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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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가는 아내에게 -황 지 우-
늙어 가는 아내에게 -황 지 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곱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 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 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 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 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 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2024.03.10 -
어서 돌아오렴..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고양이 한마리가 집에 나타나기 시작했다..지난여름..저녁무렵에 손님들이 바베큐를 시작할때쯤이면 어디서 나타나는지 정원에 마련된 손님들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여기저기서 주는 먹이를 취식하고 있었다..처음에는 몇번 오다 말겠지..하고 생각 했었는데 이제는 사람들 소리만 나면저만치서 바람처럼 뛰쳐나온다그러더니 이젠 아예 아침부터 문앞에 웅크리고 앉아 우리가 나올때를 기다리고 있다..처음볼때 녀석은 누군가 사람의손에 의해 길들여진듯 온순하지만목에는 목걸이가 아닌 그냥 전기줄로 꽁꽁 감겨 있었다..왠지 보기가 안쓰럽고 딱해보였는데 마침 목줄을 끊어주니 녀석은 마치굴레에서 벗어나기라도 한듯 마당을 구르며 좋아한다..가만히 들여다보니 밉지않게 생긴 모습이다..고양이는 요망하며 영물이라 했는데..문..
2024.03.08 -
제 10 화 크리스마스 이야기
이제 난 서울로 간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산골학교로 발령을 받고 교사생활을 하면서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핸드폰이 터지지 않아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고, 여자친구와도 자주 연락을 할 수 없었다.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하얀 눈 위, 그 기분. 그러나 눈만 한 번 쌓이면 운전도 할 수가 없어 꼼짝없이 산을 걸어 내려가야만 했다. 물론 눈쌓인 이곳의 풍경은 아름답다. 맑고 차게 얼어있는 얼음 밑으로 흘러가는 물소리. 눈쌓인 둥지를 보드라운 날개짓으로 털어내는 새들의 노랫소리. 배고픈 산짐승들이 다니는 길목에 빵조각을 놓아주는 어린아이들의 착한 웃음소리. 정든 시골생활이었지만 그러나 이제 난 서울로 간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위하여. 드디어 서울에 도착했다. 역시 도시의 크리스마스는 화려하고 ..
2024.03.08 -
녹색에 취하다..
가을 하늘이 공활하게 눈이 부신 어느날..자동차의 선루프를 열고 따뜻한 가을햇살을 받아들인다..반쯤열린 차창너머로 들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에 긴머리칼이 함부로 날린다..나는 지금 서울과 정반대의 아주 먼곳에 와있다..굳이 여행을 떠나고 싶은건 아니었다..그저..한번쯤..혼자서 길을 나서고 싶었던것 같다..정말 일탈은 아니었을까..남도의 끝자락에 서서 아주 잠깐동안 내가 왜 이시간에..왜 이곳에 혼자 이렇게서있는지에 대한 정체성의 모호함에 의문이 들었다.. 전라남도 보성..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앎직한 대한다원..보성녹차밭 이다..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자 마자 마주하게 되는 가로수길..이 나무가 메타세콰이어 나무인지는 잘모르겠지만 담양의 그곳과매우 닮아있어 메타세콰이어길 이라 불러도 될듯 싶다...
2024.03.04 -
나 목 -이동원-
나 목 -이 동 원- 그대 입상이 보이는 창에 한시절 살고난 잎들이 진다 바람이 목메어 울고간 자리엔 잊혀진 언어가 안개처럼 흩어지고 귀를 기울이면 다가오는 빗소리 젖은 너의 목소리 목소리 목소리 가랑비가 오는 밤에는 먼 여행길에 돌아와 촛불을 켜리라 촛불을 켜리라 그대 입상이 외로운 창에 귀를 기울이면 다가오는 빗소리 젖은 너의 목소리 목소리 목소리 가랑비가 오는 밤에는 먼 여행길에 돌아와 촛불을 켜리라 촛불을 켜리라 그대 입상이 외로운 창에 그대 입상이 외로운 창에
2024.03.04 -
제 9 화 마지막 첫눈
첫눈이 언제 오는지 알고싶다며 보채던 딸아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다. 내가 만들어준 흔들의자에 앉아 커다란 무릎담요를 덮은채.. 창밖을 본다. 겨울바람이 마지막 떨어진 낙엽들을 크게 휘몰아 갈 뿐, 눈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첫눈은 언제 올까? 난 딸아이에게 정이 없었다. 사랑하던 아내가 딸을 낳다가 세상을 떠난 후로, 난 그 누구에게도 정을 줄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던 딸 주현이를 의사손에 맡겨두고 난 세상에 없는 아내를 찾아 헤맸다. 아내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그 누구를 데려가도, 나 아니 딸아이를 대신 데려가도 괜찮다고 기도한 적이 있었다. 내 딸 주현이를. 하지 말아야 할 기도를 한 죄일까. 신은 아내를 다시 되돌려주지도 않으면서, 내 어린 딸을 ..
2024.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