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다방 아영씨..

2024. 8. 24. 00:47블로그 에세이/낙 서

 

     늘 그녀가 가슴속에 담고 있던 곡 이다..            Claude Jerome - L'orphelin - ( 고 아 )

 
 
그녀는 참으로 표정에 인색했다..
늘 무표정한 얼굴이었으며 웃음을 짓더라도 너무나 짧은 순간..
한순간의 너무나 작은 웃음 이었다..
그녀는 참으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닫혀있는 얼굴은 그녀의 모습을
더욱 그늘지게 만들어서 주위의 사람들도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기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녀는 화를내거나 짜증스럽게 이야기를 한다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표정이 없는 사람처럼 한가지 표정만 가진 사람 같았다..
늘 같은 표정..
늘 건조한 표정..
늘 작은 표정..
쉽게 어떤감정에 빠지지 않는것만이 커다란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 할수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고 있는것 같았다..
상처..
그녀에겐 어떤 지울수 없는 상처가 있는것일까..
 
 
그곳 서원다방 역시 여느 음악다방 처럼 Led Zeppelin 이나 Pink Floyd 같은 팝을
주제로 했지만 샹송이나 파두.. 칸소네 같은 제3세계 음악도 배제 하지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Bee Gees 와 Smokie 등 팝아티스트 들이 늘 100w 짜리
독일제 알택 스피커에서 춤을 춰대었지만 때론 샹송의 감미로운 선율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기도 했었다..
새벽안개 처럼 뽀얀 담배연기 사이로 DJ 부스에 앉아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인다..
분홍색 스카프로 긴생머리를 뒤로 묶은 그녀는 음악실의 조명에 한층 더 고고해 보였다..
무심한듯 음악실 앞을 지나치는 나를 본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작은 표정으로 짧은 미소를 보내온다..
나역시 최소한의 표정으로 답할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가까워지지 못한채 음악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늘 작고 짧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음악실 앞자리에는 우리 회원 친구들이 벌써부터 자리잡고 앉아
뒤에 오는 회원들을 언제나 반겨주고 있었다..
신청곡을 적었다..
Claude Jerome - L'orphelin -
- 고아 -
나만이 아는 그미의 음악을..
나만이 아는 그미의 아픔을..
맨위에 동영상으로 올려놓은 곡 이다..
이노래만 나오면 다른 친구들은 영문도 모른체 그저 슬픈 노래에 연신 줄담배를 피워대며
마치 모두 고아라도 된것처럼 절절해 졌으며 여자 회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음악에 심취 했었다..
 
 
그녀와 함께 독산동 으로 가는 마지막 버스를 탔다..
그녀를 바라다 주고 다시 마포까지 가려면 난 통행금지에 걸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야했다..
버스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그녀는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처음으로 하고 있었다..
계모와의 갈등..그리고 구박..아버지의 외면..
집에서 못치게 하는 피아노를 치고 싶어 친구집으로 가서 피아노를 치던 그녀를 억지로
잡아끌고와 손가락을 매질 했다던 계모..
그런 계모편에서 자신을 질책하던 아빠를 피해 결국 가출을 감행한 그녀..
고아가 아니지만 고아처럼 살아야했던 그녀의 삶..
L'orphelin 이란 노래에 심취할수밖에 없었던 그녀..
그녀의 이야기에 너무나도 가슴이 아팠던 그날..
그녀는 독산동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지며 내게 LP판 한장을 손에 건네 주었다..
바로 그녀가 사랑한 L'orphelin 이 담긴 Claud Jerome의 앨범 이였다..
그리고 그 LP 쟈켓에는 눈에 보이기도 힘들정도의 깨알같은 작은글씨로 "김** " 이란
내이름이 밤하늘의 별무리처럼 빼곡하게 써있었다..
영등포에서 막차가 끊어져 여의도 광장을 하염없이 걷는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그녀의 아픈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렇게 그녀를 처음으로 가슴에 담아야 했던날..
내마음은 그때 정지 버튼을 누른듯 멈추어 버렸다
 
 
하계봉사 활동을 가기위한 1차답사팀 8명이 구성됐다..
회원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모두들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1박으로 잡힌 일정 이기에 그녀를 포함한 여자회원들이 망설이고 있었다..
오랜 설득작업 끝에 다행이도 모두가 합류 하기로 결정 했다..
서울역 인가 서부역 인가 에서 온양 까지 가는 기차를 타고
다시 유구 까지 가는 비포장길을 버스로 이동했다..
유구에서 조평리 입구 까지 버스를 또 타고 내렸다..
마지막으로 마을 까지는 걸어서 가야하는 행군코스가 남아있다..
서울을 출발해 조평리까지 6~7 시간 정도를 힘들게 이동해야 하는 먼길 이었다..
하지만 젊음은 결코 힘들거나 지치지 않았다..
저마다 족한 얼굴로 서로의 가방을 들어주고 노래 부르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마을 청년회인 육심회의 환영을 받으며 초등학교 관사에 여장을 풀었다..
주민들이 내어준 고추장..감자..깻잎..그리고 김치등 으로 주린배를 채우는 저녁식사를 했다..
육심회와 회의를 했고 자체 강평회도 마쳤다..
이미 새벽녁에 와버린 고단한 하루였다..
이원철과 불침번을 서는데 빗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들판의 허수아비 처럼 홀로 우뚝 서있던 지붕위 굴뚝에선 뽀얀 연기를 쉴세없이 또해 내고 있었다..
타닥 타닥..
장작이 타는 소리..
장작이 타는 냄새는 시골의 정취를 한껏 느끼기에 충분했다..
부뚜막에 홀로 앉아 장작을 태우며 부엌문 밖으로 쏟아지는 빗줄기 속으로 멍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왠지 짠한 마음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가만히 다가가 그녀 곁에 앉았다..
엄마 보다는 아빠가 생각 난다는 그녀는 왈칵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엄마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낸 그녀는 늘 아빠품에 안겨 살았다고 했다..
언제나 자신의 곁에만 있었던 아빠의 손 에서는 늘 담배냄새가 났다고 했다..
그녀의 그말에 난 하마터면 "억" 소리를 낼뻔했지만 한사람의 천군을 만나듯
가슴속에 전해지는 따뜻함을 느낄수 있었다..
언젠가 내 손가락 에서 나는 담배냄새가 너무 좋다라고 하던 그녀의 말이 생각 났기 때문이다..
새 엄마편 에서 늘 자신을 핍박하던 아빠가..
새 엄마에 의해서 싸늘하게 변해버린 아빠가..
내손 에서 나는 담배냄새를 통해 예전의 살갑던 아빠를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말이든 해야 했었는데 난 그저 고개만 숙인체 바보처럼 두눈만 껌벅이고 있었을뿐 이었다..
그때 왜 살며시 안아 주지도 못했던것 이었을까..
언제나 비를 몰고 다니는 그녀..
억수같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같은..
 
 
두려워 하던 그녀 였다..
모든걸 두려워해서 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서 그녀는 표정을 또한 숨겨야 했다..
무표정 하던 그녀에게 따뜻한 온기와 사랑을 가져다 준건 의외로 그녀가
두려워 하던 그것들 이었다..
살갗을 뚫고 나오는 고통으로 핀꽃은 그녀에게 웃음을 지울줄도 알게 해주었을 것이다..
걱정 했던것 처럼 충분히 아팠지만 사랑은 그녀에게 삶의 표정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이제 그녀도 사람들 속에서 같이 웃고 같이 울수 있게 되었으리라..
그때..
그날 처럼 비라도 쏟아 졌으면 좋겠다..

 

 

'블로그 에세이 > 낙 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덫..  (2) 2024.09.03
아.. 저기 내 모습이..  (4) 2024.08.28
조선인의 비애..  (0) 2024.08.21
불면의 밤  (2) 2024.08.13
근 심..  (2) 2024.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