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2. 00:32ㆍ블로그 에세이/낙 서

펜촉 사이로 흘러나오는 잉크색이 먼바다의 빛깔 만큼이나 짙푸르다..
감성을 자극하듯 사각 거리는 독특한 느낌..
손에 잉크가 묻었고 책에도 잉크가 떨어졌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의 파란 교복에도 잉크가 튀었다..
물에 젖은 노트에는 잉크가 번졌다..
말라도 종이는 우글거렸고 잉크는 끝내 파랗게 멍을 들여 버렸다..

여물지 못한 작은손에 처음 쥐어진 만년필은 자꾸만 손에서 미끄러졌지만 연필이나 볼펜과는
비교할수 없을 만큼 그립감이나 필기에서 커다란 만족감을 안겨주었다..
손으로 꼽기도 버거운 아주 오래전..
중학교를 입학 하던날..
아빠가 입학 선물로 전해주었던 자주색 아피스 만년필..
사실 처음엔 조금 당황했다..
볼펜이나 샤프같은 필기구와는 다르게 만년필은 펜촉의 방향이 정해져 있기 때문인지
자꾸만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만년필만이 갖는 특유의 필기감은 다른 필기구 에서는 느낄수없는
독특한 느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귀를 간지럽히듯 뾰족한 촉으로 긁어대는것 같은 느낌..
물에 살짝 젖은 종이를 찢는듯한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소리..
어쩜 만년필은 볼펜 같이 편리한 것은 아니지만 왠지 자꾸만 찾게되는 감성의 펜 인것같다..

"어떻게 만년필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한달째 천명대를 기록하고 있는 엄중한 시기인지라 생일때 오지말라고
했더니 대신 아빠의 생일선물 이라고 아들이 택배를 보내왔다..
안그래도 작년엔가 문득 만년필 글씨가 쓰고 싶어져 하나 구입할까 해서 인터넷으로 검색만 했었었는데
어찌 내마음을 알고 만년필을 선택했는지 의아할만큼 놀랬다..
하지만 정작 아들은
"뭘 이런걸 보냈어..?" 하고
아빠가 실망 할까봐 걱정 했는데 다행이라고 하며
"헤헤.." 웃는 소리가 휴대폰속에서 들려왔다..
-Happy Birthday Dad- 라는 각인도 직접 주문했다고 한다..
애꾸잠자리..라고 각인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살짝 있었지만 아들은 아빠의 닉네임이
애꾸잠자리 라는 것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값비싼 만년필은 아니겠지만 선택하면서 숙고했을 아들의 성의에 또한번 고마움을 느낀다..

82년생 김지영( 작가: 조남주)은 그녀의 동생이 쓰던 만년필을 늘 가지고 싶어했다..
아버지는 지영의 동생에게만 만년필을 사주었지만 그녀는 자신도 만년필을 갖고
싶다는 말을 할수 없었다..
현실에 갇혀있는 그녀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부분 이다..
마치 그녀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가질수없는, 손에 닿지않는 물건처럼 여겨졌다..
헝클어진 머리..
종일 빨래하고 집안일 하고 아이들만 돌보는 지친모습의 그녀에게 만년필이 쥐어진건
그녀가 세상밖으로 나왔음을 의미하는 표식이 아니었을까..
지금의 만년필은 잉크가 떨어지면 카트리지만 교환하면 되지만 예전엔 튜브에 잉크를
주입해서 써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러나 그 번거러움 마져도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버렸다..
서툰목수가 연장탓 한다는 말이있지만 사실 장인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연장을 소중하게 다룬다..
만년필 또한 글을 쓰는 연장중에 하나이다..
만년필의 공능은 쓰는데 있다고 보지만 만년필도 하나의 연장으로 본다면 막펜과는 다른
그무엇 이상이 있음에는 틀림없는것 같다..
오랫만에 느껴본 만년필의 느낌..
만년필은 고전적 이면서 어딘가 모르게 우아하며 클래식한 이미지로 외적미를 풍긴다..
누구처럼 폼나게 안주머니에서 꺼내 결제서류에 서명 할일은 없지만 내게 만년필은 감성이 충만하게
묻어나는 펜 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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