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15. 00:23ㆍ음악이 흐르는../음악에세이
(M)보리수 Der Lindenbaum / Nana Mouskouri
(E) 바람 소리 + 갈대 우는 소리
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보이는 것 보다 조금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보이는 것 보다 행복할 때도 있다
바람의 향기나
갈대가 우는 소리로
나만의 그림을 그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M) Vincent / Don Mclean
(E) 병원 복도 소음
남 횡단 보도를 건너다 작은 교통 사고가 났다
분명 파란불이 켜졌다는 신호음을 듣고 건넜지만
운전자는 내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마자
빨간불일 때 건넜다고 우겼다
살면서 이런 일들을 많이 당하기 때문에
그리 억울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다친 다리는 많이 불편했다
당분간 병원에 입원해 생활해야 했다
(E) 절룩이며 걷는 + 부딪치는
남 아 죄송합니다. 제가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
남 늘상 하는 인사였다
이렇게 먼저 얘기하지 않으면
오해를 하고 욕부터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여 괜찮으세요?
남 맑은 목소리의 여자였다
남 네... 저... 714호가 어디쯤인가요?
여 거기 입원해 계세요?
남 네
여 제가 데려다 드릴께요. 전 그 옆방에 있거든요.
(M) 겨울일기 / 장나라
남 여자의 손에 이끌려 병실로 왔다
내게 보조를 맞춰 주기 위해서였는지
여자도 천천히 걸음을 걸었다
(E)문열어주는
여 다 왔어요.
남 고맙습니다.
여 꽃이 참 예쁘네요
남 오늘 아침 다녀간 여동생이
장미꽃 한다발을 사왔었다
싱그러운 향기가 병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남 잠깐 뭐.. 음료수라도 드시고 가세요.
이제 옆방 친군데요...
여 (웃음) 그럴까요?
(M) If / Sissel
(E) 창밖으로 바람 부는 소리
남 가끔은 궁금해요.
여 뭐가요?
남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요...
여 ..........
남 (멋쩍은) 첨 뵙는 분한테 별 얘길 다하죠?
여 .... 음.... 지금 밖에 바람이 많이 불고 있어요
남 ... 네... 바람 소리가 들려요
(E)창가로 다가가는
여 꼬마가 엄마 손을 잡고 가는데... 하얀색 외투를 입고
하얀색 모자를 썼어요. 그리구 자꾸 병원 앞에서 파는
호떡을 사달라고 졸라요. 엄마는 그냥 가자 그러구....
남 (웃음) ..... 네....
여 또.... 저쪽에선 한 노부부가 산책을 하고 있어요
둘이 손을 꼭 잡고 가다가...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목도리를 매주고 있어요. 참 좋아 보여요...
남 그녀는 얼마 동안 내 병실에 머무르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M) 풍경 / 시인과 촌장
남 알고 보니 우리는 동갑이었다
자연스럽게 서로의 병실을 오가며
우리는 친구가 되어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병실에서의 답답한 생활을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E) 똑똑 노크
남 네~
(E) 들어오는
여 친구들이 과일을 사왔는데 좀 많은 것 같아서...
남 잘 왔어. 안그래도 심심했는데....
여 오렌지 좋아해?
남 응
(E) 오렌지 까는
남 방안으로 오렌지의 새콤한 향기가 퍼졌다
여 자....
남 그녀가 껍질을 까서 작게 조각내준 오렌지를
입안에 넣었다. 그녀는 내 방에 올 때마다
항상 이렇게 기분 좋은 선물 한가지씩을
들고 온다
(M) Loving You / 신승훈
여 오늘은 눈이 오네....
(E) 창가로 걸어가는
남 눈이 와?
여 응... 정말 예뻐....
남 어떤데?
여 거리도 나무도.... 다 하얗게 뒤덮였지 뭐.....
꼭 영화에 나오는 외국 거리 같다....
남 그래?
여 길이 얼어붙었나봐. 사람들이 옆사람들이랑 팔짱을 끼고... 조심조심
빙판길을 걸어가... 여고생 애들은 조심성 없게 뛰어가다가
발라당 넘어지기도 하구.... 차들은 느릿느릿 도로를 꽉 메웠어....
눈 오면 다좋은데... 차밀리는 건 좀 골치잖아...
남 ...... 또?
여 음... 또.... 와~! 어떤 남자가 여자한테 프로포즈하나봐.
남자가 눈길 위에 무릎을 꿇고 여자한테 꽃다발을 주고 있어.
여자도 싫지는 않은가봐. 저 남자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니?
남 .... 좋겠다
여 저 여자?
남 아니... 너...
여 왜?
남 그 많은 걸 다 볼 수 있어서....
(M) 영화보다 행복해 / 조트리오
(E) 원두 커피 머그잔에 따르는
여 커피향 좋다...
남 어제 여동생이 다녀갔거든...
여 늘 챙겨주는 그 동생?
남 응... 걘 나한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
여 왜?
남 어렸을 때 동생이 사고날 뻔 한걸 내가 구했거든...
그때 눈을 다쳤고....
여 .... 아....
남 그런 거 다 운명이라고 생각하는데...
누구 책임도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난...
여 동생 입장에선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겠지...
남 그래두...난 그냥.. 동생이 편하게 자기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는데....
나 챙기느라구 아무 것도 못하는 것 같아서... 그게 좀 마음 아파...
여 이 머그잔도 동생이 사다준거야?
남 응
여 머그잔에 그려진 그림... 참 예쁘다....
남 그래? 어떤 그림인데?
여 음... 커다란 나무 밑에 여자애가 책을 읽고 있어
그 위로 나뭇잎 몇 개가 떨어지고 있고....
부드러워 보이는 잔디가 바람에 흩날려...
그 위에 그대로 누워서 낮잠이라도 잤으면 좋겠다.
남 그녀는 바로 눈 앞에 풍경을 그려주듯이 이야기하는 법을
잘 알았다. 그래서 난 그녀와 있는 시간이 정말 즐거웠다
(M) 뷰티플 걸 / 일기예보
남 넌 팔하고 허리를 다쳤다고 했지?
여 응
남 어쩌다 그랬어?
여 계단에서 굴렀어
남 응? 어쩌다가?
여 그냥.... 덜렁대다 그랬지 뭐.
남 얘기하는 거 보면 참 섬세할 것 같은데...
여 아냐. 나 무지 덜렁대.
남 너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
여 ...... 내가?
남 ...... 아니 뭐 별뜻은 없구....
요즘 날마다 얘기하는 사람이 너밖에 없으니까.....
또 목소리만 들으니까.... 궁금하다는거야... 그냥...
여 내 얼굴... 한번 만져볼래?
남 ..... 어?
여 어떻게 생겼는지... 그려볼 수도 있잖아
남 그녀의 따뜻한 손이 내 손을 잡아
자기 얼굴 위로 올려주었다
숱많은 눈썹과 작지만 오똑한 코. 부드러운 입술이
손끝으로 만져졌다.
(M) You Needed Me / Boyzone
여 어떤 것 같애?
남 엄청 못생겼을 것 같다
여 뭐?
남 (웃고) 내 얼굴은 어떻게 생겼어?
여 응?
남 어렸을 때 얼굴은 그냥 좀 기억나는데...
커선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어. 옛날엔 나도 귀여웠는데...
여 진짜?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냐?
남 야아...
여 (웃고) 어?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 친구들 문병오기로 했는데...
남 그래. 가 봐.
여 어. 나중에 봐.
(E) 몇걸음 걸어가다가 와장창 넘어지는
남 왜 그래!
여 어.. 넘어졌어...
남 괜찮어?
여 ..... 응.... 이거 봐. 나 덜렁대지?
(M) Right Now And Right Here/ Keren Ann
남 그녀가 병실을 떠난 뒤에도
손끝의 감촉이 지워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녀의 얼굴이 밀어내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기다리고...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러면 안될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그녀를 많이 좋아하게 돼 버린 것 같았다...
(M) Something Stupid / Robbie Williams & Nicole Kidman
(E) 똑똑
여 네~
(E)문 열고
남 난데.... 친구들이 과일을 사왔는데... 좀 많은 거 같아서....
여 그거 얼마전에 내가 써먹었던 거잖아? 좀 새로운 변명 없어?
남 .... 아..... 그랬나?
여 들어와 앉어..
(E) 천천히 들어오고
남 뭐하고 있었어?
여 응... 사진첩 보고 있었어
남 무슨 사진?
여 여행 갔던 사진...
남 어디로 여행 갔었는데?
여 난 대학교 때 세계 일주 했었어
남 와... 진짜?
여 응. 지금 보고 있는 건, 인도 갔을 때 찍은 거...
남 아...
여 보리수 알지?
남 보리수...?
여 왜... 부처가 깨우침을 얻었다는 나무 있잖아....
그 나무 밑에서 찍은거야...
남 그 나무는 어떻게 생겼어?
여 어? (약간 당황, 하지만 금방 침착하게)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우선 굉장히 크고 잎이 무성해. 그늘이 넓게 지니까 그 아래는
정말 시원해. 그리구....
남 나중에 너랑 가보고 싶다
여 응???
남 나중에.... 너랑.... 그 나무 아래 가보고 싶다구...
좋은 데... 좋은 거.... 너랑 같이 보고 싶어...
(M) Once There Was A Love / Jose Feliciano
남 갑작스러운 고백이었다
나조차도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고백이었다
얘기를 꺼내놓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
난 발을 까닥거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남 오늘은 창밖이 어때?
여 ....... 글쎄... 아무 것도 안 보이는데....
남 그녀가 원하지 않던 고백이었다.
하지 말았어야 했다
(M) Time To Say Goodbye / Andrea Bocelli
남 그뒤로 그녀는 내 병실을 찾지 않았다
예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깜깜한 암흑이 나를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날....
(E)노크
남 노크 소리만 듣고도
난 그녀가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남 들어오세요
(E) 들어오는
여 나야...
남 어.. 오랜만이다...
여 ... 어....
남 .....
여 ..... 나 퇴원해
남 .... 아.... 다 나은거야?
여 응. 이제 통원 치료해도 될 것 같아서...
남 잘됐다..
여 ..... 가볼게 그만...
(E) 천천히 돌아서 나가는
남 내가 안되는 이유가....
(E) 가다가 멈추는
남 보지 못해서니?
여 .......
남 보지.. 못해서지?
여 ... 그래...
남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녀 입에서 그렇다는 대답이 나올줄은 몰랐다
여 .... 미안하다
(M) Sorry Angel / Jane Birkin
남 그렇게 그녀가 떠나고
난 잠시 앓아야 했다
오렌지 껍질을 벗겨낸 후
그녀의 손에서 나던 그 향기와
창가에 서서 창밖 풍경을 이야기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자꾸 떠올라
난 깜깜한 어둠 속에서 울어야 했다
(E) 문 열고 들어오는
여2 오빠~!
남 어. 수정이 왔니?
여2 어디 아퍼? 얼굴이 안좋다...
남 괜찮아. 뭐하러 자주 와.
(E) 비닐 내려놓는
여2 오렌지 좀 사왔어. 먹을래?
남 됐어. 치워...
여2 왜 그래....
남 그냥... 기분이 좀 별로야...
여2 커피라도 마실래?
(E) 달그락 거리며 머그잔 꺼내는
(E) 원두커피 따르는
여2 자..
남 됐다니까....
(E) 툭 치고 쨍그랑 깨지는
여2 어떡해... 잔 깨졌네....
남 그녀가 예쁘다고 했던 그 머그잔이다...
(E) 조각 치우며
여2 이거 진짜 특이한 꽃무늬라... 어디서 잘 팔지도 않는건데...
남 .....!! 너 방금 뭐라 그랬어?
여2 어? 잘 팔지도 않는 거라구....
남 그 머그잔에 그려진 게... 꽃그림이라구?
(M) 짧은
여2 왜 그래 오빠?
남 자세히 말해봐.... 어떤 꽃그림인지...
여2 노란색 해바라기야. 왜 그러는데....
남 커다란 나무 아래... 여자 아이가 책 보고 있는 그림 아냐?
여2 아닌데?!
남 ............
남 이상했다. 뭔가 이상했다.
남 수정아. 지금 창밖으로 뭐가 보여?
여2 창밖이라니?
남 창밖으로 보이는 거 말해봐....
여2 바로 앞이 건물이라 아무 것도 안 보여...
남 뭐?
여2 이 건물 바로 앞에 높은 건물이 막고 있어서... 아무 것도 안 보인다구...
(M) Adle E Aleina / Silje Vige
남 그녀가 지금까지 내게 보여준 풍경들은 다 무엇이었을까...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E) 문열고 들어오는
남 알아봤어?
여2 응. 윤은서.. 맞지? 옆방 환자...
남 그래. 뭐래?
여2 그쪽도 오빠처럼...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는데?
남 .....!!!
여2 몰랐어? 간호사 언니 말론, 오빠랑 꽤 친한 것처럼 보였다던데....
남 ..... 연락처는? 혹시 연락처 같은 거 물어봤어?
여2 연락처는 왜? 옆방에 있잖아...
남 아직.. 있다구? 퇴원한 거 아니구?
여2 오면서 살짝 보니까... 그 방에 있는 것 같던데? 이쁘장하게 생겼더라...
남 그방에... 그녀가 있다...
(M) Mai Piu Cosi Lontano / Andrea Bocelli
(E) 노크 소리
여 (힘없는) 네...
(E)들어가는
여 .... 누구?
남 나야
여 (당황) 누구세요? 방 잘못 찾아오신 것 같은데...
남 니 목소리... 못 알아들을 정도로 바보 아니야 나...
여 ............ 미안해
남 다시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
여 ...........
남 보리수는 어떻게 생겼어?
여 .........
남 ........ 니가 직접 보지 않았어도 괜찮아. 니 머릿 속에 그려진 보리수가
나한테도 진짜야.
여 ....... 미안해...
남 고마워. 그 동안... 내 눈이 되어줘서....
니가 본 것들... 니가 얘기해준 것들... 다 나한텐 진짜였어...
(M) 사랑해 / 소울 & 진
(E) 갈대 우는 소리 + 바람 부는 + 그 사이로 걷는
여 어둠 속에서 난 항상 상상을 해
지금 창밖엔 눈이 올거고...
그 눈을 맞은 아이가 깔깔대며 케익가게로 뛰어갈거고...
엄마는 아이가 넘어질까봐 안절부절대면서
종종 걸음으로 아이 뒤를 쫓아갈거고...
하지만... 상상 속의 그림을
누군가에게 말한다는 건 참 어려웠어...
보지 않아도....
상대방이 날 가엽다는 듯이 바라볼 걸
알 수 있었으니까.....
그치만 넌 달랐어....
넌 모든 걸 진짜라고 느껴줬으니까....
그래서 더 많이 이야기 해 주고 싶었어.
그러다 나중엔 덜컥 겁이 났어....
모든 걸 다 알아버린 니가....
날 얼마나 경멸할까....
무서워서 도망간거야....
(M) Not Going Anywhere / Keren Ann
(E)걷는 소리 계속되고
남 우리... 보리수 그늘 아래 가볼래?
여 바보... 우리 나라엔 보리수 없대. 그건 열대지방에서만 자라는 나무라던데?
남 보이지 않는다는 게... 보이는 것보다 대부분은 더 불행하지만...
아주 가끔은... 더 행복할 때도 있어.
그래야 공평하지..
여 (미소) 무슨 소리야...
남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여기가.... 어디든 될 수 있잖아.
(M) Prayer / Andrea Bocelli
여 나... 진짜 해보고 싶었는데 못해본 거 있어
남 뭔데?
여 지난번에 니가 내 얼굴 만져볼 때...
나도 니 얼굴 만져보고 싶었거든....
너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E)바람 소리 + 갈대 우는
남 바람이 불어와 그녀와 나 사이를 휘감고 지난다
그녀의 따뜻한 손이
내 이마와 눈과 코와 입술을 만지고 지나간다
우리 두 사람이 서 있는 그 자리 위로
아름다운 보리수가 자라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 속에
우리는 서 있다.
(M)주제음 Der Lindenbaum / Nana Mouskou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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