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16. 01:26ㆍ블로그 에세이/추억만들기
연일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지속되고 있다..
아이스쵸코를 아무리 쪽쪽 빨아대도 이놈의 더위는 도무지 떨쳐버릴수가 없다..
무척이나 뜨거운 7월의 중순..
비 예보가 있었지만 마른장마 속에 습한바람만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영풍문고에서 책구경을 하고 돌아오는길에 청계천을 잠시 걸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청계천이 무척이나 시원하고 한가롭게 느껴졌다
햇살이 따가워서 인지 인적이 드물고 물소리를 들으며 무심히 걷는 발걸음이 한층 여유로웠다..
서울 도심은 청계천 복원으로 인해 생태적으로 진화 하고 있었다..
광화문 동아 미디어센터(동아일보사) 앞에서 마장동 신답철교까지 불과 5.8km의 물길이 열린뒤
대기중 오염물질이 줄어들고 도심에서 볼수없던 동 식물들이 새로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여름 장마를 거치고 나면 청계천 원류부터 한강까지 수중 생태계가 연결되어 청계천의
생태계는 더욱 풍부해졌다..
조선시대 부터 청계천 주변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생활하수로 인해 물도 갈수록 오염 되었다.
특히 다리 밑은 거지들의 은신처였다..
드라마 야인시대의 김두한이나 개코도 어린시절 이곳 청계천 수표교 아래서 거지패들과
함께 살았다고 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밀집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였다..
일본인들이 남산 북쪽을 장악하자 서울 사람들은 집값이 싼 청계천변 으로 몰려 들었다..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생활 여건이 더욱 악화돼 수인성 전염병 감염률이 전국 최고를
기록할 만큼 환경이 열악했다..
광복 후 월남민들과 피란민들이 폭발적으로 모여들었고 1950, 60년대엔 수상가옥
같은 판잣집 마을이 형성됐다..
제방 위에는 고물상들이 운집했다..
판잣집엔 화장실도 없어 분뇨가 청계천으로 흘러들었다..
비가 오면 판잣집이 쓸려 내려갔고 날씨가 맑으면 화재가 발생했다..
경제 발전이 시작된 1960년대 이후 사람들은 악취 나는 청계천을 덮어 버리기로 했다..
청계천의 전구간이 복개 되었으며 그위로 고가도로가 건설됐다..
청계고가도로와 복개도로는 한국 경제 발전의 상징이 되었다..
청계천이 시작되는 도심 구간엔 고층빌딩이 들어섰다..
공구상가와 전기전자 상가.. 재래시장.. 동대문 주변엔 의류타운이 속속 자리 잡았다..
도심구간에서 밀려난 고물상들은 청계천 끝자락 황학동 일대에서 새롭게 삶의 터전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금쯤 장년에 와있는 사람이라면 청계천을 추억하는 이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립고 안타까워서 왠지 서럽고 시리던 청계천의 기억..
청계천이 새로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하더라도 사라져 버린 청계천 서점가나
그 언저리에서의 추억은 영원토록 아련하게 우리의 가슴속에 머물러 남아 있을것이다..
자동차 소음과 극심한 교통체증.. 차소음도 소음이려니와 길가의 가게에서 불쑥불쑥 내놓은
각종공구들과 상품들.. 거리를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인도로 오가는 자전거와 오토바이
빵빵거리는 소리는 도저히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뒷골목에선 빈대떡과 청국장 끓이는 냄새가 풍겨왔고 물건을 판매한 사장님의 입가엔 환한미소가
번졌으며 여기저기서는 오늘도 여지없이 고함소리와 싸움박질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청계천은 도시의 소시민들이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터전 이었으며 살기위한 희망의
정거장 이기도 했었다..
청계천의 복원공사가 시작된다는 말을 듣고 완성된 조감도를 보니 과연 청계천이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할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다..
건설은 잘모르지만 고가도로의 구조물을 걷어내는일 조차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교통을 통제하지 않고도 작업을 할수있다는게 신기할 정도였다..
MB가 대단한 일을 하려 하는구나..생각했다..
청계천이 게획대로 완성된다면 MB의 대선 구도엔 문제가 없겠다.. 싶었다..ㅋ
그렇게 MB는 성공의 가도를 달렸지만 끝내는..에구..
지금은 없어져버린 아세아극장 옆에는 레코드가게가 몇군데 있었다..
주머니 가난한 젊은이들은 단돈 500원에 듣고싶은 음악을 빽판으로 구할수 있었다..
라이센스 LP는 구하기도 어려웠지만 가진것 없는 청춘들에겐 값을 치룰수없는 먼나라 이야기 였다..
빽판이면 어떠랴..
Beatles..와 Yard Birds 빽판 한장에 세상을 가진듯 기뻐하던 가나한 청춘들..
꿈도 길을 잃어 방향을 잃고 욕망은 들끓던 젊은 시절이었다..
누구는 방황이라고 하고 누구는 껍질을 깨는 시기라 하였다..
서울사람에게 갈곳이 없는 비애는 슬픔처럼 고여있다..
고향을 떠난이에게 고향이 부르듯 사람들은 청게천의 밤으로 가로등 불빛을 따라 나선다..
돌다리 아래 아이들이 물장구치고 피곤한 다리는 양말을 벗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궈본다..
햄버거와 콜라 한잔에 행복해지고 찔래꽃과 능소화 같은 여름꽃은 이 더위가 고맙다..
다리가 긴 새와 물고기와 오리도 각자 제할일에 열중 하고있다..
청게천은 오늘도 생명이 쉼쉬고 있다..
꽃들이 반긴다..
키가 큰 이름모를 새가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
얘..네 이름은 모니..?
하고 물어보니
여름 이란다..ㅋ
7월에 장미는 불은색에 더 이쁜색을 칠하고 있다..
수목이 푸르고 맑은물엔 물고기가 놀고있다..
청계천이 흐른다..
꽃잎이 흐른다..
우리의 사랑도 흐른다..
기쁘고 슬픈 사랑이 청계천 아래 물처럼 흐른다..
뙤약볕이 식어가는 늦은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더욱 많아진듯 했다..
삼삼오오 물속에 발을 담그고 한여름 나른한 오후의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팔뚝 크기만한 잉어가 유유히 헤엄치고 강에서나 볼수있는 모래무지와 손가락만한 피지도 보였다..
발을 담그면 작은 물고기들이 주변으로 모여들어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가 메아리쳤다..
서울 도심한복판에 청계천 같은 휴식처가 있다는것은 도시민 들에게 큰축복이 아닐수없다..
오랫만에 청계천을 한참이나 걸었다..
많은 사람들..
많은 여유로움이 보여서 잠시나마 행복했던 7월의 청계천..
2시간 정도 돌아본것 같은데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오늘밤도 열대야로 후텁지근한 밤이 될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