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2024. 11. 17. 00:46블로그 에세이/낙 서

 

"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밖기~ 망까기~ 알까기~..
  놀다보면 하루가 너~~무 짧~아~요~~"


 
누구나 그렇듯이 내게도 어린시절이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났기에 시골에서 처럼 냇가에 들어가 물장구 치고 고기잡던 추억은 아니지만

좁다란 골목길에 동무들이 모여 구슬치기나 딱지치기 같은 놀이에 매서운 추위도 잊은채

땅거미가 지는줄도 모르고 마냥 놀이에만 열중 했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다른 옆 골목에선 머리핀 따먹기나 고무줄 놀이에 빠져 까르르  거리는 지지배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몰래 다가가 치마를 들추거나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는 악동들의 하루는 그렇게 신나는 즐거움으로 가득했다..

붉은노을이 긴 그림자를 잡고 놓아주지 않을때쯤이 되어서야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내일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놓아야 했다..

그런 개구장이 어린시절을 보내고 그렇게도 지겹게 괴롭혔던 지지배들 앞에서 느닷없이

얼굴이  붉어지는 사춘기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왔다..

흐믓해지고..

가슴 꽁닥거리고..

잘나 보이고 싶고..

그렇게 내 마음 속에도 여린가슴에 박힌 못자욱처럼 지워지지 않는 한여자아이가 이윽고는 들어오고야 말았다..

동그란눈..

넓고 깨끗한 이마..

서늘한 미소..

안개꽃 같은 싱그러움..

쫓아다니며 괴롭혔던 그여자아이를 왜 그렇게 갑자기 열병처럼 가슴에 담게 되었는지 모를일 이었다..

첫..사..랑..

첫사랑..

그래.. 첫사랑 이었나 보다..

같은학교..

나보다 1년 늦은 후배..

위의 사진 어딘가에 그아이가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맨아래 에서 두번째줄 왼쪽편에 있다..ㅋ

초등학교 앨범을 뒤지다 1년 후배 졸업앨범 에서 그녀를 찾았다..

사진이지만 반갑다 .. 너무 반갑다..

그렇게 아련한 추억만 남겨놓고 그녀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다른 곳 으로 이사를 했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밤잠이 없어지고 지금까지도 밤을 잊게 만든건 아마도 이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불꽃 처럼 살다간 전혜린을 밤을세워 탐닉한것도 바로 이때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경서중학교에 진학했고 1년후에 그아이는 서울여중 으로 진학했다..

한동네 여서 학교는 달랐지만 자주 마주쳤다..

어느날 부터 인지 모르게 라듸오 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음악에 그아이가 있었다..

한편의 시에도 그 아이가 있었으며 보이는 사물 어디에도 그 아이는 있었다..

모두가 잠든밤에 작은등 하나 밝히고 우리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유치했지만 찬란한 우리 둘만의 소설을..^^


              " 마돈나..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 오너라..
                아.. 행여나 누가 볼는지..가슴이 뛰누나..
                나의 아씨여..
                너를 부른다.."
                                                          -이상화 -      (나의 침실로..) 중에..


 

그아이가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그 아이는 서울여중 이기 때문에 나와는 학교 가는길이 반대 방향이다..

그럼에도 그아이와 마주치기 위해선 언제나 이시간에 집을 나서야 했다..

언젠가 2층 다락방 에서 스러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멍때리고 있던 어느날..

창밖에서 작은 돌맹이 하나가 툭하고 날아들었다..

내려다 보니 그아이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동그랗게  커진 눈을 뜨고 짐짓 놀란척 하며 집으로 들어 오라고 했다..

그전부터 엄마들 끼리 아는 사이여서 전에도 내방을 보기는 했었지만 이렇게 혼자 인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내방으로 들어온 그아이는 방을 둘러보며 문득 시인의 방 같다고 했다..

무얼보고 그런 생각을 했는지 "픽"하는 웃음이 나왔지만 그때 내방의 풍경은 그런 느낌을

줄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과서나 참고서 보다도 소설책 이나 문학지 같은 책들이 더 많았고 고깔 씌운 등불아래 무언가

끄적이다만 노트등이 그런 상상을 불러 일으키게 했을지도 모른다..ㅋ

"나..내일 경주로 수학여행가.."

"내일..? "

"응.."

"나는 다녀와 봤는데 별루 좋지두 않아.. 세검정이 더 좋아.."

왠지 심술이 나서 그렇게 말해놓고는 금방 후회가 되었다..

세검정은 초딩때 그아이와 함께 엄마들을 따라 갔었던 세검정 계곡의 자두농장을 말하는 것 이었다..

언젠가 자두농장을 갔다오면서 얼마나 손으로 주물렀는지 금방이라도 터질것만 같은 너무나

말랑말랑 해진 빨간자두 한개를 내손에 줘어주고는 책상에 올려놓으라고 말하며 뛰어가던 뒷모습을 본

그때서야 비로서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그아이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게 되었었다..

책상위의 놓여진 자두는 저녁놀 처럼 붉어진 그아이의 얼굴 같았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그아이는 불국사 전경이 담긴 엽서를 한묶음 사와 선물이라며 내게 건네주었다..

먹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아지는듯 설래고 흐믓한날 이었다..

 

그 아이가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단발머리가 교복의 하얀카라에 닿을듯 말듯 찰랑거리는 뒷모습을 보고 문득 지난 겨울방학때

그녀를 자전거 뒤에 태웠던 생각이 났다..

그 아이가 갑자기 자전거를 태워달라고 했다..

자전거뒤에 그녀를 태우곤 한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여의도 광장을 향해 마포대교를 달렸다..

하나도 춥지 않았다..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그녀의 체온이 느껴졌다..

그녀는 등뒤에 태웠는데 이상하게도 가슴이 따뜻했다..

자전거가 덜컹하는 순간 무심코 그녀의 젖가슴이 살짝 등에 닿았는데 화들짝 놀래며 불같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 시킬수 없었다..

지금도 그 엄청난 기억은 못이 박힌 상처처럼 지워지지않는다..

그아이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으려나..


                         "아..
                          어쩌란 말인가..
                          흩허진 이마음..
                          아..
                          어쩌란 말인가..
                          걷잡을수 없는 이마음.."

 

첫사랑은 아름다울뿐 이루어질수 없는것..

우리는 서로의 세상을 향해 서로가 다른 발길을 돌렸다

서로 운명의 만남을 갖고..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고.. 상처를 받고.. 성숙해지고..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훗날 딱 한번 그녀를 만났다..

그건 다름아닌 바로 나의 결혼식때 였다..

어머니와 그녀의 어머니가 알고 지내는 사이여서 연락이 되었나보다..

하지만 그녀가 나의 결혼식에 와주리라곤 정말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허리에 리본이 달린 주름치마에 빨간구두 신고

이가 드러나지 않게 옅은 미소를 머금고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내게 축하한다며 악수를 건네왔다..

그손을 잡았다..

땀이 나서 일까..

촉촉함이 묻어왔다

초딩 사춘기에 맨처음 그리움을 허공에 메달게 했던 아이..

그 환한 얼굴을 대하기 부끄러워 밤을 기다리게 했던 아이..

화려한 장미로 피어나지 못할바에야 한번쯤 뜨거운 불길로 살아

고백 이라도 해볼것을..

그렇게 첫사랑 이었던 그녀를 떠나 보내고 말았다..

마음을 보여주려 가슴을 연 사람..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눈을 맞추는 사람..

한사람은 마음을 바라보고..

한사람은 눈을 바라보고..

그렇게 첫사랑은 조금씩.. 조금씩.. 어긋나는 건가 보다..

 

                           " 영원한 체념..
                              바랄수 있는건 서로의 행복을 비는일..
                              멀어진 우리의 움직임 속에 이제는
                              미련으로 남아있는 차가운 그리움.."
 
                                                      -서연희 -    (회 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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