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16. 01:25ㆍ블로그 에세이/추억만들기
벌교 문학거리 에서 그리머지 않은곳에 소설 태백산맥을 기념하는 문학관이
있다고 해서 득달같이 달려왔다..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 이다..
사실은 문학거리나 보성여관을 가기전에 이곳을 먼저 방문해 소설의 주요 줄거리를
파악한후 소설속의 배경장소를 찾아보는것이 순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해는 중천에 올라있었고 따사로운 가을의 햇살이 화사한 오후를 예고하듯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차들이 주차장을 메우고 있었다..
문학관은 소설속에서 첫시작 부분의 배경으로 나오는 현부자네 집과 소화의 집이 있는
제석산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조정래 (1943뇬 8월 17일~ )
그는 대한민국 소설가이다
서울 보성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릏 졸업했다
대표작으로 아리랑, 한강, 태백산맥등의 대하소설이 있다
조정래의 작품은 문학계의 큰 영행력을 미쳤는데 실제로 태백산맥의 경우
무혐의 처분능 받을때까지 11년 동안이나 국가보안법 위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모교인 동국대학교 에서 석좌교수로 재직했으며 2007년 오,하느님을 저술했다
태백산맥을 두고 영랑 김윤식은 "우리 문학이 여기까지 이르기 위해서 해방 40년의
기간이 필요 했다고 썼다
-백과사전 에서..-
그의 아버지 조종현은 불교신자 였으며 시인 이었다..
28세에 결혼해서 선암사로 출가해 대처승이 됐고 1943년 조정래를 낳았다..
해방 후엔 환속해 서울 보성고 등에서 국어교사로 일했으며 한용운과 더불어
불교청년회에 가담하면서 한용운의 애국적 실천력에 감화되어 그와 함께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민당을 결성해 활동했다..
벌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의 주요무대로 떠오르면서 이념갈등과 국토분단
그리고 그 상처의 연원을 표상하는 우리 시대의 지명 가운데 하나가 된다..
2008년 11월 문학관 개관 이후 2년 만에 26만명이 다녀갔다..
당시 벌교 읍민의 12배에 달하는 수치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16.000매의 원고량 속에 담긴 작가의 땀과 열정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이들이다..
문학관 에는 분단문학의 최고봉인 소설 태백산맥에 대한 자료가 전시돼 있다..
이곳에는 소설을 위한 준비와 집필.. 소설 태백산맥의 탈고.. 소설 태백산맥 출간 이후
작가의 삶과 문학 소설 태백산맥 이란 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1만6000여 매 분량의
태백산맥 육필원고를 비롯한 623점의 증여 작품이 전시돼 있다..
태백산맥을 집필할때 사용하던 찻잔 소주잔 들이다..
태백산맥이 문학관을 통해 벌교에서 본격적으로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아버지를 죽인 빨갱이를 증오하는 사람과 빨갱이 낙인에 고개조차 들기 힘들었던
이들이 함께 살아온 벌교.. 지역 내 갈등은 문학관 건립의 걸림돌이었다..
특히 소설의 이적성 시비로 인해 문학관 개관 역시 이념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태백산맥의 이념 논쟁은 1994년 구국민족연맹 등 8개 단체가 작가와 출판사를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고발한 후 검찰이 이적 표현물로 볼 수 없다며 무혐의 결정을 내리기까지
무려 1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소설 태백산맥 첫페이지의 육필원고..
조정래 문학관은 이곳 말고도 전라북도 김제에 아리랑 문학관 있다..
여기에 또다시 전남 고흥에 조종현 조정래 김초혜 가족의 삶과 문학을 담은
가족문학관이 개관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조정래..
그의 뿌리이자 선친인 조종현 시인..
한국 시문학에 한획을 그은 조정래 작가의 아내 김초혜 시인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학관이 문을 열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계획은 2015년 일찌감치 시작됐지만 조정래 김초혜 작가의 동의를 얻는 과정이 어려웠다..
“가족문학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듣고 아내가 크게 반대했습니다. 이미 내 작품을
테마로 한 아리랑 문학관과 태백산맥 문학관이 있는데 또 문학관을 지으면 ‘문학관에
미친 사람’이란 욕을 먹을것 ..) 이라고 했다..
자신도 시아버지와 남편 잘 만나 문학관을 갖게 된 시인이 되고 싶진 않다고 말을 했다..
우여곡절끝에 문학관이 건립되었으며 대를 이은 문학관 건립을 사실 흔치 않은 일이었다..
소설 태백산맥이 우리문학사에 큰비중을 차지하는이유는 소설에 등장한 모든 역사적 사건들이
팩트이며 그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직접 발로 뛰어 취재를 해왔다는점 이다..
역사와 시대의 소용돌이..
어찌보면 빨치산 투쟁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의 한페이지다..
지난날이 이념의 냉전시대 였다면 지금은 관계의 냉전시대 라고 볼수있다..
이냉전을 따뜻히 녹이기 위해서는 태백산맥이 담고자 했던
사랑..용서..화해..의 목소리를 분명히 귀담아 들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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