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영화

2024. 11. 5. 00:28블로그 에세이/낙 서

 

울었나 보다..

아련한 사랑의 이야기에 오랜만에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전철안의 맞은편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있는 중년의 신사 에게도..

공원 벤치에 한가로이 앉아 비둘기 모이를 주고있는 할아버지 에게도..

운동하며 언뜻 스쳐가는 아주머니 에게도..

어쩌면 한가지씩은

아련한 사랑의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모른다..

죽기전에 만나고 싶은 한사람..

"당신을 떠올리면 내마음은 언제나 여름입니다.."

하얀 백로가 우아하게 날개짓 하는 수체화 같은 풍경의 시골마을..

농촌 봉사활동..

그리고 억수로 내리는 여름비..

윤석영(이병헌)과 서정인(수애)의 아름답지만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는 잔잔한 내가슴에 돌을던져

또다시 파문의 물결로 일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유튜브 에서 우연히 보게된 영화..

여름 냄새가 진하게 묻어나오는 영화..

군사정권(박정희) 시절 3선개헌 반대투쟁으로 온나라가 시끄러웠던 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한

시대물 이지만 세상물정 모르는 순수한 두남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멜로물 이기도 하다..

 


- 그해 여름.. -

풋풋하고 싱그러웠지만 매사 시쿤둥하고 농땡이만 쳐대던 금수저 도련님 석영은 엄격한

아버지를 피해 마지못해 학교에서 떠난 어느 시골마을 수내리의 농촌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이곳에서도 역시 심드렁하게 농땡만 치고 있던 석영은 어느날 우연히 마을의 작은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는 정인을 만나게 된다..

가족을 모두 잃고 고아로 외롭게 살아가지만 씩씩하고 순수한 정인의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석영은 봉사활동은 뒷전인체 정인의 뒷모습만 쫒기에 여념이 없다..

농활에 참여했지만 무료한 일상에 있던 석영에게 행복 가득한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한것 이다..

정인 역시 풋풋한 석영에게 호감이 가는듯 이내 둘은 순수한 사랑에 빠진다..

농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해 오겠다는 핑계를 대며 장터에 나가는 정인을 따라나선 석영은

버스정류장앞 어느 전파사 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눈을 감고 귀 기울여

감상하고 있는 정인을 보게된다..

( 여기서 심쿵 했다..

  위에 유튜브 에서 찾아 올려놓은 곡이다..

  예전 음악다방 DJ 할때 메모리 송으로 많이 틀었던 곡 이다..

  Roy Clack (로이 클락) 의 - Yesterday when i was young -

  서정적인 멜로디..

  삶과 사랑의 허무를 노래한 가사는 극의 전개에 큰 도움을 주는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 올드 팝 이다.. )

 



정인은 내가 스무살때 알았던 그녀(아*) 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를 떠올렸다..

역시 스무살때 농촌 봉사활동 으로 갔던 백로 가득한 충청도 유구 신풍의 시골마을과 여름비는

내게 여전히 삭제 되지 않은 기억속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초등) 관사의 부뚜막에 앉아 억수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자신의 아픈과거를

담담히 이야기해 내려 가던 그녀..

쉽게 감정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며 언제나 흐린비 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서

궁벽한 고독을 스스로 견디여 내던 그녀..

통금이 임박한 여의도 광장에서도..

비안개 자욱한 독산동의 버스정류장 에서도..

조*리 에서도 .. 늘 비를 몰고 다니던 여자..

언젠가 광화문 어디에선가 만나기로 약속한날 오후..

길가에 서있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몰래 뒤로 돌아가 놀래켜 주려던 순간 마침 바로 옆레코드 가게 에서

흘러나오는 사월과 오월의 "장미" 라는 노래를 자그마한 소리로 흥얼흥얼 따라부르고 있던 그녀..

"당신에게서 꽃내음이 나네요..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네요."

그때 심쿵했던 기억이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있는데..



농활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는 석영은 두고 가야하는 정인 때문에 쉽게 발걸음을 때지 못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어쩔수 없이 기차에 오른다..

기차는 떠나고 정인은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맞으며 석영과 함께 걸었던 숲길을 홀로 쓸쓸히 걷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순간 고개를 들었는데 뜻밖에도 바로 그곳에 석영이 장승처럼 굵은비를 맞으며 우뚝 서있었다..

아주 환한 미소를 머금고..

순간 정인의 깊은 눈엔 빗물이 고인듯 눈물로 가득 젖어 있었다..

"그냥..

 그냥.. 가려고 했는데 정인씨 뒷모습이 자꾸만 생각나서.."

말끝을 흐리는 석영을 향해 정인은 새찬 빗속을 뚫고 마냥 달려와 석영의 품에 와락 안기고 만다..

"나는 왜 정인씨를 만날때마다 이렇게 젖어 있는지 몰라.."

 (이 장면에서 내 감정을 건드렸나보다..눈물이 엄청났다..ㅋ)

마침내 함께 서울로 올라온 석영과 정인은 이때부터 묘하게도 시국상황에 휩싸이게 된다..

학생시위대를 탄압하던 군부의 서슬퍼런 칼날에 희생 당하며 둘만의 아름다운 사랑은 안타까운

위기에 당면하게 되며 이윽고는 시국사범 으로 혹은 빨갱이의 딸로 낙인 찍히며 남산을 거쳐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어쩔수없는 상황에 몰린 석영은 잠깐 정인을 부정하는 비겁함을 보이기도 했지만

끝내 정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정인 역시 석영의 하염없는 눈물에서 비겁 하다고는 생각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국은..

아니 운명은 잔인하게도 그들의 사랑을 허락 하지 않았다..

결국 석영을 위한 정인의 선택은 이별 이었다..

그길만이 석영을 지키고 헤어질지 언정 그길만이 둘만의 아름다운 사랑 이었음을 기억할수

있는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 이었을 것이다..

서울역 대합실에서 석영에게 두통약을 사오라고 시킨뒤 약을 사러가는 석영의 뒷모습을 보며

정인이 마지막으로한 혼잣말은

"사랑해요.." 였다..

두통약을 사가지고 온 석영은 정인을 찿아 헤멨지만 그녀는 이미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모습 이었다..

 


슬픈영화..

단 열흘만에 피어난 아름다운 사랑..

단 한사람만을 기다리는 사랑..

"내인생이 힘들때마다 당신과의 시간을 생각합니다..

 우리 슬퍼하지 말아요..

 소중한 우리들의 시간..

 아름다웠다고만 생각해요.. "


사랑..

우리의 생 은 그것말고 또 무얼 필수로 하는걸까..

떨쳐낼수 없는 나의 스무살 그때의 젊은 초상..

혼자서 영화를 보며 소리없이 꽤나 울었나 보다..

모르겠다..

지금도 이런 슬픈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수 있다니..ㅋ

'블로그 에세이 > 낙 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사랑..  (4) 2024.11.17
가을아..  (4) 2024.11.13
시 와 문학.. 음악.. 그리고 저항의 거리..  (16) 2024.10.24
두려움..  (4) 2024.10.16
가을 운동회  (12) 2024.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