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9. 00:34ㆍ블로그 에세이/추억만들기
버스를 기다린다..
지하철을 탈까..하다가 버스 창가에 앉아 무심히 스쳐가는 거리의 풍경이 보고싶어 졌다..
아침에 잠깐 비가 내린탓인지 풋풋한 풀향기가 배어있는 서울의 공기가 의외로 맑게 느껴졌다..
모두들 단풍구경을 갔는지.. 주말 아침 이른 시간 탓인지 시내가 의외로 한산하다..
가을로 들어섰지만 중천의 해는 아직 따갑다..
버스는 틀어놓은 에어컨의 바람과 창가로 내려쬐는 햇살의 따가움이 적당히 섞여 실내에
쾌적한 기온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버스노선을 잘몰라 안내방송에 귀를 귀울이고 있는데 창밖으로 창덕궁이 보였다..
아..비원 이다..
문득 아주 오래 전에 비원 부용지의 누각에서 그아이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잠이 들었던 때가 스치듯 떠올랐다..
파한하늘과 새소리..맑은 풍경 소리와 소슬한 바람..
코끝을 자극하는 그아이이 연한 분내음..
꽃잎에 이는 햇살처럼 흔적없는 사랑을 키우던 그때..
속절없는 세월속에 우리는 운명처럼 남으로 멀어져가는 뒷모습에 손흔들고 죽음같은
마음에 핑도는 이슬을 머금어야했다..
그새 머리칼에 흰눈이 내리고 댓발에 떨고있는 나목처럼 늙어버렸구나..ㅋ
내릴까 생각했는데 주춤하는 사이에 그만 창덕궁을 지나고 말았다..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만 했다..
대학로의 모습은 예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는것 같았다..
예전엔 주말이면 밀려드는 인파 때문에 무조건 차없는 거리로 만들어 졌는데 지금은 아마도
날짜를 지정해서 차량을 통제 하는 모양이다..
동숭동 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
너른마당 한가운데 상징수 처럼 마로니에 나무가 오랜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함없이 옛모습
그대로 그자리에 서있었다..
그러고보니 비원 뿐만이 아니라 이곳 마로니에 공원에도 그아이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마로니에 나무에 나비 같은 하얀꽃이 질무렵 저 벤취에 앉아 나지막히 유행가를 불렀던 그때..
어깨에 기대어 조그만 소리로 같이 노래를 따라불어 주었던 그아이..
처음 그아이에게 마로니에 라는 말을 듣고서 파리의 몽마르뜨나 세느..마르세이유 같은 지명인줄 알고
나중에 마로니에로 여행을 가자고 말했다가 무식이 탄로나서 깔깔대고 웃기도 했었는데..ㅋ
마로니에 공원은 혜화동 대학로와 이화동 사이에 위치해있다..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대학문화가 대학로에서 꽃피웠기에 이곳에는 근현대 문화유산이 가득하다..
서울대학교 유지기념비는 이곳이 과거 서울대의 본부와 문리대학 법과대학이 있었던 자리임을 알려준다..
서울대학교가 관악구 신림동으로 캠퍼스를 이전하면서 대학본부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철거되었고
그 자리를 대한주택공사가 매입해 이 공원을 조성했다..
캠퍼스에 마로니에 나무가 세 그루 있던 것을 유래로 "마로니에 공원" 이라고 이름 붙여졌다..
마로니에 거리를 걷다보면 골목골목 마다 무수히 많은 소극장들이 한집건너 하나씩 들어서있다..
유신체제 에서 벗어난후 자유화의 물결이 넘실대던 80년대 후반..
대학이 자리를 옮겨가자 지난날 명동을 근거지로 활동했던 많은 문화 예술인들과 신촌을 비롯해 서울각지에
흩어져있던 문화단체와 극장들이 이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금 현재의 대중연예인들도 거의 이곳에서 태여 났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공원에는 문예회관 대극장과 소극장을 비롯해 대학로극장.. 바탕골소극장.. 연우무대..
샘터파랑새극장.. 학전.. 코메디아트홀등 문화예술시설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외에도 일일히
열거할수 없을만큼 많은 소극장들이 골목마다 산재해있다..
무얼 말하고자 하는 조형물일까..
신문보는 사람들..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
마로니에의 공허한 광장을 떠올리면 왠지 고독함이 묻어온다..
계절의 끄뜨머리에서 이는 바람..
세월이가고..
사람이 가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가을이 가고..
눈물이 하얗게 마르던 마로니에..
저 벤취에 사랑은 어찌 되었을까..
골목마다 공연중인 포스터가 선거벽보 처럼 붙어있다..
이렇게 또다시 대학로에 올기회가 많지 않은데 공연을 못보고 지나는게 좀 아쉬웠다..
소극장 입구에선 알바인듯한 사람들이 공연 브루셔를 나눠주며 홍보하고 있지만
이것도 소극장 마다의 경쟁인듯 어느곳은 줄이 길고 어느곳은 썰렁 하기도 하다..
극장들의 어려움과 안타까움이 생겨난것 같다..
대학로의 마로니에는 이곳의 상징수처럼 인식 되어버렸지만 길가에는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조경 되어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수령이 만만치 않게 보일정도로 키가크다..
여떤녀석은 와..하고 소리를지를 만큼 큰나무도 있었다..
얼마전 부천에 일이있어 갔다가 여러사람들이 모여서 나무를 잘라내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흔히 보아왔던 모습 이었고 가지치기를 하는 이유야 있겠지만 그날은 왠지 학대처럼 느껴졌다..
가지치기 정도가 아니라 저 큰 나무를 베어내고 어린 느티나무를 심을거라는 사람들의
수근거림이 들려왔다..
해마다 가지치기와 병충해 방지를 위한 소독작업에 큰 비용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간판이 가린다는
주변 가계들의 민원 때문 이라고한다..
팔 이 잘려나간 플라타너스를 보고 왠지 진한 비애가 느꼈졌다..
이곳의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들은 아직은 잘지내고 있지만 언제 인간들의 이기주의로 인해
두 팔 이 잘려나갈지 모르는 일이다..
오랫동안 해 를 당하지 않고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가 잘살았으면 좋겠다..
시월이면 노랑주단을 깔아놓은듯 은행나무로 인해 대학로의 가을이 점점 깊어지겠지..
그림자 조차도 서늘해지는 시월..
이제 또 그 차가운 그림자를 곁에끼고 가을을 견뎌야한다..
억새가 나부끼는 가을의 거리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 햇살이 눈부신 시월의 어느날 들길을 걸으며
수수하지만 은은한 향기로 문득 걸음을 멈추게 하는 소박한 가을국화를 우연히 사랑하게
될른지도 모른다..
노랗게 가을옷을 갈아입은 마로니에의 시월이 눈에 서걱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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