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바닷가 우체국

2022. 11. 9. 01:05음악이 흐르는../음악에세이

아무도 없는 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밤
칠흑같이 까만 밤바다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이 있다.
그 빛이 흘러나오는 곳에 나는 있다. 나는 이 등대를 지키고 있다.
여름보다 훨씬 길어져 버린 가을 밤 난 주파수가 잘 맞지 않는 라디오를 켜 놓고 아침을 기다린다.
저 바다로 붉은해가 떠오르면 활기찬 아침 풍경이 펼쳐진다.

해변의 모래가 금빛으로 빛나고 고깃배가 통통거리고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아이들이 등교하는 바닷가, 나는 이곳의 아름다운 아침을 사랑한다.
내가 바닷가의 아침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늘 같은 길에서 마주치는 그녀가 있기 때문이다.

바닷가의 우체국으로 출근하는그녀.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에 깊은 눈매가 인상적인 여자다.
언제부터인가 난 그녀와 만날시간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가 조금 늦기라도하면 괜히 골목을 서성거리게 되었다.
내 마음속으로 그녀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바람이 불면서 갈대가 서걱이기 시작했다.

갈대숲 옆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난 그녀가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오늘은 꼭 말을 붙여봐야지. 이름이라도 물어봐야지
내 마음은 갈대숲과 함게 서걱이고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그녀가 나타났다.
밤바다 처럼 까만 단발머리를 철렁
"저 안녕하세요? 놀라지 마세요"
"저 모르세요? 늘 여기 지나가는..."
"전 저기 등대에서 일합니다. 사람들이 보통 등대지기라 하지요."
"그 쪽을 아침마다 봤습니다."
"저기 저 그렇니까.. 저 저 아침 드셨어요?"
"제 말은여 그게 저..." 횡설수설 난 정신없이 말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말이없었다.
대신 날 바라보다가 엶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눈이 부셨다.

다시바다에 밤이 찾아왔다.
등대가 내뿜는 빛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눈앞에는 그녀의 환한 미소가 흐르고 있다.
언제나처럼 라디오를 틀어놓고 그녀 생각에 잠긴다.
-------------------------- 라디오 --------------------------
누군가의 얼굴을 하루종일 생각하고 있다면요.
그리고 누군가와 만날시간 만을 두근리는 가슴으로 기다린다면
당신은 아마도 사랑에 빠진 걸꺼에요.
그리고 고백할 때가 온 겁니다.
그럴때 망설이지 말고 편지를 한 번 써보세요.
밤에 쓰는 편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묘한 마법을 가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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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모르는당신 오래전 부터 당신을 지켜봤습니다.
오늘아침 당신은 내가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난 기다릴 것 입니다.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줄때까지,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주기 전까지는
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제 이름은 김봉덕 입니다.
날마다 바닷가 우체국으로 편지를 보냈다.
한번이라도 좋으니 내 이름을 불러달라고
그리고 매일아침 길목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녀는 나와마주쳐도 내이름을 불러주지 않았고
인사조차 하지 않은채 스쳐지나갔다.
난 조금씩 지쳐갔다.

더 이상은 편지만 쓰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해지무렵 갑자스런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우산을 들고 우체국 앞으로 뛰어갔다.
아니나다를까 그녀는 우체국 처마밑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저 아시죠? 날마다 편지 썻는데. 비가 참 많이 오네요."
"저 이거 이 우산 쓰세요. 감기 드시겠어요."
"그리고 비 맞으면 그 이쁜 머리 다 빠지잔아요"
"모라고 말씀 좀 해보세요. 저 무안하잔아요."
말없이 날 바라보던 그녀는 비 속을 뛰어갔다.
-------------------------- 라디오 --------------------------
멀리 여행가는 새 는요. 잎에 나무가지를 물고간데요.
바다를 건너 날고 날고 또 날다가. 더 이상 날수 없어지면요.
잎에 물었던 나무가지를 바다에 살짝 뛰었놓고 그 위에서 쉬어간다는 거지요.
참아도 참아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사랑을 간직한 분들
나무가지를 띄우는 마음으로 저 한테 사연을 보내주세요.
당신의 아름다운 사랑고백을 제가 대신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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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바로 이거였다.
난 마지막방법으로 라디오 디제이에게 사연을 보내기로 했다.

몇 번이고 고치고 또 고쳐쓴 사연 부디 읽혀지기를 바라며 엽서를 완성했다.
우체국에서 일하는 그녀가 먼저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배를 타고 육지까지 가서 엽서를 보냈다.
그리고 몇일동안 기도하는 마음으로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날밤...
-------------------------- 라디오 --------------------------
이번 엽서는 아주 먼 섬에서 보내주셨네요.
김봉덕씨의 사연입니다.
바닷가 우체국에서 일하는 당신께
여러번 편지를 보냈지만 답을 주지 않은 당신,
한번도 내게 말을 건내지 않는 당신
그런 당신의 눈빛과 미소를 잊을 수 없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 때문에 가슴이 아픕니다.
거짓말 같겠지만 당신을 사랑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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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을 녹음한 테입을 가지고, 그녀가 지나는 골목을 향했다.
내 마음은 어느때 보다 가벼웠다. 이 정도 정성이면 그녀도 내 마음을 알아주리라.
가볍게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녀였다.
그녀가 이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슴이 마구 뛰었다.
" 안녕하세요."
" 저... 이 테입들어보세요. 라디오에 방송된 건데."
" 이거 들어보세요. 그리고 저 오늘 쉬는날이거든요."
" 이 앞 방파제에서 기다릴께요. 올 때 까지요. "
" 올때까지 꼭 기다릴 꺼에요. "
한 시간.. 두 시간
빗 방울이 거세지기 시작했지만 난 우산을 쓰지 않았다.
곧 그녀가 달려와 우산을 씌어주고, 젖은 내 얼굴을 닦아 주겠지.
지금 바로 내 마음을 받아주지는 않는다고 해도, 내가 이렇게 비를 맞고 서있는데
이제 그만들어가라는 말이라도 해주겠지.
그러나 그녀는 오지 않았다.
도대체... 도대체.. 왜?

난 몇일동안 앓아 누워있어야 했다.
그렇게 아파하는 동안 내 마음도 서서히 정리되고 있었다.
그녀를 잊자고, 이제 그만 돌아서자고

그녀를 잊는 건 힘이들었다.
밤이되면 등대에 나와 불을 밝히고, 아침이되면 그녀가 다니는 길목을 피해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던 어느날이었다.

-------------------------- 라디오 --------------------------
오늘 아주 특별한 사연이 제앞에 도착했습니다.
김영화씨의 편지인데요.
등대에서 일한다는 김봉덕씨에게 보낸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봉덕씨.
당신의 이름을 꼭 불러보고 싶었어요.
아주 오래전 부터
내 이름도 애기해 주고 싶었어요.
내 이름은 김영화라고. 하지만 그럴수가 없었어요.
왜나하면 왜냐하면 전 말을하지 못해요.
당신의 갈대숲 길목에서 날 기다릴 때 마다 당신의 정성스런 편지를 받을 때 마다
정말 가슴이 아팠어요. 아무말도 할 수 없어도, 비가 많이 오던날 방파제 앞에서 비를 맞고 서있는 당신을
멀리서 지켜봤어요.
빗물을 닦아주고 당신 이름을 부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에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당신의 얼굴을 볼 수가 없네요.
혹시 어디 많이 아픈게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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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그녀에게 달려가고 있다.
결코 말로할 수 없는 소중한 사랑을 가르쳐준 그녀에게 내가 영원히 사랑한 그녀
비 구름이 거친 밤 하늘위로 별이 빛나고 있다.
등대보다 더 밝은 빛으로 나를 비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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