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세이(48)
-
제 6 화 슬픈미련..
11월은 신비한 계절이다. 낙엽과 첫눈이, 가을과 겨울이, 사랑과 이별이 공존하므로.. 인디언들은 11월을 '눈빛이 깊어가는 계절'이라고 얘기했단다. 눈이 시리게 푸른 가을하늘보다 융단처럼 거리를 뒤덮은 색 고운 낙엽보다 더욱 아름다운 것은 11월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깊어진 눈빛이다. 가을에는 이별하지 말라고 했던가.. 그러나 첫사랑 그녀가 떠나간 계절, 가을이 되면 나는 한없이 헤매이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헤어지자 말하던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와 그 뒷모습까지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이다. 거리엔 그녀의 뒷모습을 닮은 여자들이 너무나 많았다. 긴 생머리만 봐도 아프게 내려앉는 가슴에 눈 둘곳 없어진 나는 발끝만 내려다보며 거리를 걷는다. 그녀를 잊기 위해 찾은 곳이 시련클럽이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2024.01.30 -
제 5 화 피아노
새벽에 서리가 내려서일까.. 녹차밭이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 따뜻한 스웨터라도 걸치고 산책을 나가볼까? 난 지금 아주 오랜만에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고 있다. 지난 일년동안 난 한 권의 소설과 한 권의 시집을 완성했고, 그덕에 조그마한 차밭이 달린 통나무 집을 얻게 되었다. 은은한 통나무 냄새와 풋풋한 바람의 향기와 함께 이곳에서 오랜만에 진정한 삶의 여유를 느끼고 있었다. 한여름에 따온 어린 찻잎으로 끓인 녹차 한 잔, 그리고 이 아름다운 고요.. 이 아름다운 고요를 깨는 저 소리.. 내가 가장 싫어하는 피아노 소리.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작은 집, 분홍빛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안에선 여전히 소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더이상 견딜수가 없었다. "누구세요?" "저 옆집인데요" "네 무슨 일이세요?" ..
2024.01.26 -
제 4 화 이별여행
창밖으로 아내가 정성들여 키우던 꽃 화분이 보인다. 파란 물조리개로 물을 부어주고 마른 헝겊으로 잎을 닦아주고, 꽃이 피면 달빛이 스러져 가는 줄도 모르고 밤새 그 곁을 지켜주던, 그 어린 화초들이 앙상하게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결국 아내가 이혼을 말한다. 이혼하자고 말해버렸다. 그가 나를 잡아주길 간절히 바라며 하지만 그는 말없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창밖만 보고 있다. 푸른새벽이다. 도시가 아직 눈뜨지 않은시각 우리가 자주가는 제과점 아직도 우리옷이 걸려있을 수 있는 새탁소, 아내얼굴을 떠 올리며 사곤했던 과일가게 모두 굳게 셔터를 내려버렸다. 왜 아내는 이 시간에 여행을 떠나자고 했을까? 그와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나보고 싶었다. 아직 사랑한다는 말도, 그를 놓아주고 싶지 않다는 말도 아무말도 해주지..
2024.01.19 -
제 3 화 11월에 내리는 비..
비가 오고 있다. 머그잔에 인스턴트 가루를 넣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가득 붓는다. 뿌연 창문에 입김을 불어 소매로 쓱쓱 닦아내본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가방으로 머리를 감싼 채 추수가 끝난 들판을 가로질러 뛰어가고, 여름내 눈부신 초록으로 빛나던 나뭇잎들이 눈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잎새들을 촉촉하게 적시는 찬 빗물이 어느새 내 가슴 속 가장 아픈 기억을 슬며시 끄집어낸다. 그해 11월, 그날도 늦가을 찬비가 내리고 있었다. 난 따뜻한 방안에 엎드린 채 처마로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아버지가 말했다. 새 어머니가 들어오기로 했다고, 그녀는 아버지가 가르치던 제자라고... 난 대답없이 처마에 떨어지는 빗물만 쳐다봤다. 얼마 후 그 녀가 왔다. 어머니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어린 그녀를 맞이하..
2024.01.12 -
제 2 화 그 여자네 집..
난 지금 그여자네 집앞에 서있다. 안개꽃 한다발을 들고서. 그리고 조그만 소리로 세레나데를 부르며... 나즈막한 담장 너머로 보이는 작은 정원 그 여자가 가꾸는 키작은 작은 꽃들 그 여자가 좋아하던 금잔디 가을볕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고 있는 잔디위로 솜털같은 구름의 그림자가 살짝 드리워진다. 내가 그리던 풍경이다. 그녀에게 다시 오는 날, 꼭 이런 풍경속에서 그녀를 만나리라 생각했었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 3월의 캠퍼스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노란 개나리는 환한 꽃망울울 터뜨렸고, 신입생들은 싱그러운 웃음을 맘껏 터뜨렸다. 들뜸과 설레임으로 가득찬 캠퍼스 한가운데에서, 나는 그녀를 처음 보았다. 그녀는 그림 동아리 선배였다. 컷트머리에 화장기 없는 맑은 얼굴.. 물감이 뭍어있는 남색 앞치마를 두르고..
2023.12.26 -
제1화 바닷가 우체국
아무도 없는 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밤 칠흑같이 까만 밤바다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이 있다. 그 빛이 흘러나오는 곳에 나는 있다. 나는 이 등대를 지키고 있다. 여름보다 훨씬 길어져 버린 가을 밤 난 주파수가 잘 맞지 않는 라디오를 켜 놓고 아침을 기다린다. 저 바다로 붉은해가 떠오르면 활기찬 아침 풍경이 펼쳐진다. 해변의 모래가 금빛으로 빛나고 고깃배가 통통거리고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아이들이 등교하는 바닷가, 나는 이곳의 아름다운 아침을 사랑한다. 내가 바닷가의 아침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늘 같은 길에서 마주치는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의 우체국으로 출근하는그녀.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에 깊은 눈매가 인상적인 여자다. 언제부터인가 난 그녀와 만날시간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가 조금 늦기라도..
2022.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