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3. 00:56ㆍ블로그 에세이/낙 서
그들은 낯설었지만 모두가 나의 친근한 이웃이었고 아름다운 사람들 이었다..
그들에게 섬은 사는 모습을 결정짓는 조건이었고 바다는 그들이 살아가야 하는 삶의 터전 이었다..
화산섬 이라는 척박한 환경에도 바다가 있어 그래도 살만했다..
따뜻한 해류를 따라 올라온 자리돔과 갈치..멸치등은 바다를 풍요롭게 만들었고 배를 대기조차
힘들었던 돌바다는 오히려 천연의 돌그물이 되었다..
어부들은 그물을 챙겨 배를타고 앞바다로 나갔고 비바리 할망들은 태왁과 빗창을 챙겨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제주의 혹독한 기상조건과 척박하기만 했던 토양에도 그들은 바다와 자연에 적응해 살아야 했다..
제주의 숨결을 따라 제주로 들어가면 바다 한가운데 살았던 순박한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섬의 서쪽 끝자락 고산리 자구네 포구에 도대불이 서있다..
제주바다가 시작 되는곳..
바람에 흔들리는 도대불을 등대 삼아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것만이 전부인 사람들..
오늘도 보았을 푸른바다와 검은바위의 제주바다는 내안에 깊이 파묻힌 욕망의 찌꺼기와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은 나의 원초적인 절망의 몸부림을 탓하게 했다..
그럼에도 바다는 여전히 내겐 애증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한번도 물리지않는 밥 이기도 했고 곁에 있어도 늘 그리운 애인 이기도 했지만
썩은 목선이 되어 침몰 할것만 같은 검은바다는 언제나 앞에서기 두려운 존재였다..
파도를 밀어제치면서 달려온 세찬 바닷바람이 그렇게 내 가슴팍까지 파고들었다..
바다앞에 서면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세월은 속절없이 저만큼 가는데 붙들고 싶은건 왜그리도 많은지..
왜 그리도 속알머리 없이 살았는지 도리질하게 하고 후회하게 하고 다짐하게 만들었다..
머리에선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하는데 마음에선 화가나니 그것까진 뭐라하지 말라고
바다에게 소리치고 싶었다..
가방 하나 메고 처음 제주공항에 발을 딛던날..
어디선가 따뜻한 바닷바람에 싱그런 봄내음이 묻어왔다..
야자수가 서있는 이국적인 풍경과 제주의 파란하늘..
생소하지만 처음 이란것에 그감정을 정리하기엔 내마음속에 설레임 같은건 없었다..
난 왜..이곳에 지금 혼자와 있는걸까..
내가 사랑하는것들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떠나온 이곳에서 나는 견딜수 있을까..
김포에서 비행기에 오르기전에 가졌던 다짐이 무색하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발이 땅에 붙어버린듯 걸음을 땔수가 없었다..
조금전까지 게이트에서 손흔들어주던 가족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다..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왠지 남들에게 추레해 보일것만 같은 행색에 눈길이 자꾸만 아래로 내려갔다..
저기 주차장쪽에서 이모가 빠른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고산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무심히 바라본 바다는 그동안 다른 해안에서 보아왔던 바다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보여주었다..
고립감 때문 이었을까..
방파제에 주저앉아 그저 혼자 술을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눈으로 꼬박 밤을세웠던 제주의 첫날밤..
고맙게도 친절하게 먼저 다가와준 사람들 덕분에 낯선땅에서의 긴장과 어색함에서
서서히 벗어나며 하루하루 적응이 되어갔다..
언제부터 인지 모르게 조금씩 제주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검은바다가 푸른 물빛으로 보였다..
이국적인 해안 풍경과 맑고 푸른 물빛..
파도소리가 청아했다..
먹빛을 가르며 붉고 푸른빛으로 일렁이는 그 바다는 이 세상 어느 보석보다도 투명하고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마을길을 걸으며 마추치는 돌담도 정겨웠다..
돌로 경계를 쌓은밭엔 감자와 당근이 영글었고 밭 한가운데 처음보았던 무덤은 신기해
보였지만 사위가 고르고 단정했다..
구멍이 숭숭뚤린 담장을 돌아가면 마당엔 잔디가 곱고 천정이 나즈막한 집엔 촉수낮은
등불이 마음을 평안 하게했다..
비가오는 풍경에도 눈이오는 모습에도 가슴이 설레일 만큼 아름답게 보였다..
일년 열두달 열려 있어 대문이 필요 없고 덧바르고 치장하지 않아도 좋은 돌집들..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을 그대로 품은 집들..
그곳에서 난 행복한 사람들을 보고 만났다..
제주는 나에게 감각적이며 도시적인 화려함 보다는 오히려 고요하고 은은하며 오래된것을
찾게되는 묘한 취향을 갖게 만들었다..
추운거실의 한켠엔 투박한 벽난로에서 연기가 새어나오고 천장의 거미줄과 미뤄둔 설거지도
이곳에선 흉이 될것같지 않았다..
마당에선 게으른 누렁이가 긴하품을 하고 이불호충 빨아널은 빨래줄엔 고추잠자리가
앵앵대며 날아갔다..
수평선에 짖게 드리운 구름에도 마치 그림처럼 아름다웠던 석양을 바라보며 잠시 놀멍에 빠져있다보면
어느새 가슴은 구멍이 뚤려 휑하니 찬바람이 지나가곤 했다..
제주의 바다는 겨울에야 제대로 보였다..
텅빈바다..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
마치 동양화의 여백을 보는듯 무채색 하늘이 담백했다..
바다는 사람들이 떠나고 나서야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제주 바다는 해가 져도 눈이 부셨다..
갈치와 한치.. 멸치 어장이 형성되면 집어등을 대낮 같이 밝힌 어선들로 불야성을 이룬 밤바다는
은빛 물결로 들썩였다..
하루면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지만 길 한 자락 벗어나면 또 다른 세상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만원짜리 한장들고 놀멍 쉬멍 꼬닥꼬닥 버스를 타고 다니다보면 숨겨진 제주의 속살을
얼마든지 만날수 있었다..
꽁깍지가 씌였는지 처음 제주공항에 내렸을때의 막연함이 무색 하게도 모든 하루가 일년 사계절이 눈이 부시게 시릴만큼 제주에 빠져들어 버렸다..
제주를 동경하는건 단지 아름다운풍경 때문인 것만은 아니다..
"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 라는 책을 도서관에서 본적이 있다..
읽어보진 않았지만 제목만으로도 내용을 짐작 할수있었다..
아파트가 아닌 돌담옆에 넓게 펼쳐진 귤밭..
붉다못해 핑크빛으로 온세상을 물들이는 노을..
바닷바람에 물결처럼 일렁이는 청보리밭..
하얀파도가 청록빛 바다와 어울려지는 그곳..
그런 제주는 관광객의 제주일뿐 그곳에서 살아가는 제주사람 들에게는 그저 치열하게 사는
삶의 현장 일뿐 이라는거..
더 이상 "별의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자.. "던 열정의 바다는 아니라는거..
그들은 오히려 열심히 살아서 제주를 벗어날것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바다빛에 가려진 제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습이 보이는것 같았다..
그들은 술을 좋아했다..
기뻐서 한잔..
속상해서 한잔..
숨막히는 고립감에 한잔..
제주에서 살려면 술을 잘먹어야 하는데 나는 술을 못먹어서 결격사유가 될것 같았다..
언제나 갈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씩 술연습을 해야할까 보다..ㅋ
바다에 가면 눈빛도 표정도 마음도 순하게 만든다..
들고나는 파도를 보며 파도는 제일을 하고 나도 내일을 한다..
바다를 보다가 지루해지면 골목을 걸으면 되겠지..
낯익은 돌담을 보고..
꽃도보고..
걷다가..
사진을 찍다가..
사색을 하다가..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문장을 수첩에 적다보면 어느새 노을을 보게 되겠지..
그렇게 선물같은 일상에 감사한 마음을 가질수 있다면 그게 행복 아닐까.
자유를 꿈꾸는 햇살 행복한 어느날..
난..
오늘도..
제주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