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6. 21. 00:45ㆍ블로그 에세이/추억만들기
낙산(駱山)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성북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돌산으로, 조선의 수도 한양의 내사산(內四山) 중 하나이다.
조선 시대에는 풍수지리상 명당이라 하여 한양에 수도가 입지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였다.
낙산은 남산, 인왕산, 북악산과 함께 내사산(內四山)을 이루며,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左靑龍)에 해당하고 우백호(右白虎)인 인왕산과 마주본다.
한양도성이 능선에 축성되었다.
조선 시대 도성 5대 명승지에 이름을 올린 낙산은 조선시대 때 문인들이
별장을 짓고 살 만큼 풍광이 아름답기로 널리 알려져 왔다.
조선시대에는 삼청(三淸)·인왕(仁王)·쌍계(雙鷄)·백운(白雲)·청학(淸鶴)을
도성 안의 5대 명승지로 손꼽았는데,
이 중 현재의 이화동에 있던 쌍계동이 기묘한 암석과 울창한 수림에
두줄기의 맑은 시냇물까지 있다 하여 세 번째로 꼽혔다.[1]
일제는 1920년부터 펼쳐진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을 봉쇄하기 위해
동숭동에 1924년에 경성제국대학 예과를 설립했고 1926년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의학부를 설립했다.
해방된 뒤에 이곳은 서울대학교 문리대, 법대, 의대로 바뀌었다.
해방 뒤에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가 계속되자 서울대 학생들은 권력에 맞서 싸웠고,
학생들이 거리로 몰려나오면 종로의 교통이 막혀 시민들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5년에 흩어져 있던 서울대를 통합해서 관악산 자락으로 옮겼고,
그 뒤 서울대 터는 마로니에 공원을 중심으로 공원화되었다.
낙산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반대편의 나지막한 언덕으로 보이는 곳이다.
- 백과사전에서..-
낙산..
내가 낙산을 처음 알게 된것은 서울이 고향이란 사실이 무색하게도 마흔살이
넘어서 였을것으로 생각된다..
그때도 낙산으로 불리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당시에는 공원으로
조성되지 않았을 때이다..
그저 서울의 여느 달동네 처럼 창신동 꼭대기를 우연하게 자동차로 힘겹게
올랐을 뿐이었는데 그곳에 신기하게도 돌담으로 이어진 성곽이 펼쳐져 있었다..
지금처럼 잘 조성되어 있지 않을때여서 결코 아름답지 않았지만
무슨 신기루라도 발견 한것처럼 서울 한복판 오름에 이렇듯 장엄한
성곽이 보존돼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었다..
"서울에 이런곳이 있었다니.."
조금은 놀라웠었다..
언제 공원으로 조성 되었는지는 잘모르겠지만 지금은 영화나 드라마등
촬영장소로 유명해 졌다고 한다..
또한 젊은 청춘 들에겐 데이트 장소로 중년들에겐 운동겸 산책길로
손색이 없다고 한다..
해가 지기 전이었지만 이때도 많은 사람들이 오르 내리고 있었다..
이길을 통하면 성북동으로 가는길인것 같다..
건너편에 한성대학교가 보인다..
성곽 꼭대기에 중앙공원이 잘 만들어져 있다..
한쪽에는 각종 운동기구들이 설치되어 있어 인근 지역주민들 에게는
아주 안성마춤의 체육공원 이자 쉼터 이다..
성북동쪽 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성벽의 중간마다 네모난 창이 만들어져 있다..
조선의 병사들은 저곳에 눈만 내어놓고 외세의 침략에 열악한 화기로
맞서며 피흘려 죽어 갔을것이다..
당리당락에만 눈먼 조정의 중신들은 백성과 국가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었으며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 들은 자신들의 처세에만 들떠 있었다..
지금 현제 라고 무엇이 다르랴..
역사는 바르게 흘러가고 있는걸까..
느린 걸음으로 성곽을 타고 내려오니 동대문이 보인다...
예전 동대문 운동장 이었던 역사 박물관..
두산타워..밀레오레..동대문 종합시장 등도 보인다..
하지만 내가 가장 의미있게 다가오는 건물은 바로 저 건물 이다..
지금은 동대문 호텔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예전엔 이스턴 호텔 이라고 불리었었다..
87년 3월달에 장인어른과 장모님등 처가식구들과 우리식구들과의
처음 만남을 가진 상견례 장소였다..
우린 식구가 많지 않아 누님과 동생 뿐 이었지만 처가쪽에는 장인 장모를 비롯해
처남.. 처제.. 그리고 할머님..이모님등..엄청 많이 나오셨었다..
이날 식사비..커피값..좀 나갔다..
그러나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ㅋ
세월이 많이 흘렀다..
30여년전..
그때 사위를 보러 나오셨던 장인..장모의 나이보다도 훨씬더 나이 먹어버린 사위는
지금 장인..장모를 생각할때마다 가슴이 아파온다..
그냥.. 아프다..
많이..정말..많이 아프다..
조선의 수도 한양의 성곽..
태조 5년(1396년)에 축조해서 세종 4년(1422년) 중수 되었으니
26년간의 대공사 였다..
만리장성이나 자금성의 성곽 처럼 장엄하거나 거대하진 않지만
소박함과 섬세함이 엿보이는 조선의 성곽..
문화와 역사적 배경으로 만들어 졌지만 힘없는 백성의 피와 땀을 잊어서는
결코 않될것이다..
낙산에서 내려다본 서울의 모습..
조선의 수도 한양의 백성들은 사대문의 성곽안에서 농사를
지으며 개미처럼 생활했다..
태조의 조선 창업으로 부터 불과 600여년이 지난 현대는 드높은 빌딩과
홍수처럼 밀려드는 자동차의 행열..그리고 각종 전자기기의
전자파와 고도의 메카니즘 속에서 살고있다..
태조왕도 세종대왕도 이시대를 예견이나 했을까..
멀리 남산타워가 한눈에 들어온다..
풍경..
풍경은 우리에게 어떤 위로를 주는걸까..
힘들다고 느꼈을때..
지쳤다고 생각될때..
풍경은 우리를 위로해 준다..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 하는일은 좋은 음악을 듣는것과 다르지 않을것이다..
그것이 바로 풍경이 지닌 힘이다..
해지는 서울의 풍경이 아름답다..
어디론가 떠나야 할것 같다..
가고 싶으니까..
왜냐고 다시 물어도 이렇게 대답 할수 밖에 없을것 같다..
그냥 가고 싶으니까..
그래도 다시 묻는다면 바람이 좋으니까..또는 하늘이 맑으니까 라고
대충 대답해 버리겠다..
먼 여행길..
혼자서 차를 마시고..
혼자서 책을 읽고..
혼자서 노을을 보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않고 바람처럼 표표히 혼자서 떠나고픈 바램이
풍선처럼 부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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