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9. 01:42ㆍ블로그 에세이/추억만들기
이젠 듣기만해도 지긋지긋한 코로나19는 아직도 끝나지 않고 여전히 진행중 이다..
이대로 세상이 망하는게 아닐까..
아니..이럴거면 차라리 망해 버렸으면 할때도 있었다..
나는 여행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저 카메라 메고 바람이라도 쐬려 훌쩍
다녀온지가 언제인지 까마득 하다..
앨범을 뒤져보니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인 2019년 5월 서해 변산에 다녀온것이 마지막 이었다..
변산반도 해변의 석양이 아직도 눈앞에 선연하다..
해가 지는 붉은바닷가엔 갈매기가 날고 테트라포트 위에선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낚시꾼이 줄지어 서있었다..
허름한 민박집의 아침 ..
창가로 스며들던 따스한 햇빛과 바로 옆에서 들리는듯한 파도소리..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열었을때의 설레임..
우연히 만난 낯선 곳에서의 낯선 아름다움..
다시 갈수 있을까..
월요일(?) 인데 본의 아니게 쉬어야만 하는 일이 생겼다..ㅋ
그래..
기왕에 이렇게 된거 어렵게 생각말고 쉬라는데..
그까이꺼 쉬지..뭐..ㅋ
문득 더 늦기 전에 깊숙히 숨어 버리려는 가을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그동안 한번쯤 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치 않아 늘 망설였던 숲속의 작은 샘터 같은곳..
어떻게 이런 산속의 오지에 책방이 있을수 있는지 놀랍기도 했고 신비 하기도 했다..
네비 게이션 지지배가 가르쳐 주는 좁은 산길을 구비구비 거쳐 주차장도 아닌
더이상 차가 진입할수 없는 막다른길..
예전에 사진을 보면 새한서점 이라는 쬐끄만 푯말 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마저도 없다..
아마도 쥔장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게 번거롭거나 귀찮아 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ㅋ
그길의 끝자락 산아래 한켠에 차를 세우고 먼지가 폴폴나는 언덕길을 내려가면
도무지 책방 이라고는 볼수없는 엉성하게 지어놓은 나무판자 집이 눈에 들어온다..
지붕에도 파란색 천막과 샌드위치 판넬로 그냥 덮어 놓는등 허접해 보이지만
산과 나무.. 공활한 가을하늘과 청명한 공기를 한껏 마시며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숲속의 풍경과 더불어 나름 운치가 있어보이기 시작한다..
이름없는 시골의 헌책방 이었던 이곳은 TV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과 영화에
등장하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내부자..라는 영화를 이곳에서 촬영 했다고 하는데 어느장면을 촬영 했는지는
영화를 보지 못해서 잘모르겠지만 우장훈 검사(조승우 분)의 아버지 집으로 나오는
장소가 바로 이곳 이라고 한다..
오래된 나무판자 건물..
창가로 언뜻 보이는 수북이 쌓여있는 책들..
파란하늘..
푸른숲속 에서 불어오는 아직은 따뜻한 한낯의 바람이 옷섶을 파고든다..
갑자기 내부가 궁금해 지며 기대가 되기 시작 했다..
헉..
역시나 기대를 져버렸다고 해야할지 않았다고 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어느 폐가의 문짝을 때어다가 달아놓은듯한 작은 출입문..
비라도 새지는 않을까..걱정을 하게 하는 천장의 파란천막..
어지럽게 늘어선 전기배선..
마치 조롱박 인듯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백열전구..
폭우라도 오면 진흙탕이 될것만 같은 흙길..
왠지 염려가 되지만 잠시후에 우리가 그동안 보아온 넓고 안락하고 휘황찬란한
서점의 상식을 완전히 파괴한 쥔장의 감성에 놀라움을 가지게 된다..
이런 허름한곳도 지식의 보고가 될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 서자마자 코끝을 자극하는 무언가 오래된 냄새..
삐그덕 거리는 문여는 소리..
역시나 이곳에서도 오래된것에 대한 향수가 여지없이 느껴지고 있었다..
실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손님도..직원도..쥔장도..
그저 적막함과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음악 이라도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문득..
그가 떠올랐다..
정신없이 바쁜 시간 일텐데..
산속의 허름한 책방이라고 무시해 보았다가는 큰코 다칠수 있다..ㅋ
서점엔 의외로 생각치도 못했던 다양한 장르의 책들이 쌓여있었다..
경제..문학..역사..외교..종교등 전문서적은 물론이고 조선민주주의 어쩌구 하는 책도 보였다..
도무지 눈으로는 가늠조차 할수없는 수많은 책들이 숲속의 서고에 가득 채워져 있었다..
판자를 얼기설기 붙이고 천막으로 지붕을 얹은 허름한 건물에 무려 13만권의 헌책을
소장한 서점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반전이다..
청주 최대의 대형문고인 영풍문고의 장서가 10만권인 것에 비춰보면 이산골 헌책방의
규모를 가늠해 볼수 있다..
이렇게 많고 다양한 책들에 놀랐지만 쥔장의 이력을 알고나면 쉽게 이해를 할수있다..
이곳의 쥔장은 1978년 리어커에 책을 싣고 다니며 노점을 했다..
그후 동대문에서 서점을 연후 고려대앞 에서 20년간 책방을 운영했다고 한다..
IMF로 어려움을 격다 온라인 판매로 돌아서기 시작하며 산수 좋은 이곳 단양으로
옮겨 왔고 처음엔 폐교된 적성초등학교 에서 문을 열었지만 이후 학교가 매각되자
지금의 자리로 들어왔다고 한다..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왔다..
산쪽으로 보이는 작은문을 살짝 열어보니 계곡을 따라 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에 시냇물이 순간순간 반짝이고 있었다..
이곳에 흔들의자를 놓고 깊숙히 등을 기대어 물소리를 들으며 한가로이 책을 본다면
행복해 질수 있을까..
특별히 보고 싶은 책이 있는건 아니었다..
물소리에 취해 그냥 바닥에 주저앉아 3류 연애소설 이라도 보고 있자면
어쩜 오늘안에 집에 가긴 틀릴른지도 모른다..ㅋ
언덕을 따라 지어진 집이다 보니 서점내부는 경사져 있다..
무언지 특유의 쿰쿰한 내음이 코끝에 게속 전해온다..
바닥도 흙바닥 이라 먼지가 일것 같아 조심해서 걸어야 할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랜시간 동안 별일없이 운영해 왔으니 괜찮겠지만 그래도 비라도 오면 어떨지
걱정이 되는건 어쩔수가 없다..ㅋ
켜켜이 쌓여진 책들..
일상의 시간을 잠시 멈추고 책이 주는 행복을 마음 가득히 채우게 하는 쉼터..
쥔장은 이곳에서 심신의 정서를 차곡차곡 쌓아 나갔는가 보다..
또다시 작게 물소리가 들려왔다..
밖에서 흐르는 물을 농수관을 통해 안으로 끌어온듯 돌틈에 웅덩이를 만들고
물을 흐르게 만들었다..
쥔장은 신선이 되려는지 이산속에 앉아 물소리를 들으며 기타도 치는가 보다..
ㅋ..
인증샷 말고 인생 책 이나 잘고르시길..
책방내부 에선 사진촬영이 원칙적으로 금지 되어있다..
휴대폰으로 몇장정도 찍는것은 허용된다..
책은 주로 인터넷으로 우체국 택배를 이용해 판매를 하며 굳이 들어보지 않아도
하루에 어느정도 매출일지 입에 풀칠할 정도의 벌이를 짐작 할수 있다..
유명세를 타면서 부터 자동차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찾아왔지만 그들은
책을 구입 하기보단 그저 사진 찍기에만 열중했다..
서점과 책이 세트장이 되고 소품이 되었다..
씁쓸함이 스쳤다..
이상한 나라 엘리스처럼 다른공간으로 빨려들어간듯한 묘한 느낌을 받은 산속의 헌책방..
시인 박목월이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이라고 노래했듯이 농주 냄새가
풍길 것 같은 궁벽한 산골의 농로가 끊긴 그 자리에 허름한 서점이 풍경처럼 서있었다..
책의 수량이 많은 만큼 관리가 아쉬운점도 있었지만 흙바닥에 그냥 놓아둔(방치..?)
책들도.. 오래된 헌책위에 묵은 먼지도..
천장에 거미줄도 이곳에서는 왠지 어울리는것만 같았다..
적지 않은 시간을 머물렀던 만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마음에는 그어떤 가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