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영욕

2024. 11. 19. 00:43블로그 에세이/추억만들기

백제의숨결..

부소산성 이다..

나당연합군이 침입 하였을때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3천궁녀의 숨결이 느껴지는 낙화암과

백마강이 유유히 흐르는 산자락에 자리잡은 고란사는 백제의 영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찬란한 문화의 나라..

백제의 마지막 왕성..

백제가 멸망 할때까지 123년간 백제도성을 품었던곳..

백제의 마지막 낙화암 전설이 이곳에 살아 숨쉬고 있었다..

 

 

 

 
 
 

 

 

백화정..

낙화암 바위위에 있는 정자로 1929년 궁녀들의 원혼을 달래기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도성이 함락되고 적국에 잡혀가 치욕스럽게 사느니 

푸른 강물에 몸을 던져 무너지는 국운과 함께 하기로한 백제의 여인들..

치마를  뒤집어 쓰고 몸을 던지는 모습이 마치 꽃과 같다 하여 꽃이 떨어지는 바위..즉

낙화암 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여인들..

삼천궁녀에 대한 진위여부에 논란이 있지만 여기에서 굳이 문제 삼지 않으려 한다..

그저 그렇게 많은 궁녀들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전설에선 의자왕도 낙화암에서 뛰어 내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왕족들과 당나라로

끌려가 병사 했다고 한다..

 

 
 
 
 
 

 

 
 
 

 

 

망국의 수치와 한이 서려 있는듯한 시다..

의자왕의 이미지는 사치와 향락에 빠져 나라를 멸망시킨 장본인으로 각인되어있다..

그러나 그는 해동증자(증자 : 공자의 제자)라고 불리었을 만큼 대내적으로는 유교를 통해

집권력을 강화하고 정복군주라는 이미지 만큼 대외적으로는 고구려와 연합해

신라를 고립시키고자 했다..

개혁정치를 펼쳐 국정을 쇄신하고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해서 영토를 확장하였다..

그러나 말년에 나당연합군의 침공을 막아내지 못해 멸망함으로써 백제의 마지막

왕이 된 비운의 군주이다..

의자왕은 아버지 무왕이 왕위에 오르고 난뒤 무려 33년이  지난후에야 태자 책봉에 정해졌다..

 
적장자 였지만 그에겐 출생에 관한 신분과 다른 연유로 인해 태자 책봉이 늦어졌다..
 
 
우리에게 서동요로 잘알려진 서동과 신라 선화공주 의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인 서동이 바로
 
 
의자왕의 아버지인 백제 무왕 인것이다..
 
 
다시 말해 의자왕은 어머니가 적국인 신라인 이기에 입지가 많이 약해졌을것이란 평가가 
 
 
지배적 이다..
 
 
또다른 연유는 무왕이 새로 맞이한 아내 사탁왕후 와의 권력다툼 이었다..
 
 
결과적으로 의자왕이 태자에 책봉 되었지만 사탁왕후는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
 
 
의자왕의 태자 책봉을 끊임없이 방해 했을 것이다..
 

의자왕은 즉위 하자마자 신라의 정복전쟁에 나서 여러군대에서 연승하며 정복군주 로서의

이미지를 갖추게 된다..

그는 여러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점차로 자만심에 빠지게 되고 정적인 사탁왕후 까지 죽게되자 

돌연 긴장의 끈을 놓아 버리게 된다..

 
 
정사를 멀리하고 궁인들과 함께 날마다 음란과 향락에 빠져 술 마시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사이에 의자왕의 아내인 은고가 실권을 장악하고 국정농단을 일삼으며 
 
 
 
정치판을 좌지우지 하게 된다..
 
 
그틈을 놓치지 않고 신라 김춘추는 당나라와 연합해 백제를 무력화 시키며 망국의 길로 이끌었다..
 
 
잠깐의 방심과 빈틈은 여지없이 몰락의 길로 이어진다는건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다..
 
 
성충과 흥수 그리고 계백의 충절이 더욱 안타까워 진다..

 

 
 
 
 
 
 

3천궁녀의 모습은 간곳없지만 그녀들의 절개가 살아 있는듯 솔잎이 마냥 푸르르다..

꽃이 되어 떨어지던날..

그때에도 백마강의 물줄기는 저렇듯 도도하게 흘렀을까...

망국의 한을 품고 있는 백마강의 물결..

무정한 세월의 흐름속에 그날의 비정함과 참담함은  역사라는 이름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1500여년전..

백제.. 그 마지막과의 만남..

백마강은 오늘도 백제의 숨결을 품은체 묵묵히 흘러 가고 있다..

멀리 유람선에서 흘러나오는 고란사의 옛 노래가 정겹다..

백마강이 유유히 흐르는 산자락에 자리잡은 고란사는 고란초와 약수로도 유명하다..




 

 

 

 

 
 
 


창건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으나 백제말기에 지어진것으로 추정되는 고란사는

낙화암에서 이슬로 스러져간 3천궁녀의 넋을 기리기위해 1028년 고려 현종때

중창한 사찰로 전해진다..

백마강이 ..

낙화암이..

한층 더 안타까운것은 백제가 단지 역사의 패자로 사라졌기 때문인것 만은 아닐것이다..

고란사의 뒷편에는 고란정 이란 정자가 있는데 백제의 왕들이 자주 찾아 풍류를 즐겼다고 하며

그옆의 약수터는 왕들이 마시던 약수라고 한다..

약수 한잔을 마시면 3년이 젊어 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는데..

이소식에 고란사로 달려간 많은 사람들..

젊어지려는 욕심에 너무 마신 나머지 할아버지들은 아이가 되어버렸다는  믿거나 밀거나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ㅋ

 



 

 

 

 

고란사의 앞뜰에는 저마다 소원을 담은 기와가 잔뜩 진열되어 있다..

불교에서 이르는 용어가 있을텐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ㅋ

많은 이들이 소원을 이루어 행복해 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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