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화 슬픈미련..
2024. 1. 30. 00:37ㆍ음악이 흐르는../음악에세이
11월은 신비한 계절이다.
낙엽과 첫눈이, 가을과 겨울이, 사랑과 이별이 공존하므로..
인디언들은 11월을 '눈빛이 깊어가는 계절'이라고 얘기했단다.
눈이 시리게 푸른 가을하늘보다 융단처럼 거리를 뒤덮은 색 고운 낙엽보다 더욱 아름다운 것은
11월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깊어진 눈빛이다.
낙엽과 첫눈이, 가을과 겨울이, 사랑과 이별이 공존하므로..
인디언들은 11월을 '눈빛이 깊어가는 계절'이라고 얘기했단다.
눈이 시리게 푸른 가을하늘보다 융단처럼 거리를 뒤덮은 색 고운 낙엽보다 더욱 아름다운 것은
11월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깊어진 눈빛이다.
가을에는 이별하지 말라고 했던가..
그러나 첫사랑 그녀가 떠나간 계절,
가을이 되면 나는 한없이 헤매이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헤어지자 말하던 그녀의 담담한 목소리와 그 뒷모습까지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이다.
거리엔 그녀의 뒷모습을 닮은 여자들이 너무나 많았다.
긴 생머리만 봐도 아프게 내려앉는 가슴에 눈 둘곳 없어진 나는
발끝만 내려다보며 거리를 걷는다.
그녀를 잊기 위해 찾은 곳이 시련클럽이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알게된 곳..
떠나버린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모여든 곳, 시련클럽..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들은 독한 술을 단숨에 마셨고, 푸념을 담배연기처럼 뿜어댔다.
내 인생에 사랑은 한 번 뿐이었기에, 그 사랑을 잊어버리기 위해
나도 그들속에서 함께 먹고, 마시고, 아파했다.
"오늘 그 사람이 결혼했어요. 내 가장 친한 친구랑.
용서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모르겠어요."
짧게 커트된 머리, 동그란 얼굴, 살짝 드러낸 흰 덜미,
그리고 유난히 깊어 보이는 눈.
11월을 닮은 눈빛이 있다면 이런 것이리라.
자신을 주현이라 소개한 여자와 난 어느새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흐느적거리는 재즈선율속에서 난 나를 떠나버린 첫사랑 그녀를 얘기했고,
주현은 주현을 떠나버린 한 남자를 얘기했다.
우린 서로의 상처에 공감하며 많은 말들을 나눴다.
사랑이 입힌 상처를, 사랑이 치료해 줄 수 있을까?
첫사랑의 상흔이 그대로 가슴에 남아 있는데
난 주현과의 또다른 만남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 많이 늦었지? 미안해."
"아니야, 나도 온지 얼마 안됐어."
"아이. 그런데 또 덕수궁 돌담길이야? 연인들이 여길 돌면 헤어진다는데."
"그런말 어딨어 괜찮아."
그랬을까? 그래서 첫사랑 그녀와 헤어졌을까?
그녀와 자주 걷던 돌담길, 그녀가 책갈피에 꽂아주던 낙엽, 그녀가 바라보던 하늘..
주현과 함께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예전의 그녀속에 살고 있었다.
주현은 내게 여행을 가자고 했다.
11월 바다에 가면
사람없는 바닷가를 차지할 수 있고, 한참 물오른 꽃게를 맛볼 수 있으며,
어느때보다도 황홀한 일몰을 바라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옛사랑을 잊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린 지금 서해안의 작은 섬에 와 있다.
11월 바다에 가면
사람없는 바닷가를 차지할 수 있고, 한참 물오른 꽃게를 맛볼 수 있으며,
어느때보다도 황홀한 일몰을 바라볼 수 있고,
무엇보다도 옛사랑을 잊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린 지금 서해안의 작은 섬에 와 있다.
"저기 저거.. 저 큰 바위가 할아버지 바위고, 그 옆에 작은 바위가 할머니 바위래.
둘이 저렇게 있게 된 건 천 년도 더 된 일이래.
앞으로도 영원히 둘은 저렇게 있겠지?"
나도 그녀와 그럴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해가 붉은 바다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검은 밤바다 위로 별그림자가 촘촘히 박혀있다.
주현의 작은 얼굴이 내 어깨위로 기대어 왔다.
"처음에 그 사람이랑 헤어졌을 때.. 나, 초콜릿을 많이 먹었어.
초콜릿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잖아.
그런데 초콜릿을 먹어도 하나도 나아지지 않던 마음이 봉덕씨 만나고 정말 괜찮아졌어.
이제 나. 그 두 사람 모두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애. "
그러나 난 아니었다.
길고 조용한 주현의 속눈썹을 바라보면서도 난 첫사랑 그녀를 떠올리고 있었다.
별 그림자가 조금씩 쓰러져 가고 있었다.
주현은 내게 과분하게 잘해주었다.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초최해진 내 앞에 예쁘게 싼 도시락을 가져다 주기도 했고
깜빡잊고 지나가버릴 뻔했던 내 생일날, 좋아하는 친구들을 불러 깜짝파티를 벌여주기도 했다.
물론 주현에게 고마웠다.
그러나 주현은 첫사랑 그녀를 대신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내 마음속엔 예전의 그녀에 대한 사랑과 미련이 함께 자리잡고 있었다.
주현의 자리는 없었다.
어느날 주현은 내 낡은 지갑속에서 그녀의 사진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봉덕씨. 이거 뭐야?"
첫사랑 그녀의 사진이었다.
주현은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물었다.
"왜 아직 그여자 사진을 가지고 다니는 건데?"
왜냐고? 그건 나도 알 수가 없었다.
미련은 미련한 자의 몫이라고 했던가?
한참동안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못하고 있는 내게
주현이 조용히 말했다.
" 괜찮아, 괜찮아 봉덕씨.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은 나잖아. 그걸로 됐어.
당신이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돼 그럼 돼."
물기로 촉촉해진 주현의 깊은 눈망울이 웃고 있었다.
처음으로.. 주현이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새 겨울이 왔고 크리스마스 이브가 됐다.
주현은 기념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했다.
주현은 기념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했다.
"촌스럽게 무슨 사진이야."
"올 크리스마스 이브에 사진찍고, 내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찍고, 그 다음해도 찍고
그래서 한 20년쯤 흐른 후에 스무장 쯤 쌓여있는 크리스마스 이브 기념사진들 보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애.. 안그래?"
"아 우리 어디갈까?
설마 또 덕수궁 돌담길 가자는거 아니지? 돌면 헤어진다니까.
에이 미신이야, 돌담길이 어때서 눈오면 얼마나 예쁜데."
이때였다. 그 전화가 온 것은.
설마 또 덕수궁 돌담길 가자는거 아니지? 돌면 헤어진다니까.
에이 미신이야, 돌담길이 어때서 눈오면 얼마나 예쁜데."
이때였다. 그 전화가 온 것은.
"무슨 전화야... 여보세요."
믿을 수 없었지만 그녀였다.
떠나고 단 한번의 연락도 없던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졌다며, 와달라고 했다. 그녀의 곁으로
떠나고 단 한번의 연락도 없던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졌다며, 와달라고 했다. 그녀의 곁으로
"봉덕씨 갈꺼야?
안갈꺼지? 안갈꺼잖아.
내 옆에 있을거잖아, 그렇지? 약속해줘.
저 우리 어디 가자. 일단 들어가서 얘기좀 하자, 응?"
안갈꺼지? 안갈꺼잖아.
내 옆에 있을거잖아, 그렇지? 약속해줘.
저 우리 어디 가자. 일단 들어가서 얘기좀 하자, 응?"
"주현아 미안하다."
눈이 오는 거리에 주현을 남겨두고 난 뛰기 시작했다.
그토록 보고싶던 나의 첫사랑 그녀에게로.
날 떠나버렸던 그녀, 그녀가 술에 취해 울고 있었다.
긴 생머리와 하얗고 가는 손가락,
내가 사랑하던 향기까지도 그대로인 그녀.
그러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녀를 집으로 바래다 주면서 난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진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내 가슴의 주인은, 바로 주현이란 것을
긴 생머리와 하얗고 가는 손가락,
내가 사랑하던 향기까지도 그대로인 그녀.
그러나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녀를 집으로 바래다 주면서 난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진짜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내 가슴의 주인은, 바로 주현이란 것을
난 지금 주현에게로 달려가고 있다.
주현이 그자리에만 있어준다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주현을 사랑한다고,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주현이 그 자리에 있어주기만 한다면..
주현이 그자리에만 있어준다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주현을 사랑한다고, 다시는 떠나지 않겠다고..
주현이 그 자리에 있어주기만 한다면..
다행히 주현은 그곳에 그대로 서 있었다.
"주현아 나 다시 왔어.
주현아 미안해, 정말 미안해."
파리하게 떨리는 입술, 주현의 조용하게 깊은 눈빛.
그 눈빛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리고 말없이 떠나가 버렸다. 차가운 뒷모습을 남긴채..
그 눈빛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리고 말없이 떠나가 버렸다. 차가운 뒷모습을 남긴채..
한번 식어버린 주현의 눈빛은, 그리고 그 마음은 다시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주현은 그렇게 내곁에서 사라져 버렸다.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아프게...
주현은 그렇게 내곁에서 사라져 버렸다.
너무나 쉽게, 그리고 너무나 아프게...
다시 11월이 왔다.
또다시 난 거리를 헤매고 있다.
거리엔 주현의 모습을 닮은 여자들이 너무나 많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가보기도 했지만,
이 거리에 주현은 없었다.
11월의 바다, 아름다운 일몰, 별 그림자 때문에 가슴이 아팠지만
난 낡은 지갑속에서 주현의 사진을 꺼내본다.
또다시 난 거리를 헤매고 있다.
거리엔 주현의 모습을 닮은 여자들이 너무나 많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려가보기도 했지만,
이 거리에 주현은 없었다.
11월의 바다, 아름다운 일몰, 별 그림자 때문에 가슴이 아팠지만
난 낡은 지갑속에서 주현의 사진을 꺼내본다.
아주 먼 훗날 주현을 다시 만난다며는
사랑은 한 번이 아니라고, 사랑이 두 번 올 줄은 몰랐다고,
그럴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고.. 그렇게 말해주겠다.
그리고 너무 늦게 사랑해서, 너무 늦게 깨달아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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