다 그러면 무조건 허락하실거야
여 .... 나 부모님 안계신 거 아세요?
남 ..... 어? 어... 그건 아직 얘기 못했는데.... 괜찮아.
우리 어머니가 국내 입양하는 무슨 모임 부회장까지 하셨던 분이야
남의 애 입양하자고 여기저기 강의까지 다니셨어. 확 트인 분이라니까.
여 (환해지는) 그래요??
남 이 말에 그녀는 좀 안심하는 듯 했다.
나 역시 어머니가 여성 운동이나 사회 봉사 활동에 적극적이셨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E) 대문 닫고 나오는
남 (미안한) 은서야... 어머니가 하신 말씀 너무 오해하지 마...
여 오해 안해요. 다 진심이신 것 같던데 무슨 오해
남 어머니는 은서의 마음에 상처가 될 말들만 골라서 하셨다
부모님 없이 자랐지만, 바르고 곱게 자라온 그녀에게
난 너무 미안했다
(M) I'm Sorry / John Denver
남 어렵게 어머니를 설득하고
억지로 결혼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준비하는 과정이 문제였다
여 (미안한) 봉덕씨.. 혼수 말인데요. 원장 어머니가 좀 주신 돈이랑
제가 지금까지 모은 돈이랑... 이것저것 해서... 삼백만원 좀 못되게 있거든요
남 그 정도면 충분해. 어차피 물건이야 내가 쓰던 거 가져가면 되고
냉장고도 누나네가 더 큰 거 산다니까, 그거 갖다 쓰면 되고...
여 그래두... 예물 시계라도 하나 사야할텐데...
남 시계? 이거 봐. 지난번에 어머니가 스위스 다녀오면서 사다주신 건데
얼마나 좋다구. 나 다른 시계 필요 없어
여 ........
남 그냥... 그 돈으로 우리 밥먹을 숟가락이랑 그릇 좀 사고...
어머니 서운해하실테니까 한복이라도 사 입으시라고 좀 드리고...
나머지론... 그래! 텔레비전 사자. 그건 하나 있어야지
여 텔레비전요?
남 어~ 그것만 하나 사면 돼. 니가 나한테 와 주는데, 다른 게 무슨 소용이야~
괜찮아~
여 봉덕씨가 괜찮다고 하면 할수록 난 왜 이렇게 미안하지?
남 우린 그렇게 결혼을 했다
물론 그녀의 걱정대로 어머니는 길길이 뛰셨다
친구들 앞에서 혼수 얘기만 나와도 창피하다는 둥
대한민국에서 텔레비전 하나만 혼수로 해오는 며느리도 없을 거라는 둥
그녀의 자존심을 긁는 말씀을 계속 하셨다
어머니 앞에서 그녀는 자꾸만 말이 없어져갔고
어두워져갔다
(M) 새장을 열다 / 임재범
남 결혼을 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다녀올 때마다 아내는 예민해져 있었다
처음에는 무조건 그녀 편에 서서
달래기만 했는데, 그러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E) 설거지 시끄럽게 하는
남 그릇 다 깨부수겠다. 좀 천천히 하지?
(E) 멈추고, 물 잠그는
여 당신 오늘 어머니 하는 말씀 들었어요?
남 .......... 한두번이야? 그냥 흘려들어
여 어떻게 흘려들어요? 나 들으라고 하는 얘긴데?
남 ........
여 당신 사촌 누구는 결혼하는데 여자 쪽에서 집을 사줬다는 둥
차를 사줬다는 둥... 시어머니 밍크코트가 얼마 짜리라는 둥
그런 얘길 왜 하냐구요 나한테...!
남 부러우셨나보지
여 뭐라구요?
남 아니... 그렇잖아. 어머니 친구분들이나 우리 친척들이
결혼하면서 자꾸 혼수를 얼마 받았다느니 하는 얘기들을 하니까
어머니 입장에선 부러워서 그럴 수도 있지. 노인네들이 유치한 면이 있잖아
여 ... 당신 지금 어머니 편들어요?
남 누구 편이 어딨어... 어머니 입장도 생각해 보자는 거지
여 오늘 낮에 어머니 친구분들이 오셨는데요, 어머니... 우리 큰며느리는
미대 교수고 전시회를 몇 번했고... 다 소개하시면서...
저는 며느리라고 소개도 안하셨어요.
남 ..............
여 형님은 하하호호 어머니 친구들이랑 거실에서 차 마시면서 수다떠는데
나는 식모처럼 주방에서 설거지만 했다구요! 그때 내 기분이 어땠을지
당신 알아요?
남 힘들게 자라온 만큼, 유난히 자존심이 강했던 아내에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언제나 상처였고 짐이였다
차츰 아내는 어머니 만나러 가는 일을 꺼렸고
어머니 역시 아내를 집에 데리고 오지 말라는 말을
서슴치 않았다
두 사람 사이는 그렇게 멀어져갔다
(M) Dead Are Dancing / Toni Child
남 어느날은 퇴근 후 집에 왔는
엉망이 된 거실에 아내 혼자 울면서 앉아 있었다
아내는 부서진 텔레비전을 쓰다듬고 있었다
남 이게.. 어떻게 된거야? 무슨 일 있었어?
여 ......... 어머니 다녀가셨어요
남 그런데! 어머니가 이렇게 해놓으셨단 말야?
여 텔레비전을 사오셨어요. 우리 텔레비전 갖다 버리자구...
남 그래서...
여 안된다고 막다가 이렇게 됐어요
남 어머니도 참! 그렇다고 집안을 이 모양으로...
당신도 그렇지, 새거 사오셨으면 그냥 받으면 되지
뭘 안된다고 그래
여 이 텔레비전이 나한테 어떤 의민지 당신 몰라요?
남 .... 모르는 건 아니지만....
여 당신들한텐 이게 그냥 싸고 후진 텔레비전인지 몰라도
나한텐 이게 예물이고 예단이고 내 전부야!
왜 그것까지 밟아뭉개지 못해서 안달이냐구!!!
남 아내는 그날밤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고
다음날 서비스센터에 텔레비전을 맡겨 수리를 시켰다
그 텔레비전은 아직도 우리집 거실에 놓여져 있다
(M) Lagrima / Bevinda
남 더 큰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우리가 결혼한지 5년이 다 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병원에 가봐도 둘 다에게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아내는 입양아를 들이자는 제의를 했다
나 역시, 우리 아이가 있더라도
입양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기꺼이 동의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문제였다
다른 사람들에겐 입양을 권하는 강의까지 하고 다니시던 분이
결사반대를 하고 나오신 것이다
(E) 찻잔 놓는
여 (조심스럽게) 말씀은... 드려봤어요?
남 어... 그런데... 힘들겠어
여 왜요?
남 절대 안된다 그러시는데...
여 나 솔직히, 어머니가 반대하실 줄 알았어요. 정말 이중적인 분이셔
남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여 그럼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람들 앞에서만 인자한 척 고결한 척
다 하면서, 자기 식구들한텐 이렇게 이기적이고 옹졸할 수 있을까
남 말이 너무 심하잖아
여 내가 심해요?
나 지금까지 살면서, 어머니 말씀 그르다고 생각하면서도
다 지키려고 노력해 왔어요. 그런데 이번엔 안돼.
난 입양할거에요. 어머니 뜻 거역할거에요!
(M) Summer Snow / Sissel
남 사태는 심각해졌다
어머니는 아내가 기어코 입양을 할거라면
다시는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아내는 상관 없다고 맞섰다
가운데서 가장 힘든 건 바로 나였다
남 그러지 말고, 한번만 더 가서 얘기해보자
여 몇 번을 말해요. 난 싫어요.
오늘 입양기관 가야 되는 거 알죠? 시간 늦지 말고 와요
남 여보.....
여 당신이 왔다 갔다 하면 어머니랑 나 둘 다 힘들어요
길은 두 가지에요. 나랑 이혼하든지, 어머니한테 실망을 안겨 드리든지...
당신이 정해요
남 결국 난 아내 뜻대로 아이를 입양시켰고
그 아이를 키우며 커다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단 한번도
어머니와 아내는 만나지 않았다
(M) 그 흔한 남자 / 박효신
남 명절 때나 어머니 생신 때
아내는 아이와 함께 어머니를 만나러 갔었지만
문은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
심지어 대문 밖에서 물세례를 맞은 적도 있었다
아내의 품에 있다가 찬물을 맞고 감기에 들어버린
아이를 간호하다가 아내가 말했다
(E) 물수건 짜는 소리
여 이젠 내가 어머니 안 볼거야
남 ...........
남 그렇게 된지 3년...
영원히 위세당당할 것만 같던 어머니가
중풍으로 힘없이 쓰러졌고
그렇게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던 큰며느리는
남편과 함께 외국으로 나가겠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가 어머니를 모시겠다고 나서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하지만 어머니를 모실 사람이 아무도 없는 지금
나마저 모른 척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남 여보.. 일단 어머니한테 가보자.
안모셔도 좋으니까... 노인네가 그렇게 됐는데, 한번은 가봐야 도리 아냐?
여 ............
남 어? 그러자....
여 가보기만 할거에요. 정말 모시지는 않을 거에요
(M) 세상은 나에게 / 오현란
(E) 현관 문 열리는 소리 + 휠체어 들어오는
남 여보. 그쪽 잘 잡아. 휠체어 바퀴 쪽이 걸리잖아. 그래. 문 닫고....
남 나의 예감은 적중했다
아내는 모진 여자가 못됐다
그렇게 독하고 서슬 퍼렇던 어머니가
머리 흰 노인이 되어 한마디 말도 못하고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던 아내는
내가 집으로 모셔가자 말을 꺼내자
아무말 하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는 우리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형님 내외는 편하게 외국으로 떠났다
힘든 병수발은 모두 아내의 몫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아내의 마음이 열린 것은 아니었다
(E) 신경질 나서 빨래하는 소리
여 어머니! 제가 뭐랬어요! 화장실이 가고 싶으시면
거기 종만 울리라고 했잖아요! 밥 드실 때는 손도 잘 움직이시면서
왜 종은 못울리시냐구요!!
남 하루에도 몇 번씩 더러운 빨래를 해야 하는 아내의 심정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내에게 야단을 맞을 때마다
힘없는 눈에 눈물이 고이시는 어머니를 보는 것도
마음 아픈 일이었다
남 당신 이왕 하는 거, 어머니한테 좀 부드럽게 할 순 없어?
(E) 로션 뚜껑 열고 바르는
여 너무 많은 걸 바라진 마요. 지금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남 그게 최선을 다하는거야?
손발이 마음대로 안되는 어머니 맘은 오죽하겠어?
그 자존심 강하시던 양반이 당신 앞에서 추한 꼴 다 보이시면서
마음이 어떻겠냐구! 몸은 그래도 정신은 멀쩡한 양반이야!
여 어머니 마음까지 나 못헤아려요.
지금도 난 어머니 얼굴만 보는 것도 고통인 사람인데
그 마음까지 어떻게 다 헤아려!
(M) Ja Esta / Bevinda
남 어머니 일로 아내와 난 부쩍 다툼이 많아졌다
하지만 미운 소리를 해대면서도
어머니 입에 밥을 먹여드리고
기저귀를 빨아드리고
목욕을 시켜드리는 건 아내였다
어머니의 병세가 많이 좋아진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당신 혼자 휠체어를 타고
집안 여기저기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가 된 것만도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E) TV 소리 (희미하게 잘 안들리는..)
여 ......(자다 깬) 들었어요?
남 (잠기어린) 뭘...
여 무슨 소리 안나요?
남 몰라... 그냥 자...
(E) 일어나는 + 나가는
남 나는 금방 다시 잠에 빠져 들었는데
잠시 후 아내가 방으로 들어왔다
(E) 문 닫고 들어오는
남 조용히 들어온 아내는 한참 동안 말없이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그냥 자려던 난 이상한 생각이 들어 눈을 떴다
남 왜 그래...
여 ................
(E) 일어나는
남 왜 그래.. 무슨 소리였는데...?
여 ..... (울먹) 텔레비전 소리요
남 어? 텔레비전 소리? 아까 안 끄고 들어왔나?
여 ... 아뇨.. 어머니가 틀어놓으셨어요...
남 어머니가?
여 어머니가 어두운 거실에 혼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는데요
그게 아까 당신 보던 영어 뉴스 채널이더라구요
남 .........?
여 그래서... 어머니 좋아하시는 드라마 채널로 돌려드렸더니...
나를 보면서 환하게 웃으셨어요...
남 어두운 밤. 사람 목소리가 그리워
휠체어에 혼자 앉아 영어 뉴스 채널을 보고 계셨을 어머니.
그 사무치는 외로움이 아내의 마음을 아프게 한 듯 했다
이야기를 전해 듣는 나의 마음도 아팠다
(M) Winter Light / Sarah Brightman
남 그 일이 있은 후로
아내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대답도 잘 못하시는 어머니 귀에 항상 소곤소곤 뭔가를 속삭였고
온갖 힘든 뒷바라지를 하면서도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내를 봐야 안심이 되는 듯 환하게 웃으셨고
아내는 외출을 했다가도 어머니 걱정에
오래 있지 못하고 그냥 들어와 버리곤 했다
그런 아내를 보면서, 기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가장 컸다
(E) 설거지 하는 소리
남 당신.. 요즘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애. 보약이라도 한재 지어줄까?
여 됐어요. 왜 이래? 안하던 짓을 하구..
남 내가 요즘은 가만 있다가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
나한테 지금 윤은서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살까...
못 살 것 같다...
여 그렇지~ 나처럼 부려먹기 쉬운 여자가 또 있겠어요?
남 에이~ 사람 진심을 그렇게 매도하나?
진짜로.... (쑥스러운 듯) 고맙다고 생각해
여 그만 해요. 내가 착해서 이러는 거 아니야.
나는... 어머니 미워하면서도 한편으론 얼마나 친해지고 싶었는지 몰라
생각해 봐요. 내가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미우나 고우나 그분 한분인데...
(M) 엄마의 일기 / 왁스
(E) 사무실 소음
남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산지 2년이 다 되어갈 때쯤
(E) 핸드폰 벨
남 여보세요
여 (다급) 여보! 빨리... 어머니가 아프셔서... 병원으로... 빨리 와요.
남 갑자기 어머니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의사에게 오늘밤을 힘들겠다는 선고가 떨어졌다
참담한 마음으로 병실로 들어갔을 때
아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었다
여 (가만가만 속삭이는) 어머니.. 만약에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요
저 부잣집에서 태어날께요.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잘 교육받고 자라서
또 아범이랑 결혼할께요. 그럼 처음부터 어머니한테 미움 안받고...
이렇게 늦게서야 어머니 마음 얻는 일 없을 거에요
남 어머니는 눈물이 가득 고인눈으로 아내를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움직였다
여 네? 어머니.. 뭐라구요?
남 아내는 귀를 어머니 입 옆으로 가져갔다
아내에게 무언가를 속삭인 어머니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 고개를 떨구셨다
아내가 떨리는 손으로 눈을 감겨 드리자
눈물이 주름진 볼로 흘러 내렸다
그 위로 아내가 무너지듯 쓰러져 흐느꼈다
(M) Lagrima / Dulce Pontes
(E)산새 우는
남 파랗게 잔디가 돋아난 어머니의 무덤을 찾았다
아내는 노란 국화를 가져와
무덤 주변에 심고 있다
남 여보. 그때... 어머니가 뭐라 그러셨어?
여 (모른 척) 언제요?
남 그때.. 돌아가시기 전에...
여 몇 번을 말해요. 그건 말 못한다니까.
남 아내는 웃으면서 부지런히 손을 놀린다
어머니와 두 사람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게
즐거운 모양이다
버릇처럼 그때 무슨 말을 들었냐고 묻고는 있지만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어머니는 얘기했을 것이다
고맙다고. 정말 미안했다고. 사랑한다고.
(M) 주제음 Winter Light / Sarah Bright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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