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2. 01:05ㆍ블로그 에세이/추억만들기
두향은 지금의 충주호 인근인 옛 두향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거문고 타는 재주와 시문에 능했으며 매화와 난초를 잘길렀다고 한다..
일찍이 부모를 잃고 퇴기의 손에 의해 기생이 되었지만 여타의 논다니 기생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품과 품격을 지니고 있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두향이는 세조때 금성대군이 순흥에 내려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할 때 함께 참여했던 사대부가의 후손이라고 한다..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집안이 몰락한 것이었다..
단양팔경..
제비봉에서 북쪽으로 보면 말목산이 저만큼 서있다..
그 서편의 암릉 아래 충주호의 물결이 철썩거리는 강선대위로 무덤 1기가
점을 찍은 듯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인다..
단양기생 두향의 무덤이다..
두향의 무덤은 말목산이나 구담봉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제비봉에서만 볼 수 있다..
무덤 앞에는 두향의 꽃다운 넋을 기리는 비석만이 철썩거리는 충주호의
물결 소리를 들으며 우두커니 서있다.,
단양기생 두향과 퇴계 이황선생 사이에 있었던 애틋한 사랑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지금까지 전해온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때의 일이었다..
그는 군수로서 재임 중인 10개월 동안 지방 민정을 보살피며 논 밭에 물을 대기위해 만든
저수지인 복도소를 만들어 농사를 근본적으로 개량하였고 또 단양팔경을 제정하여
농민들의 정서순화에도 많은 치적을 남겼다..
그 당시 단양고을에는 두향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기생이 있었다..
가무는 말할 것도 없고 시문에도 능하고 서화에도 출중하여
명기중의 명기라고 일컬어오는 기생이었다..
두향은 만인의 애인 이었다..
퇴계의 고매한 인격과 심오한 학문에 감탄한 두향은 신임사또의 수청기생이
될 것을 자청했다..
선생도 두향의 비상한 재주와 비범한 총명을 어여삐 여겨 그녀를 수청기생으로
용납하였다..
그리하여 한가한 시간에는 두향과 더불어 학문을 일깨우고 시화와 음률을
즐기기도 하였고 때로는 산수에 노닐며 생을 논하기도 하였다..
마침내 두향은 퇴계의 거룩한 정신세계에 크게 감화되어 퇴계를 진심으로
사모하게 되었다..
두향의 사랑은 그리오래 가지 못했다..
그해 10월 퇴계의 친형인 대헌공이 직속상관인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해 오자
퇴계는그날로 사표를 내놓을수 밖에 없었다..
형과 아우가 직속 상하관계로 있으면 모든 공사에 공평을 기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오해를 살 우려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저 사표를 제출한 것이었다..
실로 퇴계다운 청렴결백한 성품의 결정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퇴계는 충청도를 떠나 이번에는 경상도 풍기군수로 전근되었다..
진심으로 퇴계를 사랑한 두향은 님과의 이별에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다..
그러나 두향은 먼 길 떠나시는 거룩한 어른의 심정을 어지럽힐까 두려워 눈물도
보이지 아니하고 웃음으로 전송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별이 하도 서러워 잔 들고 슬피 울제
어느덧 술 다하고 님마저 가는구나..
꽃 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두향이 퇴계와 이별 할 때 쓴 시-
두향은 단양을 떠나는 퇴계에게 자신이 직접 키운 매화분을 선물했다..
이때부터 퇴계선생은 평생 매화를 가까이하고 정성을 쏟았다..
항상 두향을 옆에두고 보는듯 애지중지 했다..
훗날 선생은 도산서원을 지으시고 1570년 70세의 나이로 마지막
눈을 감으면서 남긴 유언은
"얘들아..
저 매화분에 물을 주어라" 라고
할 만큼 두향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지고 했는지 짐작할수 있다..
퇴계가 단양을 떠나자 두향은 온 세상이 텅 비어있는 것만 같았다..
이제는 생에 대한 의욕마저 상실되어 느껴지는 것은 오직 허망함뿐 이었다..
“거룩한 어른은 이미 멀리 떠나가 버렸으니 나는 이제 누구를 상대로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퇴계가 아니면 그누구에게도 술을 따르며 웃음을 파는짓은 죽어도 다시는
못할 것 같았다..
마침내 두향은
“그 어른을 모시던 몸이 다른 사람과 다시 어울린다는 것은 그 어른에 대한
모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는 오늘로서 기적에서 물러나 여생을 오로지 그 어른만을 사모하면서
깨끗하게 살아가자..” 라며
결심을 하고 그날로 퇴적계를 내 놓았다..
그날부터 두향에겐 청상아닌 청상으로 열병과도 같은 고독한 사모의 시간이
끝없이 이어졌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듯 했다..
일어설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으며 하늘아래 오직 혼자만 남아있는듯 공허했다..
날마다 님을 찾았지만 님은 끝내 오지 않았다..
님과 함께 노닐던 강변..
님과 함께 읊펏던 시..
님과 함께 가락했던 음률..
퇴계가 못 견디게 그리울 때면 그 옛날 그와 함께 했던 이야기들을 회상하는 것으로
유일한 낙을 삼았다..
궁벽한 고독속에서 추억을 더듬는것만 으로도 무한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가 너무도 커서 그로부터 몇 해 후에
두향은 마침내 병으로 눕게 되었다..
이젠 소생할 가망이 없음을 깨달은 두향은 임종에 이르러 집안사람들에게 유언하였다..
"내가 죽거든 강가에 있는 거북바위 옆에 묻어다오..
거북바위는 내가 퇴계 선생을 자주 모시고 가서 시를 말하고 인생을 논하던 곳이다..”
두향은 그후 관기에서 벗어나 퇴계와 함께 노닐던 단양팔경의 하나인
강선대 강가에 움막을 짓고 평생 퇴계를 그리며 살다가 뜻밖에 퇴게의 부음을 듣고는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고 만다..
가족들은 유언에 의하여 두향의 시신을 남한강이 바로 눈앞에 굽어보이는
거북바위 옆에 묻었다..
이루어 질수 없기에 더욱 애절한것 일까..
서로 사랑받을수 있는 때를 타고나지못한 안타까운 사랑..
모르겠다..
갑자기 "매디슨카운티의 다리"의 나흘간의 사랑은 왜 떠올려졌을까..
매화는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했던가..
목숨처럼 지키는 두향의 절개에 왠지 마음이 숙연해 진다..
갈증이 나기 시작했다..
얼음같이 차가운 커피가 생각났다..
옛부터 매화는 선비정신의 상징이라 했다..
그토록 오랜기간 범하지 않고 샘물같이 깨끗한 사랑을 할수 있으면 좋겠다..
허접한 현대판 사랑이 매화를 오염 시키지 않았으면..
'블로그 에세이 > 추억만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년의 신비.. -경 주- (2) | 2024.06.13 |
---|---|
서울..이화동.. (2) | 2024.04.27 |
작가를 만나다.. (0) | 2024.04.16 |
가을에 서서.. (숲속의 책방) (2) | 2024.04.09 |
봄에 물들다.. (2) | 2024.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