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6 화 눈꽃 피는 마을

2025. 3. 25. 00:21음악이 흐르는../음악에세이

 

 

(M) 주제음  Snow / Claudine Loget

 프랑스 출신의 배우이자 가수인 클로딘 롱제의 1968년 작품. 순백의 결정체 눈을 아름다운 분위기로 불렀음. 

 

(E) 눈 밟는 소리 

남  깊고 깊은 산 속엔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길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나무마다 피어 있는 아름다운 눈꽃들이

    겨울 산의 풍경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M) 눈의꽃 - 박효신 

 

(E) 눈 밟고 오는 소리 + 구두 탁탁 털고 계단 올라가는 + 문 두드리는

남  계세요?

(E) 안에서 나오는 

여  누구세요? 

(E) 문 여는 

남  네. 며칠 전에 전화했던 사람인데요.

여  아~ 김봉덕씨?

남  예. 

여  안헤매고 잘 찾아오셨네요. 

(E) 들어오는

남  산장이.. 인터넷에서 봤던 것 보다 더 예쁘네요

(E) 주전자에서 물끓는 소리

여  오시느라 힘드셨을텐데, 컵라면이라도 드실래요?

(E) 라면에 물 붓는 소리 + 후루룩 라면 먹는 소리 

 

남  산행 후..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컵라면은 

    정말 맛있다

 

여  신김치랑 찬밥도 있는데... 드릴까요?

(M) 제비꽃 / 류

 

(E) 커피물 따르는 소리

여  인스턴트 커피밖에 없어요

남  전 원두보다 그게 더 좋아요

(E) 후~ 불어서 마시고 

남  손님이 없나봐요?

여  아뇨. 끝방에 신혼부부가 있는데... 

    어제 등산하고 와서 피곤한가봐요. 점심 먹고 또 자네...

남  여긴 눈이 많이 왔네요. 올해 서울엔 눈이 잘 안오는데...

여  늘 그래요. 여긴 겨울이 제일 먼저 왔다가 제일 늦게 가요

남  오자마자 먹기만 했네요. 

(E) 일어나고

여  방 이쪽이에요. 온돌로 달라고 하셨죠?

남  네. 

(E) 문 열고

남  방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바닥은 뜨끈한 군불로 데워져 있었고

    겨울햇살에 잘 말려진 이불에선 향긋한 풀냄새가 났다

    넓은 창밖으로 하얀 눈 위를 뛰어가는

    갈색 토끼 한 마리와 

    그 위로 후두둑 떨어지는 눈꽃들이 보였다

(M) Let It Snow Let It Snow Let It Snow / Harry Connick Jr.

 

(E) 장작 타는 소리

(E) 방에서 나오는

남  맛있는 냄새가 나서요. 군고구마에요?

여  여긴 해가 빨리 지잖아요. 해 지면 나가기도 그렇고..

    심심하니까 자꾸 이것저것 먹게 돼요

남  같이 먹어도 되죠?

여  그럼요. 앉으세요. 

(E) 장작 타는소리 

여  휴가차 오신 거에요?

남  ........ 네

여  무슨 일 하시는데요? 

남  ........ 형사에요

여  아..... 형사들도 겨울 휴가가 있구나

남  있죠. 형사는 뭐 사람 아닙니까?

여  형사라니까 무섭다. 죄진 것도 없는데 왜 괜히 떨리지? (웃고)

 

남  난 형사가 아니다

    그냥... 형사를 가장 두려워하고.. 또 부러워하는 사람일 뿐이다

(M) Winter Time / Steve Miller Band

 

남  뜨개질 해요?

여  심심해서요

남  누구 줄 건데요?

여  원랜 아버지 드리려고 뜨던 건데... 작년 겨울에 그만뒀었거든요

    그런데 다시 시작했어요. 심심해서...

남  심심해요? 

    난 이렇게 조용한 데서 쉬니까 참 좋은데 

여  지금은 좋죠? 일주일만 있어보세요. 지겨워질테니까

남  지겨운 건... 도시도 마찬가지에요.

여  ...... 그래도 난... 도시가 좋아요. 서울로 갈거에요 

남  왜요?

여  하루종일 말 한마디도 안해본 적 있어요?

남  .... 글쎄요

여  작년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부턴

    자주 있는 일이에요.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그때야 생각이 나요.

    아... 내가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했구나...

남  그래서 도시에서 살고 싶어요? 

여  네. 거기선 외롭지 않을테니까 

남  사람이 많아도... 외로운 건 똑같아요 

(M) It's A Lonesome Old Town / Frank Sinatra

 

(E) 가방을 여는 

남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와

    가방을 연다

    가방은 지폐로 가득하다

    지금쯤 세상은 나에 대한 뉴스로 떠들썩할 것이다

    가짜 여권이 만들어 질 때까지

    난 세상과 단절된 이곳 산장에 숨어있을 것이고

    이후엔 다른 나라로 떠날 거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다

(M) 슬픈 인연 / 박신양

 

(E)새소리

남  새소리에 눈을 뜨는 기분은 

    자명종 소리나 차 경적소리에 눈을 뜨는 기분과는

    사뭇 달랐다

(E) 창문여는 소리

(E) 장작 나르는 

남  뭐해요?

여  보면 몰라요? 장작 나르잖아요

남  뭐하게요?

여  이따 저녁 때 끝방 신혼부부 멧돼지 바비큐 해드릴거에요

남  .... 아

여  아저씨도 하실래요? 3만원만 추가하시면 되는데....

남  비싸다. 2만 5천원

여  어머? 이거 얼마 안 남아요. 2만 8천원

남  2만 6천원

여  (한숨) 형사 아저씨 나쁜놈들 잡느라 수고하시니까 봐줬다. 2만 7천원.

    더 이상은 안돼요

 

남  장난 삼아 해 본 가격 흥정은 재미있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2만 7천원 이하는 안된다고 하는

    이 산장 아가씨를 보는 건 더더욱 재미있었다 

(M) Wink And A Smile / Harry Connick Jr.

    

(E) 시동 거는 소리

남  장작을 다 나른 여자는

    커다란 트럭에 시동을 건다

 

남  어디 가요?

여  산 아래 식당에 멧돼지 주문해 놨거든요. 

남  그 큰차를 운전할 줄 알아요?

여  몇 번요. 아버지가 운전하시던 건데... 내가 해야지 할 수 없잖아요

남  그럼.. 잘 갔다 와요

(E) 차 가다가 끽 멈춰서는 

남  (약간 멀리서) 조심해요

여  (멀리서) 걱정 마세요 

(E) 차 가다가 시동 꺼져 버리는

남  결국 내가 운전을 하기로 했다

    마을로 내려가야 하는 게 좀 걸리긴 했지만

    마을이라고 해봐야 워낙 외진 곳이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M) Perfect Day / Lou Reed

 

(E) 비포장 길로 차 가고 있는 

여  운전 잘 하신다. 여기 길 꽤 험한 편인데...

남  옛날엔 택시 운전도 했었거든요

여  형사하기 전에요?

남  ..... 안해본 일이 없어요. 먹고 살려고...

여  (깜짝) 어! 잠깐만요! 

(E) 끽 서고

남  왜 그래요

여  저기 앞에....

 

남  노루 한 마리가 산길에 쓰러져 있었다

    덫에 걸린 모양이었다

(E) 눈 밟고 가는 

남  피를 많이 흘렸네...

여  일단 짐칸에 실어요

남  치료해봐야 죽을 것 같은데..

여  그래두요. 

(E)차 가는

 

남  여자가 고집을 피워서 다친 노루를 짐칸에 실었다

     

남  좀 웃긴 거 아니에요?

여  뭐가요?

남  우리가 지금 가지러 가는 멧돼지도 살고 싶었을 거 아냐 

    이거는 잡아먹고 저거는 살려주고... 불공평하잖아요 

여  ........

남  .........

여  (변명하듯) 그래두 뭐, 어떡해요 할 수 없지...

남  ...........

여  그리구... 맨날 잘못만 하고 살 수 있어요? 가끔은 착한 일도 하고 살아야지...

남  누가 뭐래요? 

여  난 인연을 믿는단 말이에요. 나쁜 인연, 좋은 인연....

    노루는 나랑 좋은 인연인가보죠

(M) Close To You / Claudine Longet

 

남  여자가 식당에 들어간 사이 

    난 트럭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워 문다 

(E) 불 붙이고 + 연기 내뿜는

남  잠시 후 여자가 식당에서 나온다

    한 남자와 함께다

    난 본능적으로 모자를 깊이 눌러쓴다

 

(E) 창문 두드리는

여  인사하세요. 여기 식당 아들인데... 제 친구거든요.

    읍내 파출소에 근무해요

남  .............

남2 안녕하세요? 서울서 오신 형사님이시라구요? 어느서에 계세요?

남  ..........

여  저기.. 형사 아저씨!!

남  ........ 여기까지 와서 일 얘기 하고 싶지 않은데요. 

남2 아.... 실례했습니다 

남  얼른 타요. 해 저물기 전에 가야죠

남2 눈 올 것 같다. 얼른 가.

여  어 그래. 

(E) 차에 올라타고 + 출발하는

(잠시 침묵 후)

여  노루요... 아까 걔한테 맡겼어요. 동물병원에 데려다 준대요

남  ,........

여  착한 애에요. 

남  ............

여  무안했을 거에요. 자긴 반갑다고 인사한 건데....

남  나랑 친해요?

여  네?

남  우리 만난지 이틀 됐고. 난 하나도 안친하다고 생각하는데...

여  .......

남  친한 척 하지 마세요. 부담스러워요. 

(M) My Memory / 류

 

(E) 와이퍼 움직이는 소리 + 차 털털거리며 천천히 가는 소리

남  갑작스러운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해가 진 후 산속은 칠흑같았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눈 때문에

    앞은 더욱 보이지 않았다

(E) 시동 꺼져 버리는

남  설상가상...

    낡은 트럭은 시동을 꺼뜨린 채 

    더 이상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내 옆에 앉은 산장 여자는 

    화가 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어두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남  어쩔래요 

여  .......

남  계속 여기 있을 거에요?

여  ......

남  여기서 산장까지 멀어요? 걸어라도 가야 할 거 같은데

여  ......

남  나 혼자 가요?

여  .......

남  좋아요, 나 혼자 갈거니까 맘대로 해요

(E)문 열면 + 눈보라 휘몰아치고

여  (다급) 문 닫아요!

(E)문 닫고

여  지금 나갔다간 얼어죽어요

남  그럼 밤새 여기 있자구요?

여  이 밤중에.. 이런 날씨에.. 산장까지 걸어가려면 2시간은 더 걸려요

    가다가 죽어요

남  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요? 난 갈거에요

여  우리 아버지도....

남  ...?

여  우리 아버지도 그렇게 돌아가셨어요

(M) Alhambra / Sarah Brightman

 

(E) 시동 걸어보지만 계속 다시 꺼져버리고 + 잠시 후 조용해지는

여  작년에 눈보라 치던 날이었는데... 읍내에서 주무시고 오시겠다고 전화가 

    왔더라구요. 그런데 내가 우겼어요. 그냥 오라구... 산길이야 손바닥처럼

    빤한데... 그냥 오라구....

남  .....

여  내 말 듣지 말지.. 그냥 무시하지...

    우리 아버진 내 말이라면 뭐든 다 들어주시는 분이었거든요...

남  .....

여  지금은 그게 원망스러워요

    왜 내말을.... 다 들어주셨을까....

(M) Careless Love / Annie Haslam

 

(E) 바람 세게 부는 소리 들리고 + 모포 펴서 주는

여  이거 덮으세요. 군용 담요라 꽤 따뜻해요

 

남  유리창은 눈으로 뒤덮여 버렸다

    산속은 적막했다

 

여  여기... 왜 왔어요?

남  .... 네?

여  형사... 아니죠?

(M) Adle E Aleina / Silje Vige

 

여  아주 예전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무슨 죄인지는 모르겠는데.. 죄를 짓고 우리 산장으로 도망온 사람이요

남  ........

여  어쩌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는데.. 난 신고하자 그랬고

    아버진 안된다 그랬어요

남  .... 왜요?

여  만약에 신문에서 그 사람 봤으면 욕했겠지만. 우리집에 들어온 손님인 이상

    그럴 수 없다구요. 그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거니까 그럴 수 없다구요

남  ..... 그래서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여  우리가 눈치챈 걸 알고 도망갔어요

    그 뒤론...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남  ...... 나도 도망가야겠네요 이제 

여  마음대로 하세요. 일부러 신고까지 하진 않겠지만...

    숨겨줄 마음은 없으니까... 누군가 아저씨 찾으러 오면

    거짓말은 하지 않을 거에요 

(M) Dance Mot Var / Anne Vada

 

(E) 새 우는 소리

남  언제 잠이 들었을까..

    그녀와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눴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보다

    옆을 보니 그녀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 잠들어 있었다

    움직일 수가 없어

    얼마쯤 그냥 가만히 있었다

 

여  (깨어나는) 어? 언제 일어났어요? 깨우지...

남  잘 잤어요?

여  (재채기) 감기 걸린 거 같아요

(E) 옷 벗어주는

남  일단 이거 입어요

여  됐어요. 

남  입어요. 아침이긴 해도 집까지 걸어가려면 추울거에요

(M) Song From The Snow / Real Group

 

남  폭설 속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서였는지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아서였는지

    난 그녀에게 왠지 모를 친밀감을 느꼈다

    그건 그녀 역시 마찬가지인 듯 싶었다

    보름 가까이 그곳에 머무는 동안

    가장 좋았던 건

    그녀가 직접 차려준 식탁을 대하는 일이었다 

 

(E) 보글보글 끓는 + 식탁에 내려놓는

여  김치찌개 끓였어요

(E) 먹어보고

남  어우 맛있다 

여  그럼요~ 우리집 김치는 땅속 장독대에 1년 이상 묻어놓은거에요

남  서울 가고 싶댔죠. 

여  네

남  나중에 서울 가서 김치찌개 집 해요. 성공할 거 같애요

여  에이 겨우 이 정도루요?

남  난 이렇게 맛있는 김치찌개는 처음 먹어봐요

여  난.. 내가 한 음식 이렇게 맛있게 먹는 사람 처음 봐요

(M) Pretty World / Lisa Ono

 

남  그녀가 해준 음식에...

    이 산장의 아늑함에...

    산속 고요함에 익숙해져 갈 무렵....

(E) 차 와서 멈추는

남  낯선 차 한 대가 산장 앞에 멈춰섰다

(E) 차문 열고 나오는

남  읍내에 파출소에 있다는 그 남자였다

    창문 밖을 바라보던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벽쪽으로 숨겼다

 

여  (밖에서 나는 소리로) 어, 웬일이야? 연락도 없이?

남2 (밖에서) 어 뭐 확인할 게 있어서

여  뭐?

남2 그때 너랑 같이 우리 식당에 왔던 남자... 형사라고 했던...

여  (약간 떨리는) 그 사람이 왜?

남2 지금도 있니? 

여  왜 그러는데....

남2 현상수배범이야. 

 

남  두려워했던 순간이 오고 말았다

    난 황급히 가방을 챙겨 벽쪽에 바짝 붙었다

    

여  그 아저씨 떠났어. 

남2 그래? 언제?

여  한 이틀됐지. 속초쪽으로 간다 그러던데....

(M) Knockin' On Heaven's Door / 유미

 

(E) 장작 타는 소리

(E) 차 따르는

남  왜... 그랬어요?

여  .........

남  일부러 신고는 안해도 숨겨주진 않을 거라고 했잖아요

여  엊그제... 읍내 장보러 갔다가 동물병원에 갔었거든요

남  ......?

여  우리가 구해줬던 노루 있잖아요. 죽을 줄 알았는데, 건강해졌더라구요

    곧 산으로 돌려보내도 되겠어요

남  좋은... 인연이네요. 그쪽이 맞았어요

여  나.. 아저씨랑도 좋은 인연이고 싶어서 그랬어요

    내가 지금 아저씨 숨겨준 게... 결국은 아저씨에게 좋은 일이였으면

    좋겠어요

(M) 눈의 꽃/ 서영은

 

남  그날밤. 가짜 여권이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새벽 동 트기 전, 난  떠날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E)가방 싸는

(E)노크 

남  네

(E) 들어오는

여  짐... 싸는 거에요?

남  고마웠어요 그동안.... 

    그런데 나 은혜 못 갚아요. 지금 가면 안 돌아올거니까

여  .... 잠깐은 시간 있죠?

남  왜요?

여  ..... 밥 먹고 가요

( E) 찌개 끓는 소리

남  식탁에는 내가 좋아했던 반찬들로 가득했다

    따뜻하게 김을 내뿜고 있는 하얀 밥을 한술 떠

    입안에 넣는데... 이유 모를 눈물이 차 올랐다

(M) Angel Eyes / Sting

 

(E)문 여는 + 몇발자국 나가는

남  그동안... 고마웠어요

(E) 가는

여  저... 별로 안궁금하시겠지만....

( E)멈추는

여  서울 안 가려구요. 김치찌개 집도 안 차릴 거에요

남  ......

여  내가 한 김치찌개.. 아저씨만큼 맛있게 먹어줄 사람 없을 거에요

    아저씨 말 믿고 김치찌개 집 차렸다간 망할거야. 그러니깐 나 안가고

    여기 있을 거에요    

남  ......

여  돌아오지 않으시겠지만... 혹시... 만약에 다시 여기 들를 일 있으시면

    김치찌개 또 끓여드릴께요. 

남  ..... 멧돼지 바비큐는요?

여  그것두 드릴께요. 공짜루. 

남  너무 약하다 

여  (약간 울먹) 네? 

남  이 가방 속에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있는지 모르죠

여  ....

남  이 속에 돈이면 김치찌개 백만그릇도 사먹을 수 있구요

    멧돼지 바비큐 매일 열 마리씩 죽을 때까지 먹고도 남아요

여  ..... 그래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손해보는 장사네요.

    (애써 냉랭) 그 돈 가지고 멀리멀리 가서 행복하게 잘 사세요.

    그리구 이거.... 입고 가든가 말든가....

(E) 문 쾅 닫고 들어가는

남  그녀가 난롯가에서 손뜨개질하던 스웨터였다

(M) 함께 있으면 좋을 사람 / 최재훈

    

(E)  눈 밟으며 내려가는 

남  나무마다 새하얗게 피어 있는 눈꽃들이

    내 걸음 걸음에 소스라치며

    후두둑 떨어진다

    왔던 길을 되돌아본다. 

    내 손에 든 가방이 무겁고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이 가방을 던져 버리고

    저곳으로 돌아가 그녀가 지어주는 따뜻한 밥을 먹고

    김치독을 땅에 묻고 

    덫에 걸린 산짐승들과 좋은 인연을 맺으며 살고 싶어진다

( E) 전화 거는

여  (힘없는)여보세요. 눈꽃 피는 마을입니다.  

남  진짜... 아무데도 안가고 거기 있어줄 수 있어요?

여  ..... 

남  진짜... 나랑 좋은 인연 맺어 줄 수 있어요? 

여  .... 아저씨

남  약속해주면 돌아올께요. 건강해진 노루처럼... 기쁘게 해줄께요

 

남  무거운 가방을 발밑에 놓아버린 내 머리 위로

    눈꽃이.... 떨어진다. 난 웃는다. 

(M)주제음  Snow / Claudine Log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